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바리스타 선생님 윤채완

2014.12.01 11:37:11 호수 0호

칼춤 추던 ‘꽃순이’ 커피에 빠지다

[일요시사 경제팀] 이창근 기자 = 윤채완(42·여)씨는 ‘럭비공’이다. 160cm 남짓한 키에 가녀린 체구를 잠시도 가만히 두는 법이 없다. 해보고 싶은 일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다. 방귀는 참아도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다. 무슨 일이든 호기심이 생기면 바닥까지 파고드는 집요함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 때문에 마른 몸에 살이 붙을 틈이 없다.


윤채완씨는 재주가 많다. 고등학교 들어서야 입문한 판소리와 가야금으로 세계를 돌아다녔고 꽃꽂이도 잘한다. 남자들도 따기 힘들다는 자동차정비 관련 자격증도 있다.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왕이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응급처치법 강사 자격증도 땄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에 한 때는 광고모델로 활동하기도 했고, 작은 언니와 함께 피부와 비만을 관리하는 샵을 운영하면서 돈도 좀 만졌다. 아직도 허리 사이즈가 21인치일 정도로 살이 안찌는 체질이라 비만이 고민인 사람들의 ‘워너비’ 모델로 어필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오지랖 때문에 시작
 
지금은 국내 바리스타 지도교사 자격과 유럽 바리스타 자격을 획득한 후 국내에서 치러지는 바리스타 자격시험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데 윤씨는 아직도 솔로다. ‘남 일이 다 내 일 같다’는 오지랖 때문에 이 일 저 일 손대다보니 어느 새 사십을 넘겼다고 한다. 바리스타가 된 계기만 해도 그렇다. 탤런트 시험을 치르러 방송국에 가는 친구를 따라 갔다가 정작 친구는 떨어지고 자기만 덜컥 붙었다는 유명 연예인의 케이스와 비슷하다. 
 
“3년 전인가. 제 친구가 종합병원 안에 테이크 아웃 카페 자리를 인수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커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제가 그랬죠. 나라도 배워서 도와주겠다고. 그게 제가 바리스타가 된 계기입니다. 좀 오지랖이죠.”
 
친구의 고민 때문에 입문한 바리스타지만 스승 운이 좋았다. <카페 바리스타>와 <카페바리스타 필기문제집>의 저자인 이용남(39)씨로부터 지도를 받은 것이다. 스승은 윤씨보다 세 살쯤 어리지만 실력만큼은 커피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파다. 그런 실력파 선생 밑에 수행한 덕분에 바리스타 입문 두 달 만에 2급 자격을 따고, 한 달 뒤 1급 바리스타에 도전해서 좋은 결과를 냈다. 2012년 겨울에는 유럽바리스타 자격까지 땄다.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 시작한 늦공부지만 그야말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성과를 낸 것이다. 
 
판소리하다 우연한 기회로 접해

친구 카페 돕다 바리스타 길로
 
“제가 좀 팔랑 귀 인가 봐요. 선생님이 잘 한다, 소질 있다고 해주니까 그냥 정말 소질 있는 줄 알고 배웠다니까요.(웃음)”
 
그렇다고 이씨 제자나 다른 도전자들 모두가 윤씨처럼 일사천리로 수준급 바리스타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필기시험에 통과해도 실기시험에서 낙방하는 이가 많다. 마시는 입장에서는 다 그렇고 그런 커피지만 정작 만들어 내는 입장에서 볼 때 커피와 관련된 무수한 지식은 물론 ‘블랜딩’이나 ‘로스팅’ 같은 과정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 고급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다. 커피 생두를 볶아 원두를 만들고, 그 원두를 갈고 빻아서 한 잔의 커피로 담아내기 까지 추출시간이며 온도, 압력은 물론 원두 입자 크기 하나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단지 기술 숙련도 문제가 아니다. 원두 몇 종을 섞어서 맛을 내는 블랜딩과 그 맛을 끌어내는 로스팅 능력이 중요하다. 원두를 혼합할 때 미리 단맛이나 신맛, 씁쓸한 맛 등 마시는 사람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어떤 맛을 내겠다’고 공언한 뒤, 그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상상했던 커피와 일치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의 여부는 평소 얼마나 커피를 붙들고 살았는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특이하게도 윤씨의 경우는 커피에 대한 지식 쌓기와 블랜딩, 로스팅의 미묘한 감각을 쌓는 과정보다 만들어 낸 커피를 맛보는 부분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바리스타에 입문하기 전에는 일 년에 커피 다섯 잔도 안마시던 그였지만 자신이 만든 커피의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던히 커피를 마셔야 했던 것.  
 
“어떤 날에는 한 스무 잔도 넘게 마신 것 같아요. 그랬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맥을 못 추겠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카페인 과다중독이라지 뭐예요.(웃음) 우습죠?”
 
평소에는 즐기지 않던 커피를 끼고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한 잔의 새로운 커피를 만드는 과정이 마치 인생의 여정과 같다는 점이다. 같은 품종의 원두라도 무엇을 혼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고, 온도나 압력, 볶는 시간에 따라 수천가지의 다른 맛, 다른 향의 커피가 탄생한다. 인생 또한 어떤 부모 밑에 태어나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또 어떠한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의 향기를 낸다는 것이다. 
 
“커피 한잔엔 인생이 담겼죠”
 
윤씨가 인생과 커피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데는 나름 배경이 있다. 전남 구례에서 경찰관이던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2남4녀 중 막내로 자란 윤씨의 별명은 ‘꽃순이’. 초등학생이던 막내 처제에게 100원 짜리 하나 쥐어주며 노래시키던 큰 형부가 즐겨 부른 별명이다.
 
고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서편제 소리를 하던 임영이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우다가 우연한 기회에 명창 조상현 선생의 문하에 들면서 제대로 판소리를 배웠다. 스승 복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 입학 후 판소리협회 총무 역할도 하면서 매년 수 십 차례 이상 국내외 행사에 초청을 받아 공연을 다녔다. 가야금 하나들고 세계를 누빈 것이다.
 

그렇게 국내외 행사를 다니다가 관계가 깊어진 곳이 스페인. 스페인에서도 합기도 연맹과의 인연이 깊다. 연맹이 주관한 행사 중간에 가야금과 판소리 공연을 했던 것이 반응이 좋아서 자주 초청을 받았다. 자주 보면 애정도 생긴다든가. 공연 전 합기도 선수들 몸 푸는 것 구경하다가 시작한 합기도가 공인 4단이다. 단을 따면서 스페인 선수들과 합기도 시범단 활동도 했다. 시범단 내 주특기는 쌍단검. 단검 두 개를 휘두르며 찌르고, 베고, 구르며 ‘칼춤’(?)을 추면서 지내 온 시간이 10여 년이다.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던 삶을 정리하고 완전히 귀국한 것이 3년 전. 그리고 그 때 운명처럼 시작한 것이 바리스타다. 커피 원두가 어떤 상상력을 가진 바리스타를 만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듯 윤씨의 살아온 여정 자체가 매번 새롭게 시도되는 인생 블랜딩이고, 로스팅인 셈이다.   
 
윤씨는 향후 자신의 삶이 한 잔의 커피처럼 다른 이에게 따뜻한 온기와 색다른 향기를 전달해주는 날들로 채워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 바리스타로서의 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도 도전을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인생 블랜딩’에 새롭게 첨가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이다. 

상상한 맛 구현 
 
“알면 알수록 힘든 게 커피네요. 상상력과 노력에 따라 꽃향기도 나고 사과향도 납니다. 그 남다른 맛과 향을 찾아내기 위해 힘든 과정을 참아내는 게 매력이죠. 인생도 그렇고요. 어려움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내는 사람, 힘든 과정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바리스타겠죠.”
 
칼춤 추던 ‘구례 꽃순이’가 삶의 여정을 담아 내놓는 커피 한 잔의 여운이 혀끝에 길게 남았다. 
 
 
<manchoic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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