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지역경제진흥원 조대원 원장

2015.09.24 14:06:56 호수 0호

“나는 매일 쿠데타를 꿈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조대원 지역경제진흥원 원장은 매일 쿠데타를 꿈꾼다. 자칫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육사 출신인 조 원장을 생각하면 실로 그답다. 조 원장은 내년 총선에 초선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살벌한 정치판에 들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싶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쿠데타는 어떤 것일까.

 


조대원 원장은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육군 장교로 근무하다 대위로 예편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조 원장은 지난 2011년 출간된 <나는 매일 쿠데타를 꿈꾼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장르는 스스로가 재미없다고 인정하는 정치 에세이다. 이 책은 2쇄 발행까지 하고 있다. 
 
주변서 “미쳤어?”
 
조 원장은 “요즘 책을 출간해도 500권 이상 팔리는 비율이 20%정도이고, 1쇄가 다 나가는 경우는 10%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종이책 시장이 어렵다”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정치비평 에세이가 900권 가까이 팔린 것은 선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책 판매에 8할은 제목 때문일 것이다. 매일 쿠데타를 꿈꾼다는 게 어디 흔한 발상인가. 독자들은 이 제목에 끌려 조 원장의 책을 집어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 편집인도 제목을 본 순간 한눈에 끌렸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이 제목 때문에 조 원장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다. 특히 조 원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기에 더욱 민감한 문제였다. 조 원장 육사 동기나 선배들은 하나같이 ‘미쳤다’ ‘위험 단어를 쓰는 게 아닌가’ ‘제목을 바꿔라’ 등등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쿠데타'란 지배자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프랑스 말이다. 다시 말해 군사 반란이다. 학계에서는 쿠데타를 반민주주의 행위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도 쿠데타는 존재했다. 그 중심에 육군사관학교출신들이 있었다. 이런 탓에 쿠데타라는 단어는 육사 출신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조 원장의 동기나 선배들이 책 제목을 두고 쓴소리를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육사 출신…김덕룡 인연으로 여의도행
원희룡 특보 등 맡아 ‘정치시야’ 넓혀
 
조 원장이 ‘쿠데타’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가 한국 정치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술자리에서는 늘 나라 걱정과 정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며 “특히 서민들이 느끼는 심각한 삶의 무게와 절망감이 내게는 ‘이런 세상 한번 뒤집어져야 한다’는 현대판 민란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기존 체제와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들에게는 이런 민란이 쿠데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정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그는 민초를 대변할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2005년 고향인 경북 영천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그는 정치판에 첫발을 디뎠다. 조 원장은 “당시 뉴욕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했다”며 “재보궐선거가 결정된 게 2004년 가을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기회다 싶어 무작정 귀국해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당시 그의 나이 37살로 7명의 후보 중 가장 젊었다. 젊다는 게 고배를 마신 원인은 아니지만, 5년 만에 귀국해 단 몇 달 선거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한 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당시 선거 준비 과정 경험과 인연은 조 원장의 큰 재산이 됐다. 조 원장은 이후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김덕룡 의원을 만나 2007년까지 국회에서 상근 정책보좌관을 했다. 그 후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 뛰어든 원희룡 제주지사 의원 밑에서 전략기획특보를 맡아 선거 전략을 지휘했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1기 청와대 구성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 원장은 “이때의 경험이 너무 소중하다. 빨리 정치판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지만, 잘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고 한다. 바로 보좌관이 소속당에 눈도장이 찍혀 공천을 받는 방법이다. 19대 현역 국회의원 중에도 보좌진 출신이 20여명에 이른다. 과거에도 이름을 날린 보좌관 출신 의원들이 많다. 대부분 국회 보좌관을 거쳐 청와대, 행정부 등에서 경력을 쌓고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조 원장도 이들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조 원장이 국회에서 활동했다면, 올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 누구보다 유리했을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해 영건으로 조 원장을 점치고 있다. 
 
“이젠 내 정치하고 싶다”

민초 대변 정치인이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2012년 정치판에서 삶의 현장으로 나왔다. 조 원장은 “지금까지 운이 좋게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을 모셨다. 하지만 이들 정치인이 하고자 하는 정치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며 “내 정치를 배우고 실천하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2012년 이례로 3년이란 시간 동안 조 원장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특히 그가 현재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 ‘일산포럼’이라는 시민단체에서 사무총장을 하며, 지역 발전에 힘썼다. 하지만 조 원장은 이 활동을 하면서 많은 부조리를 목격했다고 고백했다.
 
현재 그는 고양시청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조 원장은 지난 2012년 논란이 됐던 고양시 와이시티(Y-CITY) 특혜 의혹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조 원장은 “시민들이 아직 이 부분에 의문을 갖고 있다. 고양시는 시민이 납득할 수 있을 해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조심스럽게 내년 총선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조 원장은 자신의 도전이 무모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하려면 돈과 줄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나와 거리가 멀다”며 “하지만 잘 준비해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일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보통사람이 내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도전 중
 
조 원장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가 2008년 미국에서 방광암 선고를 받고 병원비가 없어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돌리며 계좌번호까지 적어가며 도움을 요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2016년 총선 때 보통 사람이라는 줄 하나 잡고 다시 무한도전을 시작했다. 조 원장은 “이 무모한 도전이 쿠데타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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