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호남을 방문해 “특정세력에 좌우돼선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며 문 전 대표와 친노(친노무현계)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 대표는 “총선이 끝나면 여야의 대권 후보가 여기저기서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더민주에는 대선주자가 문재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다른 대선주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를 영입해 왔을 때만 하더라도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는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러닝메이트 성격이 아니겠냐’고 예상했었다. 김 대표가 비례대표직에 집착한 것도 본인이 원내에 있어야 차기 대선후보 지원이 용이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최근 문 전 대표를 향한 김 대표의 싸늘한 태도는 기존의 예상을 완벽하게 뒤엎는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호남을 방문해 “대리인이나 바지사장 노릇을 하려면 여기 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의 대리인 성격이 아니냐는 주변의 평가를 다분히 의식한 발언이었다.
김 대표는 또 “특정세력에 좌우돼선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며 “총선이 끝나면 여야의 대권 후보가 여기저기서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문 전 대표와 친노 진영을 정면으로 겨냥한 발언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다른 대선주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김종인의 노림수
문재인과 결별?
이를 뒷받침하듯 더민주가 전략공천한 광주 북갑의 더민주 정준호 후보는 문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정 후보는 더민주가 3선의 강기정 의원을 컷오프 시킨 후 전략공천한 정치 신인이다. 강 의원의 컷오프와 정 후보의 전략공천에는 김 대표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후보는 “모든 선거에서 참패를 하고도 책임지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며 문 전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 후보는 문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를 촉구하며 국립 5·18 민주묘지부터 금남로 5·18 민주광장까지 3보1배 행진을 하기도 했다.
정 후보의 이 같은 돌발행동에 대해 김 대표는 정 후보를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후보로서 지역사정을 엄밀히 검토하면 그런 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민주에서는 정 후보의 돌발행동에 대해 “지역에서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심각하니까 표를 얻기 위해 문 전 대표와 의도적으로 선을 그은 것 같다”고 해석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김종인 대망론에 이은 대권주자 교체론
김종인은 새로운 대권주자를 원한다?
김 대표가 문 전 대표에게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호남의 반문 정서 때문이다. 노무현정부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최근 SNS에 “광주의 반문 기류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는 “며칠 전 광주에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의 반문 기류가 장난이 아니었다”며 “노무현정부 시절 전라도 홀대 시리즈가 네비게이션 안내처럼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 대선주자는 대선주자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 9단인 김 대표가 그걸 모를 리 없다”며 “현재로선 문 전 대표가 호남의 민심을 다시 되돌릴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내년에 대선이 치러지는데 김 대표로서는 다른 대선주자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겠냐”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민의당 김한길 의원은 호남 지원 유세에 나서 “광주가 환영하지 않는 야권의 대선후보는 있어본 일이 없다”며 문 전 대표를 공격하기도 했다. 호남이 환영하지 않는 야권의 대선후보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은 문 전 대표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문 전 대표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난 8일과 9일 호남을 전격적으로 방문했다. 문 전 대표 측은 “이번 방문은 특정후보의 지원보다는 호남민들에 대한 ‘위로’ ‘사과’ ‘경청’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총선 지원보다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호남 민심 달래기 성격이 더욱 강한 것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문 전 대표의 호남 총선 지원을 사실상 반대해왔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 유세에 대해 “검토하는 건 자유지만 모르겠다”며 “출마자들이 요청하면 올 수도 있겠지만, 현 상황으로 봤을 때 과연 요청할 사람이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호남 민심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김 대표는 그래도 문 전 대표가 호남 방문을 강행하려고 하자 “그러고 다니면 호남 민심은 더 나빠진다.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며 “(일부)지지자들이 반겨주는 것에 심취되면, 정치인으로서 판단 미스를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스스로 자제하고 참아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김 대표께서 우리 당을 안정시키고 확장하는 것은 잘해주고 계신다”며 “그러나 지금 선거는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지지층들을 함께 끌어내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호남 방문 금지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이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에 동행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문 전 대표가 선거를 5일 앞둔 시점에 호남을 방문하자 호남민들은 더욱 분개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 전 대표는 지금까지 호남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선거를 5일 남기고 찾아가 사과하면 호남민들이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아주 오만한 생각”이라며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행보는 호남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가 진심으로 호남에 사과하고자 했다면 좀 더 오래전부터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제거
손학규 옹립
문 전 대표의 너무 짧은 정치 경력도 문제다. 문 전 대표는 더민주의 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초선 의원이라는 한계가 있다. 김 대표도 지난 201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은 정치 경험이 너무 없다.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본다”며 “인품 좋고 깨끗한 이미지가 강점이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그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또 문 전 대표는 지난 해 전당대회에서 자신에게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죽을 고비를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문 전 대표는 당시 “당 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저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총선 승리를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대선후보가 될 수 있겠냐”고 말했다. 현재 더민주의 총선 전망은 매우 어둡다. 야권이 분열되면서 100석 건지기도 힘들다는 전망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문 전 대표는 책임론에 휩싸일 텐데 과연 야권 대선주자가 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나아가 친노 진영은 적극적인 지지층이 있는 반면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확장성의 명확한 한계를 드러냈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김 대표로서는 문 전 대표를 배제하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김 대표가 야권연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총선 패배의 책임을 떠넘겨 문 전 대표를 제거하기 위한 복안이 아니었겠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총선에서 패배하면 김 대표에 대한 책임론도 일시적으로 제기되겠지만 비례대표 의원직까지 사퇴할 필요는 없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잠행 하고나면 차기 대선에서 충분히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더민주, 총선이후 손학규당으로 변모?
야권 뒤흔드는 김종인의 노림수
문 전 대표를 대신해 새롭게 뜨고 있는 인사는 바로 손학규 전 고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 7일 손 전 고문의 총선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문 전 대표의 총선 지원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김 대표는 손 전 고문에게는 읍소하다시피하며 총선 지원을 요청했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수도권 지원이 효과가 있다고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건 문 전 대표에게 물어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김 대표는 이날 “손 전 고문은 우리 당대표를 역임하셨고, 유력한 대통령 주자였다”며 “정계를 은퇴하시고 강진에 내려가 계신 분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기가 대단히 송구스럽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출마한 우리 후보들이 손 전 고문의 후원을 원하고 있고, 손 전 고문께서도 항상 선공후사의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손 전 고문께 간절하게, 남은 기간 동안 더민주를 도와주십사 공식적으로 요청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김성수 대변인에 따르면 김 대표는 이미 지난달 친손(친손학규)계로 분류되는 정장선 선거대책본부장을 손 전 고문이 칩거하고 있는 강진에 내려 보내 선거 지원을 요청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손 전 고문과 전화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수많은 러브콜에도 꿈쩍도 안하던 손 전 고문은 김 대표의 제안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손 전 고문은 이날 전남 강진에서 상경해 다산연구소가 주최한 ‘다산 정약용 선생 180주기 묘제·헌다례’에 참석해 정치 복귀의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다.
손 전 고문이 강진에서 칩거를 시작한 이후 국내에서 개최된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김 대표가 손 전 고문에게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약속하고 총선 지원을 요청한 것 아니냐는 정치 거래설까지 나돈다.
친노 극복?
대결 임박
김 대표가 꾸린 당 비대위에는 손 전 고문의 사람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오래전부터 김 대표와 손 전 고문의 교감설이 정치권에서 제기됐었다. 더민주의 선거대책본부장·총선기획단장·공천관리위원을 겸했던 정장선 전 의원은 손 전 고문의 오른팔로 불렸던 인물이고, 이철희 전략기획본부장, 김헌태 정세분석본부장, 민병오 경선관리본부장, 이학노 운영지원본부장도 손 전 고문 사람들로 분류된다.
손 전 고문 복귀의 토대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평가다. 물론 문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 진영이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이번 공천 결과 친노 세력이 다소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더민주의 최대계파는 친노라는 것이다. 과연 김 대표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