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보상 제일모직 '이상한 합의' 내막

2014.04.23 10:46:14 호수 0호

책임 없다면서 몰래 도장 왜?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제일모직 노동자가 있다. 우측 뇌동맥이 막혀 반신불수가 됐지만 사측으로부터 자녀들 학자금과 치료비를 받으면서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 노동자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도장은 그가 직접 찍었다. 무슨 일일까? <일요시사>가 그를 만나봤다.



지난 8일 오후 8시 전남 여수시 문수동 소재 동인요양병원 로비에서 만난 김모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우측 뇌대동맥이 막혀 몸의 반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휠체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안면마비 증세로 인해 기자에게 말을 건네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뭔가 찔리니까"

올해 50세인 김씨는 지난 1988년 1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약 17년 동안 제일모직 여수사업장에서 일했다. 2005년 7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3년6개월 가량 병가를 냈다가 2009년 초 퇴사했다. 뇌출혈 발병 초기 김씨는 뇌사 판정을 받았다. 어느 병원을 가도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10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우측 머리에 보이던 출혈도 며칠 뒤 깨끗하게 사라졌다. 김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결과는 불인정. 김씨는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 절차를 밟으려 했다. 하지만 모든 절차는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심사청구 절차를 밟으려고 근로복지공단에 연락했는데 재심사청구 절차까지 이미 끝난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날이 재심사 청구 결과가 나오고 딱 90일째 되는 날이었다. 행정소송도 물 건너가 버렸다."


현행법상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에 대해여 이의가 있을 경우 심사청구가 가능하다. 심사청구 결과에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재심사 청구가 가능하며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청구 기한은 모두 90일이다. 김씨는 행정소송 제기 기한 마지막 날 재심사 청구 결과를 알게 된 것이다.

"법적인 절차가 모두 막히자마자 사측에서 합의서를 들고 찾아왔다. 충북 청원에 있는 제일모직 사업장에 부인을 취직시켜주고 자녀들도 청원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자녀들 학자금 등 합의금으로 700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련 내용을 더 이상 발설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김씨는 합의를 거부했다. 명백한 산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에 따르면 그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TPM(전사적 생산 보전운동) 명목으로 매월 수십∼수백시간씩 무임금으로 일했다. 하지만 제일모직 측은 "근태시간은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며 "여수산단 자체가 임금에 대해 민감한 지역이다. 추가수당은 당연히 지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없던 병도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게 김씨의 입장. 그러나 김씨는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부인이 '도장을 찍지 않으면 강제퇴원 시키겠다'며 협박했다. 자녀들 학교도 이미 청원 지역으로 옮겨 놓은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

뇌출혈 장기입원…산재신청 퇴짜
사측…합의 후에도 허위사실 유포

가족들은 그를 떠났다. 합의금은 부인에게 전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이혼했다. 회사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버림 받은 것이다. 김씨는 합의 내용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관련 내용을 국민신문고, 검찰청 등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측은 산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합의금까지 줘가면서 합의를 했다. 정말 산재가 아니라면 합의를 할 이유가 없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 아니겠냐."

김씨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김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자녀들 학자금 5000만원과 전 사원 불우이웃돕기 성금 2000만원 등 7000만원을 건넸다.

삼성일반노조가 관련 내용에 대해 제일모직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자 명예훼손으로 김성한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을 고소, 김 위원장은 벌금 500만원을 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수술비용 지원, 개인 간병비 지원, 매월 일정금액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산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제일모직에서 김씨에게 지원하겠다는 금액은 매월 30만원. 반신불구 상태인 김씨에게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30만원은 1개월 약값도 안 된다. 휠체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간병인은 필수인데 산재 인정만이 근본적 해결책이다. 정상적으로 산재가 승인됐다면 매월 죽는 날까지 월 450만원 정도 개인 간병비, 병원비가 나와 병원생활이나 가정사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위로금조로 전달"

제일모직 측 주장은 다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산재 불인정 판정을 받고도 김씨가 당시 대표를 고소하는 등 일방적 요구를 했고 제일모직은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각종 인터넷 게시판 등에 관련내용을 유포해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승소를 한 일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합의에 대해 "다만 오랜 기간 제일모직에서 일을 했고 사측에서는 도의적 차원에서 치료비와 학자금, 직원들의 성금을 모아 합의금 명목으로 전달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측은 김씨에게 합의금 명목으로 7000만원을 전달하기 전에 치료비를 5000만원 상당 지원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했다"며 "제일모직이 제기한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김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할 때마다 강제금이 건당 100만원씩 부과되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가 지속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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