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판결]차량 뒷좌석 성폭행, 운전자는 무죄?

2011.06.17 06:00:00 호수 0호

몰랐을 리 없어…“운전자도 합동강간” 유죄

운행 중인 차량 뒷좌석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면 운전한 사람은 아무 죄가 없는 것일까. 예상은 빗나갔다. 최근 재판부는 이 같은 상황에서 운전한 사람에게도 강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운전을 하느라 성폭행이 이뤄졌는지 몰랐다"는 운전자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는 판단이다. 공간특성상 몰랐을 리 없다는 것. 강간범과 운전자, 두 사람의 그날 밤으로 돌아가 보자.



주점 아가씨 2차 협박 꾀어내 차량에서 성폭행
운전자 ‘몰랐다’ 주장, 법원 항소심서 유죄 판결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부장판사 황한식)는 지난 8일 이모(35)씨가 모시던 형님이 차안에서 술집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해 당시 운전을 했던 이씨도 합동 강간한 것으로 인정,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운행 중인 차량 뒷좌석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면 운전석의 동승자에게도 강간죄가 인정된다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온 것.

달리는 차안에서…

이씨는 지난 2009년 12월 조직폭력배 행세를 하며 형님으로 모시던 하모씨와 함께 서울 강남 역삼동에 있는 유흥주점을 찾았다.

다음날 지방의 후배들과 약속을 잡아놓은 이들은 다음날을 위해 평소보다 빨리 술자리를 마쳤지만 뭔가 허전한 기분을 채울 길이 없었다. 사실 하씨는 유흥주점에 들어서 술을 마시면서부터 해당 업소의 여종업원 A(27)씨에게 마음이 있었다. 속된 말로 꽂힌 것.

하씨는 술자리를 마친 이후 줄기차게 A씨에게 속칭 2차를 요구했지만 A씨는 다른 손님들을 접대해야 한다는 이유로 2차에 응하지 않았다.

A씨의 거절에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하씨는 2차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보다 못한 이씨는 A씨에게 다가가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해라. 너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면서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겁에 질린 A씨는 결국 콜 기사가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 뒷좌석에 강제로 탑승했고, 옆자리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씨가 앉았다.

하씨를 형님으로 모신다던 이씨가 운전대를 직접 잡았다. 이씨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부터 시속 180km의 속도로 질주를 시작했고, 차 안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음악 볼륨을 크게 올렸다. A씨에게는 공포의 변주곡과 다름없었다.

하씨는 이틈을 타 A씨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차량에 탑승한 이후 겁에 질려 울기만 하던 A씨는 하씨의 손을 뿌리치며 거부하기만 할 뿐 소리를 지르거나 별다른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A씨가 하씨에게 반항하지 못한 것은 이씨의 거친 운전에도 이유가 있었다. 이씨는 시속 180km의 속도로 고속도로를 가로질렀고, 또 거침없이 앞 차를 추월하는 등 공포심을 더했다. 

그럴수록 하씨의 손짓은 더욱 대담해졌다. A씨가 항거불능 상태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 몸을 더듬는 추행을 넘어 승용차 안에서 A씨를 성폭행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욕구를 채운 하씨는 또 다른 가학행위 없이 A씨를 돌려보냈고, 공포의 시간에서 벗어난 A씨는 하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A씨의 고소로 시작된 수사에서 하씨는 특수강간죄가 인정됐고, 이로 인해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합동강간 인정 


문제는 차량 안에 함께 있었지만 자신은 운전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씨의 특수강간죄 성립 여부에 있었다.

이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하씨와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으며, 시속 180km의 속력으로 다른 차량을 추월하면서 운전하는데 전념하느라 뒷좌석에서 성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근거리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씨 진술의 거짓 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1심은 이씨에 대해 A씨를 차량에 강제로 감금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하씨와 함께 합동으로 강간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부터 재판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성폭력 사실을 몰랐다”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은 원심과는 달리 이씨가 하씨의 강간 행위와 협동관계에 있었다고 판단,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하씨가 유흥주점에 왔을 때부터 피해자와 2차를 노골적으로 원했던 점에 비춰 피고인은 하씨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시도할 것임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당시 차량이 속력, 음악 볼륨 등을 고려하더라도 차량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불과 1m 정도 앞자리에서 운전 중이던 피고인이 이를 전혀 인식조차 못 했을 것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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