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사중고 굴레’

2010.07.27 10:02:03 호수 0호

얽히고설킨 ‘사각트랩’목줄 죈다

최대주주 변경 굴욕…지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현대건설 인수’ 범현대가 결집에 방해입김 우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얽히고설킨 ‘사중고’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 경영권 위협, 집안 분위기, 실적 부진, 보유지분 하락 등 네 가지 이유가 고리 형태로 얽혀 정 회장을 괴롭히고 있다. 서로 사안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바로 돈 문제다. 모두 ‘실탄’이 부족해 생긴 고충이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최근 외국회사에 ‘윗자리’를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최대주주가 정 회장에서 미국 템플턴자산운용으로 변경된 것.

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15일 “템플턴이 장내에서 1.00% 지분을 매입하면서 지분율이 17.43%까지 높아져 17.06%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정 회장을 제치고 단일 최대주주로 올라섰다”고 공시했다.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의 장남이다. 정 회장이 1999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 오른 뒤 최대주주가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리 형태로 얽혀

세간의 시선은 템플턴 의도에 쏠리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현대산업개발 지분을 매입한 템플턴은 지분 인수 목적을 ‘일반 투자’로 밝혔다. 경영권 참여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현대산업개발 측도 “정 회장의 우호 지분이 25% 정도이기 때문에 경영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더러 템플턴과도 지금까지 한 번도 마찰이 없을 정도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템플턴이 ‘이빨’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향후 언제든지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템플턴은 2003∼2004년 SK그룹 경영권을 공격한 소버린자사운용 쪽에 붙었던 ‘과거’가 있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해서도 그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의견은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으로선 당장 현대건설 인수전이 걱정이다. 템플턴이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 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두 번째 고민이 여기서 시작된다.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현대그룹을 상대로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한라그룹 등 범현대가가 ‘현대 적통’을 계승하기 위해 결집하는 분위기에서 어떤 형태로든 일조해야 하는 입장이다. 현대건설은 옛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상징이다.

다시 말해 주력사업이 겹쳐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나몰라라 뒤로 빠져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템플턴이 방해라도 한다면 정 회장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대건설 인수전은 ‘실탄’싸움으로 정리된다. 현재 M&A시장에서 거론되는 현대건설의 인수가격은 3조∼4조5000억원에 이른다.

매머드급 매물인 만큼 단독 인수는 사실상 어려워 범현대가가 합심해야 매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범현대가 일원들이 어느 한 회사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정 회장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우선 회사 실적이 저조하다. 현대산업개발의 매출은 2007년 2조7613억, 2008년 2조6670억원, 지난해 2조1634억원으로 최근 3년 간 하락세다. 순이익도 3572억원, 2278억원에서 지난해 492억원으로 떨어졌다.

매출과 이익이 줄면서 회사 주가는 3년 새 반토막이 났다. 2007년 10월 한때 주당 10만원이 넘었던 주가는 현재 2만원대 중반으로 주저앉았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소유한 지분가치도 하락했다. 재계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정 회장이 보유한 상장사 주식 지분가치는 올초 3831억원에서 지난달 21일 기준 2846억원으로 무려 25.7%가 감소했다. 자산순위 30대 그룹 총수 및 최대주주의 지분가치가 같은 기간 평균 약 3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크게 대조적이다.

문제는 ‘실탄’


정 회장의 실탄 부족은 다시 템플턴 얘기로 돌아간다. 정 회장은 범현대가에 일조하기 위해선 주식 처분이 불가피한데, 그럴 수 없는 처지다. 템플턴을 의식해서다. 이는 곧 템플턴을 잡기 위해 지분을 늘릴 여유도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경영권 위협, 집안 분위기, 실적 부진, 보유지분 하락 등이 얽히고설킨 ‘사중고’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모두 돈만 있으면 단번에 해결될 고충이지만 문제는 정 회장이 그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으로, 이는 당분간 정 회장의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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