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그룹 오너일가 ‘수상한 땅 거래’ 숨은 진실 <추적>

2011.06.02 17:04:15 호수 0호

헐값 거래로 파이 키워 피붙이 입에 한 입씩 ‘쏙’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태평양그룹 오너일가의 표정이 한결같이 오묘하다. 애써 태연한 척 딱 잡아떼면서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양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상한 땅 거래’ 때문이다. 합법과 탈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수법에 비판을 넘어 감탄의 목소리마저 들려올 정도다. 수법이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너일가는 주머니 부풀리기와 절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정과 상생이 화두인 지금, 표정 관리는 필수다.

용산 일대 부동산 가격 상승 예견된 시기에 거래
실거래가 평당 4000만원 610만원에 거래…헐값 매각



때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지난 2003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태평양그룹은 회사 소유인 용산구 한남동 일대 2필지 929.6㎡(약 282평)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의 모친인 변금주 여사에게 매각했다.

이 토지의 당초 고 서성환 창업주의 셋째 딸 은숙씨의 소유였다. 은숙씨는 1979년부터 이 토지를 보유해오다 1994년 태평양개발에 명의를 넘겼다. 이어 1998년 지주사인 태평양을 거쳐 2003년 다시 변 여사에 소유권이 넘어왔다.

오너가와 회사 사이에서 이뤄진 거래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거래가 주목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변 여사가 회사로부터 문제의 땅을 사들인 시점이다.

부동산 최초 소유자
셋째 딸 서은숙씨

당시는 용산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요동친 시기였다. 용산 역세권을 중심으로 대대적 개발 투자가 예견된 때문이었다.

우선 서울시는 지난 2000년 용산구 일대를 재개발하는 ‘용산부도심 지구단위계획안’을 확정했다. 용산 개발 프로젝트는 용산 역 뒤편에서 한강변에 이르는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을 포함한 한강로 변 56만6800㎡부지에 600미터 높이의 국내 최대 규모 랜드마크 타워 및 상업, 주거, 문화 등 각종 시설을 조성,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심장이자 서울의 상징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시는 즉시 재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용산재개발구역은 물론 한남동, 이태원동 등 재개발 인접 지역 일대의 땅값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용산 땅이 강남에 이은 ‘금싸라기’로 급부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히, 변 여사 태평양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2003년에는 용산재개발 사업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지던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업이 급물살을 타리란 장밋빛 전망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매입 당월인 10월은 ‘용산부도심 지구단위계획안’에 의해 KTX 용산역 민자역사가 준공된 때다. 동시에 한남뉴타운 지역선정 발표를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모든 상황이 맞물렸다. 부동산가 상승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태평양개발에게 용산의 땅은 ‘그림의 떡’으로 남았다. 변 여사에 문제의 땅을 매각한 때문이다. ‘닭 쫓던 개 지붕만 바라보는’ 꼴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제값을 주고 판 것도 아니었다. 당시 시세에 훨씬 못 미치는 헐값에 넘겼다. 해당 부지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인접한 배후 주거지로 이촌동과 함께 용산개발의 최대 수혜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태평양개발이 변 여사에게 받은 돈은 17억1900만원, 평당 610만원정도다.

2003년 매각 당시 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평당 558만원(현재 1288만원)이었다. 하지만 이는 공시 지가 기준으로 산정한 가격일 뿐이다. 현재 이 부근의 땅은 평당 4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2003년 당시에도 가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이 일대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말을 감안하면 태평양개발의 ‘특별한 배려’로 변 여사는 7배 이상의 두둑한 수익을 챙긴 셈이다. 여기에 재개발로 인한 상승효과를 고려할 경우 변 여사가 앞으로 취할 이득은 매입대금의 수십배에 달하게 된다.

공시에 따르면 해당 부동산의 매각 목적은 ‘자산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유휴부동산 매각’이다. 그러나 뻔히 보이는 이득을 발로 찬 건 결코 효율적인 자산 활용이라고 볼 수 없다. 오너 일가에 부동산을 헐값 매각한 것을 두고 회사 기회이익의 편취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너일가의 ‘수상한 거래’가 회사의 손해는 물론 태평양그룹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시세 차익 노리고
토지 거래 의혹

그럼에도 이 거래는 아무런 잡음 없이 진행됐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태평양개발은 서 사장이 100%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인 때문이다. 애초부터 태평양개발에 거부권은 없었단 얘기다.

이 거래의 배경에 대해선 뚜렷하게 알려진 바 없다. 정황상 오너일가가 시세차익을 노리고 토지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여기에 한 가지 의혹이 함께 제기됐다. 증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거래를 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부동산 관련 세법에 따르면 토지 등을 시가보다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할 경우에는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적용범위는 실거래가격 30% 이상 혹은 이하다. 변 여사도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표면상 매매로 분류돼 증여세는 피해간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개발, 서 사장의 사실상 개인회사…거부권 없나
세금 아끼기 위해 매매 가장한 편법증여 의혹 제기도

또 변 여사는 해당 부동산을 지난 2009년 6월 첫째 딸 송숙씨와 둘째딸 혜숙씨를 비롯해 총 13명의 자녀, 사위, 손자, 손녀들에게 증여했다. 이 중에는 올해 13살에 불과한 미성년자도 포함돼 있다.

부동산을 할머니가 손자에게 바로 증여하면 통상 30%의 할증과세가 붙는다. 그러나 한 번의 증여세와 취득등록세만 내면 되기 때문에 세 부담이 최소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너 일가가 절세를 위해 이 같은 거래를 벌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이 거래에 불거진 의혹들을 정리해보면 ▲서 사장의 개인회사인 태평양개발은 변 여사에 폭등이 예상되는 땅을 헐값에 매각 ▲변 여사가 이를 특수관계인들에 증여 ▲변 여사가 땅을 구입·증여한 것은 절세 목적 등이 있다. 이 같은 의혹들은 새로운 의혹을 낳으며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오너일가를 비롯한 태평양그룹은 일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굳게 다문 양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오는 2016년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완공을 앞두고 있어서다. 따라서 오너일가가 현재 보유한 있는 부동산 가격에 프리미엄이 더해져 보다 큰 시세차익을 거둘 전망이다. 그리고 그 이득은 고스란히 태평양그룹 오너일가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윤리 경영 다짐
공든 탑 와르르

공교롭게도 거래가 이뤄진 2003년은 태평양이 창립 58주년을 맞아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키로 한 해다. 선포식에서 서 사장은 참석자들은 보다 성실한 자세로 생활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시스템에 따라 일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자고 다짐했다. 이때가 9월. 그로부터 불과 한 달 후 서 사장은 윤리경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일을 벌였다.

이후 서 사장은 윤리경영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속가능경영대상 대통령상, 자랑스런 코넬 동문상, 경영학자 선정 경영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그간 공들여 쌓아온 서 사장의 위상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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