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호텔 함수관계 대해부

2014.05.12 17:20:22 호수 0호

잘나갈 땐 보물단지 어려울 땐 애물단지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우리 손님을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에 머물게 할 수 없다." 이러한 기업 오너의 자존심은 대기업 호텔사업 진출의 밑바탕이 됐다. 여기에 빠른 현금회전율이 합해져 대기업 소유 특급호텔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은 다르다. 앞다퉈 사들이더니 다시 앞다퉈 내놓고 있다. 수천억원대의 특급호텔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 오너를 만나러 온 각국 고객들이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에 묵는다면? 여기에 계열 회사의 회의, 시상식, 워크샵 등 각종 행사를 다른 기업 호텔에서 한다면? 오너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오너들의 자존심은 국내 기업들의 특급호텔 시장 진출의 밑바탕이 됐다. 여기에 1970∼80년대 국내 경제 규모 확대와 88올림픽 등을 계기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특급호텔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났다.

호텔 팔아야
사는 기업들

하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다.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그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특급호텔이 줄줄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서울소재 특1급 호텔 23곳 중 5곳이 매각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르네상스호텔' '콘래드 서울' 등이다.

지난달 말 GS건설은 파르나스호텔 지분 67.56% 매각을 위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IM(투자안내서)을 발송했다. 배포 대상은 현대·삼성 등 대기업들과 쉐라톤 등 글로벌 호텔 체인들이다. 매각주관사는 지난해 GS건설이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기 전 자금조달 과정에서 주관사를 맡았던 우리투자증권이다. 우리투자증권은 현재 GS건설이 진행 중인 5200억원의 유상증자에도 KB투자증권과 함께 주관사로 참여 중이다.

파르나스호텔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등 2개 인터컨티넨탈호텔 운영권을 보유 중이다. 1985년 서울무역협회와 GS그룹의 공동출자로 설립된 파르나스호텔은 1988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1999년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개관했다. GS건설은 현재 파르나스호텔 지분을 약 70%가량 갖고 있다.


'재벌그룹=특급호텔' 잇달아 진출부터
빠른 현금회전 장점 우후죽순 늘어나

GS건설의 호텔 매각은 자금 마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GS건설은 해외사업과 국내 주택사업 부진 등으로 지난해 9373억원의 영업손실과 7721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자기자본금은 2012년 3조9284억원에서 지난해 3조1592억원으로 7000억원 가량줄었다. 2012년 1조원이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2조3000억원으로 1조3000억원 급증했다.

또 총 12개 현장에서 1조5억원 규모의 미착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일 회사채 2000억원을 현금 상환했지만 다음달 3227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또 돌아온다. 아라뱃길 등 4개의 대규모 사업과 관련한 담합사실이 적발돼 올해에만 과징금 217억5600만원이 부과됐고 지난해에도 4대강 공사 담합과 관련돼 받은 과징금 198억원을 합하면 2년간 과징금은 415억5600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김포한강신도시 자원회수센터 입찰 과정에서 GS건설의 담합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과징금 추가 우려도 있다.

파르나스호텔의 장부가격은 4000억원대, 시장 예상가격은 6000억∼7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건설은 희망 매각 가격으로 약 1조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GS건설은 상반기 내에 인수자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인수의향서(LOI) 마감은 다음달 8일이다.
 

2010년 6월 개장 당시 '대한민국 상위 1% 클럽'을 표방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하 반얀트리호텔)은 5년도 채 되지 않아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고 현재 세 번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반얀트리호텔은 초기 '연예인이나 미혼은 받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입회심사와 1인당 1억3000만원에 이르는 회원권 가격, 최고급 시설 등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리먼쇼크에 직격탄을 맞고 자금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다 700억원에 달하는 체납 공사비를 받지 못한 쌍용건설이 담보권리를 근거로 처분 권한을 행사해 매각에 나서면서 개장 2년 만인 2012년 6월 현대그룹 손에 넘어갔다.

반얀트리호텔
기구한 운명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4개의 계열사가 990억원을 투자해 특수목적법인 현대엘엔알을 만들었다. 현대엘엔알은 반얀트리호텔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반얀트리호텔은 현대그룹 품안에서도 자리잡지 못했다.

인수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현대그룹이 내놓은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안에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 3곳 등을 포함해 반얀트리호텔이매각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월 산업은행 인수 합병부와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을 공동매각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매각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자구책 발표 이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3조3000억원 이상을 확보한다는 계획인데 최근 현대증권을 비롯한 금융 3사 매각 등을 통해 2000억원을 손에 쥐었으며, 현대부산신항만 투자자 교체, 컨테이너 매각, 신한금융지주·KB금융지주·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등을 통해 6000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했다. 현대그룹은 쌍용건설에서 1635억원에 반얀트리호텔을 인수한 만큼 비슷한 가격대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매물은 많지만 사겠다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 새 중저가 비즈니스호텔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객실료가 비싼 특급호텔 객실 이용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어느 누가 높은 매각대금을 대면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사업을 하겠느냐"고 전했다.

매물로 나온 특급호텔들의 매각 규모는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대에 이른다. 르네상스호텔은 1조1000억원, 파르나스호텔은 1조원, 콘래드호텔은 4000억원, 반얀트리호텔은 2000억원 등이다.

경영 어렵자 돈 구하러 '동분서주'
서울 특1급 23곳 중 5곳 매각 진행

호텔업의 불확실성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호텔업협회에 따르면 연평균 객실 예약률은 과거 3~4년 전보다 10∼15% 감소했으며 반면 지난해 말 기준 신규 사업 계획이 승인된 호텔은 100개가 넘었다.

이를 방증하듯 AIG그룹과 서울시가 추진해온 콘래드 서울 매각 작업과 삼부토건이 추진 중인 르네상스호텔 매각 작업은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14일 AIG와 서울시에 따르면 CXC종합캐피탈과 진행하던 콘래드 서울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CXC종합캐피탈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당했고 콘래드 서울 매각 절차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원인은 CXC종합캐피탈이 인수자금을 기한 내 모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IG는 지난해 9월 CXC종합캐피탈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12월 말까지 모든 계약을 완료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CXC종합캐피탈은 잔금납입을 차일피일 미뤘고 참다 못한 AIG가 협상을 전면 중단키로 한 것이다. CXC종합캐피탈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 형제 중 막내인 조중식 전 한진건설 회장의 장남 조현호 회장이 이끄는 금융리스회사다.

콘래드·르네상스
매각 적신호

지난해 건설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대규모 순손실을 떠안은 삼부토건은 본사사옥을 비롯해 보유 자산인 르네상스호텔, 헌인마을 사업 등의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매출 5984억원, 영업손실 290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전년(283억원)대비 344% 불어난 1256억원을 기록했다. 삼부토건은 지난해 르네상스호텔 매각을 시작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이지스자산운용을 선정했다. 하지만 이지스가 지난해 11월로 예정된 본계약 일정을 지키지 않고 뚜렷한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아 매각은 안갯속이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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