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끌어내린 '보이지 않는 손' 정체

2015.08.03 10:17:22 호수 0호

전방위 사정 압박에 결국 ‘백기’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이명박정부 시절부터 수많은 비리 의혹과 사퇴 압박 등에도 자리를 지켜왔던 민영진 KT&G 사장이 5년5개월 만에 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검찰의 수사 압박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MB맨’ 지우기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민영진 KT&G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민 사장은 임기를 불과 7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물러나게 됐다. 민 사장은 그간 검찰의 수사 압박을 받아왔다. 그가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을 두고 이명박정부 시절 임명된 이석태 전 KT회장과 포스코 전 정준양 회장 등 ‘MB맨’에 대한 수사의 연장선상이 아니냐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마지막 ‘MB맨’
 
지난달 29일 KT&G에 따르면 민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민 사장은 KT&G 대표이사 사장직에 대한 사의를 밝히고 후속 사장 인선 절차에 착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KT&G 측은 “민 사장이 본인의 책임과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해 퇴임을 결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지만 검찰과 경찰 등 전방위 압박에 따른 심적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KT&G는 후임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KT&G 사장은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자격심사를 거쳐 후보 1인을 추천한 후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최종 선임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김석우)는 민 사장이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정황을 잡고 그와 계열사 등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검찰은 분석 과정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포착해 비자금일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 사장은 2010년 취임하고 이듬해부터 소망화장품과 케이지시(KGC)라이프앤진을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해왔다. 이후 2013년 연임해 6년여 동안 KT&G를 이끌어왔다.
 
민 사장은 2013년 연임 이후 긴장의 나날을 보냈다. 2013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부동산 개발 용역비를 과다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민 사장을 검찰에 송치했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KT&G 청주 공장부지 매각 관련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민 사장을 압박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됐다. 이후 같은 해 전직 직원의 내부고발로 인해 국세청 조사관 100여명이 특별세무조사를 벌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다시 민 사장을 압박하면서 민 사장이 백기를 든 모양새다.
 
 

업계는 지난 2년 동안 검찰과 경찰이 민 사장을 겨냥해 수사했음에도 꼬투리를 잡지 못했는데 또다시 수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사실상 MB맨 솎아내기라고 분석한다.
 
수십억대 비자금 혐의에 사의 표명
검경 번갈아 수사…‘흔들기’ 의혹
 
민 사장은 비SKY 평사원 출신으로 직원들에게 누구라도 능력이 있으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사장 취임 이후 외국 담배회사들의 추격을 막아내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민 사장은 건국대학교 농학과 출신으로 1979년 기술고시에 합격한 후 86년 KT&G 전신이었던 전매청에 입사했다. 이후 2000년 경영전략단장, 2004년 마케팅본부장, 2005년 해외사업본부장, 2009년 생산부문장 등 주요보직을 거쳐 2010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24년 만에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곽영균 전 사장은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이다. 당시 곽 전 사장과 호흡을 맞췄던 이광열 상임이사는 고려대 농학과 출신이다. 민 사장은 건국대 출신으로 비SKY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자리에 올랐다. 이런 점을 미루어봤을 때 민 사장이 KT&G가 학벌보다는 능력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민 사장은 경영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외국산 담배의 거센 추격을 막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KT&G는 국내 담배점유율 90%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필립모리스 등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국내에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2009년 담배점유율이 62.3%까지 주저앉았다. 민 사장 취임년도인 2010년에는 58.5%로 60%대 벽이 깨지면서 위기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2011년 59%로 반등하면서 2012년에는 62%로 뛰었다. 2013년 61.7%로 소폭 낮아지긴 했으나 2014년 62.3%를 기록하며 민 사장 취임 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실적도 대폭 개선됐다. 2010년 당시 3조4614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조1129억원으로 6500억원 이상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조 1401억원에서 1조1719억원으로 300억원가량 증가했다.

누가 새 사장?
 
이 때문에 민 사장이 지난 2013년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대 CEO 중에서 5년 이상 자리를 유지했던 사장은 전임 곽 전 사장과 민 사장뿐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리솜리조트 수사 '진짜 표적은?'
 
농협중앙회 1000억원대 특혜 대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 하고 있다. 당초 대출을 받은 업체인 리솜리조트 신상수 회장의 개인비리 수사로 보였던 이번 사건에서 최 회장이 주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에 있는 H건축사무소 등 3곳에 각각 수사관 30명을 보내 재무·회계 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H건축사무소는 하나로마트 등 농협중앙회가 관할하는 유통시설의 건축이나 리모델링, 감리 등의 사업을 진행한 업체다.
 
일단 검찰은 이들 업체들이 대금 부풀리기 등의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H건축사무소가 농협이 발주하는 용역을 수주하게 된 경위와 비자금 조성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전날에도 서울 논현동 리솜리조트 그룹 본사와 계열사 4곳 등 총 5곳을 압수수색했다. 리솜리조트 그룹은 10년 전부터 경영 상황이 악화해 자본잠식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최근까지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중앙회는 리솜리조트 소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뤄졌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었고, 실제 이자도 정상적으로 상환되고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H건축사무소가 일감을 맡게 된 경위도 내부적으로 확인 중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농협중앙회 최 회장이 수사 타겟으로 급부상한 것을 두고 이번 수사가 ‘MB맨’ 솎아내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고등학교(포항 동지상고) 출신으로, 전 정권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2007년 농협중앙회 회장에 선출됐고, 2011년 연임에 성공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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