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절반 남기고 옷 벗은 어준선(안국약품 회장)제약협회장 왜

2010.02.23 09:28:48 호수 0호

야전사령관인줄 알았더니 패전사령관(?)


제약협회를 이끌어 온 어준선 안국약품 회장이 스스로 사퇴를 선언했다. 취임 초기부터 석면 사태에 이은 골프접대 파문 등 구설수에 휘말렸던 어 회장은 결국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스스로 옷을 벗는 수모를 겪게 됐다. 특히 업계의 리베이트 관행 근절에 앞장서겠다던 어 회장은 정부의 전방위 공격에 큰소리 한 번 쳐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번 사퇴 결정 역시 실상 정부의 일방적인 약가 개선제도 추진에 사퇴라는 초강수로 압박해 보려는 속내가 있었지만 별 소득 없이 끝이 났다. 결국 40년 이상을 제약업에 몸담아 온 원로인사인 어 회장은 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상처만 안은 채 쓸쓸히 퇴장하게 됐다.


임기 1년…석면사태, 골프접대 파문, 리베이트 암초까지
안간힘 썼지만 결국 임기 반도 못채우고 스스로 옷 벗어  


어준선 제약협회장이 정부의 약가 개선 제도를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난 11일 회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어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1년의 시간 동안 업계 발전에 최선을 다했지만 정부의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 시행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데 대해 책임을 느껴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어 회장의 사퇴에 결정적 요인인 정부의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는 의약품을 적정 상한가 기준보다 저가에 구매할 경우 그 차액을 의료기관과 환자들에게 인센티브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정부 대화통로 못 찾아



정부는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의료기관들이 인센티브를 위해 의약품을 저가에 구매해 리베이트 관행을 없앨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약가인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제약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업계는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제약사들의 저가경쟁이 치열해져 또 다른 형태의 음성적인 리베이트 관행이 양산될 것이라고 반박해 왔다.

그동안 업계 수장인 어 회장 역시 이 같은 입장을 대변하며 맞섰지만 끝내 정부와의 대화 채널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업계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추진한 정부를 향해 사퇴라는 최후의 카드를 내밀었지만 정부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약가개선에 속도를 높이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가 당초 업계의 협의를 거쳐 이달 안에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던 약가 개선안을 지난 16일 앞당겨 발표한 것. 업계와의 충분한 대화를 촉구한 어 회장의 마지막 카드 역시 빛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선 어 회장의 갑작스런 사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저가구매인센티브제도 실시를 강행하는 정부와 마지막까지 협의를 거쳐야 할 수장이 너무 성급하게 포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 상당수는 ‘한계와 책임을 통감한다’는 어 회장의 사퇴 배경에 대해 마음만은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제약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다”며 “이런 가운데 업계 수장인 어 회장의 고충도 상당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어 회장의 지난 1년은 녹록치 않았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석면의약품 파동 당시에는 협회의 안일한 대처가 회원사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협회가 그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식약청은 석면 오염의 우려가 있는 120개 제약회사의 리스트를 공개하고 1122개 의약품에 대해 판매금지 및 회수조치를 내렸다. 제약사들은 식약청의 갑작스런 발표에 당황했을 뿐 아니라 일부 제약사는 식약청의 잘못된 발표에 수천억 원의 금전적 손해를 입는 등 피해가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는 식약청에 항의 한 번 하지도 않은 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 일부 제약사들의 지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9월엔 자사인 안국약품이 의사 골프접대 파문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다. 취임 당시부터 욕먹을 각오로 업계의 리베이트 척결에 앞장서겠다던 그였기에 협회장의 골프접대 파문을 향한 업계의 질타는 더 거셌다. 이는 ‘집안 단속도 못하는 회장님’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회장 사퇴설로 까지 확대됐다.

논란이 커지자 어 회장은 “골프접대는 기획사들에 의해 제공된 것으로 관례적인 행사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최초의 수장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겨야 했다. 지난해 힘겨운 시간을 보낸 어 회장은 연초부터 다시 수심이 깊어졌다.

약가인하를 목적으로 한 정부의 제약사 ‘옥죄기’가 올 들어 그 강도를 높이면서 어 회장이 업계의 볼멘소리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탓이다. 실제로 최근 공정위, 식약청, 복지부 등 정부기관은 태평양·삼아·CJ제일제당·한국얀센 등 제약사 곳곳을 잇따라 급습해 업계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조용할 날 없던 1년

어 회장이 어느 정도 마음고생을 했는지는 최근의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근래 많은 회원사들이 여러 기관으로부터 리베이트 실사를 받으면서 불만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회장의 입장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자신의 무력함을 아쉬워했다. 어 회장은 오는 25일 총회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지난해 2월27일 회원사의 만장일치로 협회장에 선임되며 업계의 기대를 모았던 그는 결국 절반의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아쉬움만을 남기며 떠나게 된 것이다. 안국약품 한 관계자는 “사퇴 결정은 많은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으로 보인다”며 “지난 1년 어 회장이 리베이트 척결 등 업계의 관행 개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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