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2016.06.20 09:24:32 호수 0호

줄리언 반스 저 / 다산책방 / 1만5000원

‘보이지 않으면 믿지도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로서 내세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기대도 품을 수 없었던 그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유쾌한 토론을 벌인다. 신을 그리워하는 태도를 질척하다고 일갈해버리는 철학과 교수 형, 무신론자이자 공산주의자 어머니, 전신을 지배하는 병마와 싸우다 병실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까지…….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인 줄리언 반스와 영국 문학의 제왕으로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죽음을 면밀히 파헤친 줄리언 반스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해낸 에세이다.
줄리언 반스는 사생활을 공개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작가이지만, 이 책에서만은 다르다. 줄리언 반스의 가족은 멀리서 봤을 때 평범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훌륭해 보이기까지 하다.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 프랑스성애적(?) 고상한 품격을 갖춘 할머니, 온화하고 관대한 아버지, 노동당 출신의 어머니, 철학과 교수 형까지.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반스의 가족은 괴팍하며 쩨쩨하고 뒤틀린 면 또한 있다. 우리의 가족이 그러하듯이.
줄리언 반스가 기억을 더듬어 캐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작가, 작곡가, 종교인,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자유주의자나 냉소주의자 등의 에피소드들로 한데 얽혀 천태만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술자리 수다 같은 일화들과 고금을 통해 전해오는 주옥같은 경구들이 섞여 있는 매우 독특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줄리언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작가, 작곡가 등 역사적 위인들의 한마디를 되새긴다. 죽음에 대한,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 할 만한, 작가나 작곡가가 아닌 일정한 생의 주기를 마무리할 운명에 처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내뱉은 한마디를. 그는 자신의 이런 작업의 이유를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쥘 르나르의 말로 대신한다. “죽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책에 의지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반스는 작가와 작곡가들이 남긴 기록들을 샅샅이 파헤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한 예로 줄리언 반스는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죽음과의 대화>의 한 장면을 든다. 인간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냐고 묻는 비행사에게 케스틀러는 “난 한 번도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죠”라고 답한다. 이에 반스 또한 죽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자신의 부모처럼 될까봐 두렵다고 고백한다.
영국 문학의 제왕으로 불리며 맨부커상, 메디치상, 구텐베르크상 등 명망 있는 상을 줄줄이 받아온 그도, 결국은 작가이기 전에 한 인간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산다는 말이 있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언젠가 찾아올 절멸을 상상했을 때 두렵긴 마찬가지다.
줄리언 반스는 작가로서 또 인간으로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한 번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고백한 죽음에 대한 솔직한 에세이인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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