<피플 인 베이스볼> 서울 건대부중 야구부 박찬민 감독

2017.10.30 10:25:17 호수 1138호

“야구천재? 훌륭한 선수는 만들어진다”

서울 광진구청 근처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이하 건대부중) 야구부의 박찬민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광진구 지역서 자라나며 야구를 시작했다. 대학(건국대학교)을 졸업한 후 군대를 갔다 오고 몇 군데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서 코치로 지내다 결국은 모교인 건대부중으로 다시 돌아왔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지도자로서 꽃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하는 박 감독과 대화를 하다 보니 논리적인 명석함이 뒷받침되는 지도자로서의 리더십과 제자인 선수들에 대한 많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 8월 제35회 서계청소년야구대회(U15)서 한국대표B팀의 감독으로 선임돼 서울지역의 중학교 3학년 선수들을 이끌고 준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던 그를 다시 만나봤다.

-야구 경력과 지도자 이력은?

▲광진구 소재 어린이회관서 운영하던 리틀야구단서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다시 용마초등학교 야구부로 옮겨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건대부중 야구부의 창단 선수로 진학했고, 지금의 청원고인 동대문상고를 거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했다. 선수시절 포지션은 주로 외야수를 맡았다. 

대학 졸업 후 모교인 건대부중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군대를 갔고 전역 후에는 경기도 분당의 매송중학교와 야탑고등학교, 그리고 청원고의 코치를 하다가 안양 충훈고 야구부의 창단 코치를 지냈다. 2008년 8월 건대부중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금 건대부중은 서울 최강 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임 당시 상황은 어땠나?

▲처음 부임했을 때 선수가 7명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교장은 야구부의 해체를 권유할 정도였다. 2009년부터 선수들을 차례로 모으고 그들을 훈련시켜 가며 다시 야구부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차츰 전력이 강화되며 야구부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해 대통령배를 우승하며 초등학교서 진학을 해오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서울 최강 팀으로 인정
제자들 프로 속속 안착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 장충고를 거쳐 지금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을 한 박찬호다. 올해 프로야구 드래프트서 포항제철고 이창율(LG 트윈스 지명)과 강릉고 김시현(삼성 라이언즈 지명)도 제자들이다. 두 선수 모두 3차 지명의 높은 순위로 프로구단에 지명됐다. 제자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지도자로서의 보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선수들 수급과 상급 학교로의 진학 상황은?

▲좋은 선수가 있다고 반드시 그 선수를 데리고 오는 스타일은 아니다. 지역적인 위치상 주로 강동구에 있는 초등학교, 고명초와 길동초, 둔촌초, 가동초, 그리고 중대초등서 선수들이 진학하고 있다. 근처 리틀야구단서도 선수들을 수급 받고 있다. 

고등학교는 주로 강북 지역, 덕수고와 장충고,경동고, 배재고, 청원고(구 동대문상고)로 진학을 시킨다. 속칭 ‘밀어넣기’라고 하는 진학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해당 선수의 특성에 맞게, 그리고 해당 고등학교의 감독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들을 맞춰 진학을 시키고 있다.

-중학교서 야구선수로 뛰는 시기는 사실 유소년야구의 취미 단계서 벗어나 전문적인 야구선수로 도입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그렇다. 정말 중요한 시기이고 신체적인 성장 과정서 선수별로 빨리 성장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성장이 더딘 선수도 있어서 힘의 차이가 개인별로 가장 많이 있는 시기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단지 잘 던지고 잘 때리는 개념서 확대 발전, 여러 가지의 다양한 기능으로 개인의 실력과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배워야 하는 시기다.

-이 연령대의 선수들에 대한 지도관은?


▲선수들을 어느 한 포지션에 정착시키지 않고 여러 포지션을 다양하게 경험하게끔 이른바 ‘로테이션’을 시키며 지도하고 있다. 때로는 그러한 포지션의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선수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일단 내가 지정한 포지션으로 시합에 투입하고, 그 시합이 끝나면 선수와 함께 그 시합에서의 역할에 대해 서로 복기하면서 논의와 설득을 한다. 이제까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거의 모든 선수들을 여러 포지션으로 경험케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선수든 체격 조건이나 성격에 맞는 야구의 포지션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운동신경이 전혀 받쳐주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그 선수의 특성에 맞는 포지션이 언제나 있다는 생각으로 포지션별 로테이션을 지도하는 기본 원리로 한다.

-SK 와이번스의 1순위 지명을 받은 투수 조성훈이 건대부중서 지도를 받은 선수라고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공을 던지는 피칭에 대한 자세가 좋았다. 투구 시에 공을 때릴 줄 아는 선수였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때까지 키의 성장이 느렸고 힘이 약했다. 중학교 졸업 당시의 키가 170센티 정도였을 거다. 그런데 부친의 키가 180cm 이상이었고 고등학교에 가서 2차 성장의 시기를 맞으면 반드시 키가 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모교인 청원고는 투수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학교고, 그곳으로 가면 투수로서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선배인 청원고의 윤성훈 감독께도 반드시 투수로 조련해줄 것을 당부했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10센티 이상 자랐다고 하던데 기대에 맞게 좋은 투수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프로선수로 발돋움 했으니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 국내 야구의 탑클래스 투수로 성장해주기 바란다.

-작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U15)로 화제를 돌려보자. 2015년 오사카대회에도 코치로 출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2014년 하와이대회에도 코치로서 참가했었다. 이 대회와 참으로 인연이 깊은 것이다. 일단 코칭스탭을 선임하는 데 있어 중학교의 감독들 중에서 나와 같은 유형의 야구철학을 가지고 있는 감독들을 지향했다. 

서울시 중학교 중에서 빠른 선수들을 주축으로 센스와 주루플레이에 의한 작전 야구를 많이 구사하는 강남중 김정길 감독을 수석코치로 해 작전의 구사와 전체 팀 전략을 논의했다. 역시 같은 유형이었던 성남중 하준형 전 감독을 주루와 야수코치로, 덕수중 공태웅 감독을 투수코치로 구성했다.

중학교 가장 중요한 시기
여러 포지션 경험해 정착


역시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작전 수행능력이 뛰어난 선수들로 선발 기준을 만들었다. 투수진 또한 여러 가지 유형의 선수들을 선발했는데, 애초부터 유형이 다른 여러 투수들을 로테이션의 형태로 경기마다 투입하려는 전략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야구에선 타격과 투수력의 슬럼프가 언제든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작전에 의한 공격과 여러 투수들의 로테이션 투입이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투수진의 운용에 있어서 내가 견지했던 원칙은 항상 모든 투수를 기용하면서 위기 시에는 투수의 교체를 빨리 가져간다는 것이었다.

-선전한 대표B팀의 수준을 감독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일단 우리 또한 중학교 3학년 연령의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정예 인원을 선발했다. 그러한 선수들의 구성에 만족했으며, 선수들 또한 뛰어난 기량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둬줬다. 속초서의 강화훈련과 연습경기 때는 팀의 타격이 터지지 않아 작전에 의해 득점하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선수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갖게 해줬다. 

우리가 뒤져있을 때도 언제든지 득점으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선수단 전체에 돌고 있었고, 결승전서도 무너지지 않고 선전할 수 있었다.

훈련기간 중에는 작전에 의한 야구연습을 많이 했다.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 올린 후, 본 대회에 들어가서는 몇 차례 필요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작전을 구사하지는 않았었다. 

이번 대회 모든 과정을 통해서 선수들의 실력이 몇 단계 향상됐다고 확신한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과 구성이 너무 좋았고, 코칭스탭의 구상을 잘 따르고 이행해준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모든 선수들의 성실한 태도 또한 매우 보기가 좋았었다.

-마지막으로 자라나는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대학 시절 ‘야구 천재’라고 불리는 이종범(전 기아 타이거즈)과 함께 생활을 하며 그의 훈련과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나의 1년 선배고, 숙소의 같은 방을 사용하며 내가 훈련을 보조했다.

옆에서 지켜 본 바에 의하면, 이종범은 타고 난 재질뿐만 아니라 자기관리와 근성 또한 최고의 수준이었다. 개인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훈련하는 동안의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러한 훈련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으면 (예를 들어 누군가 다른 선수가 옆에서 잡담을 하거나 떠드는 등)개인 훈련의 시간을 바꿔가며 홀로 집중력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훈련하곤 했다. 

그 외의 시간에는 취미와 여가를 충분히 즐겼다. 언제인가 시합 중에 베이스런닝 도중 부상을 당해 발목이 돌아갔던 적이 있었는데 대회가 끝날 때까지 퉁퉁 부은 발목을 일반 테이프로 칭칭 감고 나가 또 도루를 하기 시작했다. 천재는 타고 난 재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야구서도 훌륭한 선수는 최고의 근성과 혹독한 자기 관리, 그리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선수들이 이러한 얘기를 꼭 귀담아 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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