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내정부터 낙마까지 풀스토리

2011.01.18 11:19:27 호수 0호

차관 찍고 부총리로?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 본 ‘한겨울밤의 꿈’


정치권에서는 이번 정동기(58) 전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관련, 득실 계산이 한창이다. 주로 제기되는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을 필두로 한 박지원 원내대표 그룹이 아닌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다. ‘안상수발(發) 부적격론’이 자진 사퇴로 이어진 가장 큰 원인이라는 판단에서다. 대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MB)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잘못된 인사로 인해 레임덕 시기가 앞당겨질 거란 얘기다. 이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펼친 또 다른 피해군(群)에는 실질적으로 ‘12·31 개각’ 관련 인사를 이끈 임태희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었다. 의원직 포기 6개월 만에 청와대에서 낙마해 ‘야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전 후보자 본인을 꼽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첫  ‘사전’ 자진사퇴
여야 집중 포화 속 지명 12일만에 꿈 ‘물거품’


정동기 전 감사원장 후보자는 지난 ‘12·31 개각’ 발표 직후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먼저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에서 각오를 밝힐 예정이라 내정 단계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 “담배 하나 갖다주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한나라당발 자진 사퇴 요구’ 소식을 전하는 방송 뉴스를 보고 “나는 그간 마이너리그로 살아왔다. 세를 모아 본 적도 없고 절제하며 소신껏 살아 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사청문회 전 자진사퇴
각종 논란 제기돼 ‘송구’

그는 “민정수석 마치고 변호사를 했으면 수십억을 벌었을 텐데 (사건)수임으로 돈 버는 게 싫어 그냥 정부 법무공단 이사장으로 갔다. 나에게 공직이 천직인데”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정 전 후보자 부인이 곗돈 등을 부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알뜰살뜰 살아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 전 후보자는 지난 12일 결국 자진 사퇴했다.

그는 대검찰청 차장검사에서 물러나면서 법무법인 ‘바른’의 대표변호사로 자리를 옮겨 7개월 간 7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같은 ‘전관예우’와 관련된 돈 문제와 대통령 최측근 참모인 민정수석을 역임한 ‘출신지’에 따른 ‘감사원 독립성’ 침해 가능성 문제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사퇴는 감사원장 후보 내정 12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지난 2003년 감사원장에 대한 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후보자가 청문회 시작 전 사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보 지명 이후 12일간 막혔던 그의 말문은 사퇴의 변을 밝히는 자리에서 시원하게 터졌다. 정 전 후보자는 회견 당일인 지난 12일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으로 출근해 사무실에서 홀로 사퇴문을 읽으며 문구를 가다듬고 심경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짙은 남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오전 11시30분 통의동 금융감독원 별관에 마련된 기자 회견장에 입장했다.

회견이 시작되자 정 전 후보자는 “저는 오늘 감사원장 후보자 지위에서 사퇴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부족한 사람이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돼 각종 논란이 제기된 데 대해 그 진상이 어떻든간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며 미리 준비한 사퇴문을 읽어 나갔다. 그는 “평생 소신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왔다”면서 “남에게 의심받거나 지탄받을 일을 일절 삼가며 철저히 자기 관리를 하고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한다”고 말했다.

두루미는 미역 안 감아도 새하얗고
까마귀는 먹칠 안 해도 새까맣다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을 해명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청문회 없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재판 없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청문 절차를 정치행위로 봉쇄한 일련의 과정은 ‘살아있는 법을 정치로 폐지한 것’으로 법치주의에 커다란 오점”이라고 말했다.

정 전 후보자는 또 “30여년 법조 경력을 가진 변호사 급여와 이제 막 변호사로 출발하는 사람의 급여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액수가 많아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 회견장에서 이같이 밝히며 자신이 있었던 법무법인 ‘바른’의 급여 명세표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자신의 학벌과 관련된 언급도 했다. 정 전 후보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며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까지 문제 삼는 대목에서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수위서 MB와 ‘첫 만남’
천성관 낙마 책임 ‘민정수석 사퇴’ 

회견 말미에 정 전 후보자는 “이제 감사원장 후보자 직을 사퇴하고 평생 소홀히 해 왔던 가족의 품으로 ‘자연인’으로 돌아가려 한다”라며 당분간 공직을 맡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정 전 후보자는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통의동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홀가분하다. 집착을 떨쳐버리면 마음이 편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정 전 후보자는 그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직에서도 자진 사퇴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이유와 진상이 어찌 됐든 감사원장 후보자직을 사퇴한 사람이 공단 이사장으로 남아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정 전 후보자는 1953년 8월 부산에서 출생한 정통 법조인 출신이다. 고향은 경북(TK)으로 알려졌지만 서울로 이사와 경동고를 졸업했다. 그는 한양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사시 18회)에 합격한 뒤 1981년 검사에 임용돼 대구·인천지검장과 대구고검장, 법무부 차관 등을 거쳐 대검 차장검사를 지냈다.

정 전 후보자는 대구지검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 2004년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 운동을 검찰에 도입해 검찰 개혁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6시그마’는 당시 일부 기업들에서 활용되었을 뿐 공공기관에서 이 기법을 활용한 것은 정 전 후보자가 최초였다. 그는 2007년 11월 대검찰청 차장을 끝으로 27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 ‘대통령에 누 끼치기 싫다’
‘기타 대학(비SKY)이지만 뛰어났는데’ 일각 ‘아쉬움’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MB 당선’ 직후 정 전 후보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법무·행정 분과위원회 간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정 전 후보자가 사전에 MB와 각별한 친분이 있을 거라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임명장을 받으러 간 날 이대통령을 처음 뵀다”고 정 전 후보자는 밝혔다.

퇴임 바로 다음 달 인수위 간사를 맡으며 MB와 첫 인연을 맺은 뒤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현 정부 두 번째 민정수석을 지냈다. 그러나 2009년 7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자 후보자 선정 및 검증과정에 대한 총 책임을 지고 자리(민정수석)에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MB에게 “검찰총장 후보자의 선정 및 검증 절차의 불찰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것은 참으로 송구스러우며 소관 수석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보다 큰 꿈을 품어서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민정수석 퇴임 후 수십억 연봉의 변호사를 마다하고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자리에 취임했다. 2009년 9월 이후 임기 2년의 공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국회 본관 1층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직전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데 안됐다. 기타 등등의 학교, 말하자면 SKY 출신이 아니면 그 바닥에서는 다 기타 등등이다. ‘SKY’ 출신 아니고 법무부 차관까지 오른 사람이 거의 없는데 (얼마나) 몸가짐을 잘 했으면 거기까지 올라갔겠느냐”라고 말했다. 정 전 후보자와 김 원내대표는 한양대 동문으로 나이는 김 원내대표가 2살 더 많다.

‘비SKY 출신’ 비주류
어떤 세력도 지원 안 해줘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경우 민주당이 그동안 인사청문회에서 문제로 삼았던 이른바 4대 의혹에 해당하는 사안이 한 가지도 없다”면서 “자진 사퇴하기에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라고 말했다. 4대 의혹이란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세금탈루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 논문표절을 더해 ‘4+1’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낙마 과정에서 한나라당 ‘메인 스트림’의 엄호 사격은 거의 받지 못했다. 이는 그가 ‘정통 TK출신’도, 현 정권 최대 실세 학맥인 ‘고대’ 출신도, 이 사회 최대 실세 그룹인 ‘서울대’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인데 이 같은 분석이 설득력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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