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항명 파문'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항명이 아니다. 정치 공세에 휩싸여 문제를 더 키우지 않을까 걱정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김 전 수석이 지난 9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른 국회 운영위 출석을 거부하고 전격 사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 의혹과 관련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JTBC>보도와 최모 경위 유서를 통해 알려진 민정수석실의 한모 경위 회유 의혹은 국회 운영위에서 야당의 집중 공격 대상이었다. 특히 <JTBC>에서 해당 사실을 언급한 한 경위와의 인터뷰 녹취록까지 갖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던 터였다. 때문에 이와 관련한 답변을 하기 곤란해 국회 운영위 출석을 거부하고 사퇴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둘째, 검찰 수사 도중 민정수석실이 청와대 문건 유출의 배후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주축으로 하는 '7인 모임'을 지목한 것이 '사실 무근'으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 굳이 국회 운영위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차피 나갈 사람인데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불 보듯 뻔한 국회 운영위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한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이 국회 출석 요구를 받기 전부터 사퇴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셋째, 여권에 대한 반감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 유출이 벌어진 뒤인 지난해 6월 임명됐다. 때문에 사안과 직접적 관련도 없는 자신의 출석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막지 못한 것에 대해 반감을 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강한 개성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 전 수석은 대검찰청 강력부장 출신으로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검사 시절 술자리 도중 출입기자 한 명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전력이 공개돼 임명 당시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이번 사퇴도 김 전 수석의 성격 탓에 우발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우발적 항명일까 고의적 항명일까
국회 운영위 못 나갈 이유 있었다?
다섯째,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조율하에 이뤄진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주장도 있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법조계 인사의 특성과 '김기춘·김영한' 관계를 감안하면 독단적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검찰 공안통 출신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 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까마득한 후배인 김 전 수석이 김 실장에게 항명을 한다는 것은 법조계 일반적 내부 분위기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 의원은 또 김 전 수석이 사퇴한 배경에 대해선 "'정윤회 문건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모 경위에 대한 회유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국회 운영위에서 이 부분을 규명하려고 했는데 나오지 않고 사퇴한 것은 이부분이 부담스러워서일 것이다. 만야 떳떳했다면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사퇴 이후 입을 닫은 김 전 수석이 스스로 이유를 밝힐 때까지 항명 이유에 대한 의문은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히려 감추려고 할수록 추측과 의혹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난 2년간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청와대를 떠난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보좌해 정부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청와대 내부 구성원들이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았는지, 왜 떠나게 됐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불투명한 국정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청와대 내부 인사 실태가 이런 지경이라면 타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인사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볼 때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고 정부기강이 그야말로 흔들리고 있다는 그런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