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검이 노리는 사람들

2017.01.02 11:32:11 호수 1095호

교도소 담장 위 걷는 왕년의 실세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한때 ‘끗발’ 날리던 정권 실세들이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됐다.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정부서 잘 나갔던 인사들이 줄줄이 특별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판이 커진 탓이다. 예상치 못하게 수사 대상에 오른 6인의 면면을 살펴봤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빌딩 18층.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본격 수사 착수를 알리는 현판식이 지난 달 21일 오전 9시에 열렸다. 박영수 특검과 박충근·양재식 특검보, 수석파견검사인 윤석열 검사, 어방용 수사지원단장이 줄을 당기자 하얀천이 벗겨지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이라고 적힌 현판이 드러났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박 특검과 4명의 특검보 등이 박수를 쳤다. 박 특검은 “국민의 뜻을 잘 읽고, 법과 원칙에 따라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올바른 수사를 하겠다”고 했다.

박 특검과 윤 검사 등이 박수를 치며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던 순간,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로 특별검사팀 소속 파견검사와 검찰 수사관, 특별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특검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자로 지목된 관계자들의 집무실과 자택도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지금까지 특검팀의 행보는 법조계서도 예상 밖의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정권 실세들을 향해 칼날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특검의 먹잇감이 될 위기에 처했다.

‘타깃 1호’ 김기춘


특검팀의 김 전 실장 자택 압수수색은 그에 대한 수사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브리핑서 “김 전 실장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피의자로 입건돼 검찰 수사를 받아왔다. 지난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수사 단계에서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하는 데 그쳤고 압수수색 등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김 전 실장에 대해 2014년 김희범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에게 문체부 1급 실·국장 6명의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만 적용했다.
 

하지만 상황은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으로 급반전했고, 특검팀도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유의미하게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이 2014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청와대 비서관 회의 내용서 지시한 내역을 담은 비망록에는 그의 인사전횡, 권력남용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가다.

일각서 제기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도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는데…지금은 용의자
대부분 직권남용 혐의…줄줄이 압수수색

실제로 특검팀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9473명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일부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 블랙리스트 배후에 김 전 실장이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재임 중 김진태 전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외압을 행사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 전 총장과 자주 통화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2014년 말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당시 정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서울중앙지검의 자체 판단이 아니라 김 총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던 일로 밝혀졌다.

‘특검 성패 핵심’ 우병우

우 전 수석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실을 알고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특검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도 최씨에 대해서 조사를 한 적이없다.

또 최씨의 측근인 차은택씨가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예산을 횡령하고 인사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도 내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 전 수석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알고도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해 묵인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수사를 방해한 적권남용 의혹도 받고 있다. 우 전 수석은 2년 전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은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있던 2014년 6월5일 오후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청 본청을 압수수색하던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를 압수수색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이 세월호 침몰 당시 청와대와 해경 간 통화 내역 등 민감한 내용이 일부 보관된 서버를 압수하려 하자 우 전 수석이 청와대 측 입장이나 의견을 전달하려 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우 전 수석은 가족회사 ‘정강’서 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과 의경으로 복무한 아들의 보직 특혜 의혹도 있다. 가족 회사를 만들어 정강이라는 회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자금을 유용한 의혹이 있다.

또 이 과정서 처가에서 부동산을 차명 보유했으며 재산 신고를 축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아들이 의경 보직을 받았는데, 경찰 간부의 운전병으로 차출돼 특혜라는 의혹도 나왔다. 당시 경찰 측은 우 전 수석 아들이 “코너링을 그렇게 잘 해서 거기에 갔다”고 해명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서류를 지난달 26일 인수했다. 특검팀은 이날 검찰 특별수사팀으로부터 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을 수사한 서류 사본을 넘겨받았다. 특검팀이 우 전 수석의 비위 의혹 전반에 관한 자료를 확보한 것은 특검법에 수사 대상으로 명시된 최순실 비호, 직권남용 의혹 외에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 혐의 전반으로 수사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부상하는 의혹’ 조윤선

특검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설 전망이다. 조 장관이 그 리스트를 작성 및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문체부는 가장 먼저 측근비리의 진원지로 지목받았다.

이른바 ‘최순실 차은택 예산’은 조 장관이 장관직에 앉은 뒤 수천억원대로 불어났다. 문화계 인사들에 대한 폭넓은 보복 조처를 시사하는 블랙리스트도 발견됐다. 블랙리스트는 반정부인사로 분류할 만한 문화계 인사들의 이름과 직업이 빼곡하게 나열된 명단이다.
 

2014∼2015년 작성된 것으로 파악된 블랙리스트에는 박원순·문재인 등 야권 정계 인사를 지지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명목을 들어 낙인을 찍은 경우도 수천명에 달했다. 조 장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해당 리스트가 실제로 있느냐는 질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따른 위증, 증거인멸 의혹 등의 조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조 장관은 문체부 관계자에게 서울 서계동 사무실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를 교체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함께 문체부는 블랙리스트 관련 작업을 했던 문체부 예술정책국 예술정책과의 컴퓨터 2대 하드디스크를 지난달 초 교체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편 조 장관과 김 전 실장은 현 정권이 불편해하는 문화계 인사 1만여명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한 혐의로 지난 12일, 문화예술단체로부터 특검에 고발됐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 책임자와 작성 경위 등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도 예상된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당시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을 소환키로 했다.

‘못잡나 안잡나’
[정유라]

특검팀이 독일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를 지난달 27일,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했다.(정씨는 지난 1일(현지시각), 덴마크의 올보르시 한 주택서 현지경찰에 의해 불법체류죄로 체포됨) 특검팀 측은 “정유라씨에 대해 금일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했다”며 “인터폴 적색수배는 여권 무효화를 신청만 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고 덧붙였다.
 

적색수배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내리는 국제수배다. 180여개 인터폴 회원국 어디서든 신병이 확보되면 수배한 국가로 강제 압송된다.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나 조직폭력사범, 50억원 이상의 경제사범 등이 주 대상이지만 그 외 체포영장이 발부된 주요 형사범도 요청 가능하다.

특검팀은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등을 받는 정씨에 대해 법원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독일 사법당국과의 공조 절차에 들어갔다. 정씨를 기소중지·지명수배하면서 압박 강도를 높였다. 외교부를 통한 여권 무효화 조치에도 착수했다. 정씨는 독일 현지서 변호인을 선임하고 특검 수사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등 핵심 관계자에 대해서도 보강수사를 벌여 정씨 부정입학과 교육부 주요 재정지원사업 수주 간 대가성 입증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화여대는 올해 교육부 주요 재정지원사업 총 9건 중 8건을 따낸 바 있다.

앞서 검찰은 정씨의 특혜입학 의혹과 관련해 면접위원 및 교직원들을 줄소환한 바 있다. 최 전 총장과 남궁곤 전 입학처장,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등 핵심 관계자들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연금으로 장난?’ 문형표

문형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있던 2014년 7월,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을 의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은 지난달 27일, 문 이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으며 이튿날 오전 1시경 긴급체포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의 의견을 듣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소속 투자위원회 결정만으로 찬성을 의결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합병 반대 권고도 무시됐다.

칼날 피해갈 수 있을까
뇌물 혐의 입증이 관건

특검은 이처럼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을 밀어붙이는 과정에 청와대 등 윗선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닌지, 문 이사장이 여기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게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문 이사장이 국민연금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한 정황은 이미 드러나 있다. ‘청와대 뜻’을 거론하며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특검도 “문형표 당시 장관이 합병 찬성을 직접 지시했다”는 관계자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이러한 의혹을 확인하고자 문 이사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영장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이사장은 지난해 11월24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국민연금 의사 결정에 관여한 바 없고, 청와대 지시나 삼성 측과의 사전 교감도 없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최 민원 해결?’ 홍완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장이 삼성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특검팀에 두 차례 걸쳐 밤샘 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은 지난달 26일 오전 9시30분쯤 홍 전 본부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한차례 불러 이튿날 새벽까지 밤샘 조사를 진행한 데 이어 다음날 특검 사무실로 재소환했다.

앞선 조사에서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을 상대로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자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을 국민연금이 승인한 대가에 해당하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홍 전 본부장이 고문으로 있는 투자회사인 프라이머리 인베스트먼트에 삼성이 돈을 지급했다는 의혹도 특검팀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을 포함한 합병 의결 과정의 핵심 관계자 조사와 국민연금·복지부 압수수색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삼성 ‘합병 민원’을 해결해주려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검팀은 홍 전 본부장에 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영장청구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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