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연금보험의 함정

2014.02.19 11:59:11 호수 0호

노후 집 준다더니 '없던 일로'

[일요시사=경제2팀] "평생토록 연금이 지급되므로 안락한 노후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28년 전 우정사업본부(옛 체신부·이하 우본)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홍보하면서 안내했던 문구다. 당시 우본은 연금보험 가입자들에게 "장차 체신부가 건립하게 될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노후생활의 집을 짓지 않고 있다.




1985년 5월 민모씨는 체신부가 건립하기로 한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우체국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민씨는 20년이 넘도록 매달 4만1000원을 체신부에 입금해왔다. 

그러나 2009년 만기일 연금수령을 위해 우체국을 찾은 민씨는 크게 실망했다. 가입당시 안내된 '노후생활의 집' 입주 우선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노후생활의 집은 보류됐다"고 답변했다. 24년 동안 민씨가 품어왔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깨진 믿음

 

우본의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은 당시 첫 국영 연금보험이었으며, 1985년 5월부터 1991년 3월까지 약 5년11개월 동안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했다.


우본은 연금에 들면 '노후 생활의 집' 200호를 지어 입주 기회를 주겠다고 광고했다. 당시 첫 국영 연금보험이었기에 우호적인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졌다.

우본은 "평생토록 연금이 지급되므로 안락한 노후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라며 "행복한 노후는 준비하는 분에게만 약속됩니다"라고 광고했다. 특히 '노후생활의 집' 이용에 관한 안내서에는 "이 보험에 가입하신 계약자는 장차 체신부에서 건립하게 될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권을 드립니다"라며 "다만 입주자격의 부여는 따로 체신부 장관이 정하는 조건에 의합니다"라고 밝혔었다. 

우본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실버타운을 전국 9개소에 건립하는가 하면, 가입자들이 실비만 내면 노후에 입주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1984년 '노후생활의 집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후로 '노후생활의 집' 건립을 위해 지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안성시 마정리 일대 토지 6만9000여㎡를 매입했다. 그렇게 우본은 '노후생활의 집' 입주 우선권 자격을 걸고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당초 계획과는 달리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노후생활의 집'을 한 곳도 건립하지 못했다. 우본이 매입한 토지는 애초부터 복지시설을 지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안성시청에 따르면, 마정리 산 29번지 일대는 공원 등 도시계획시설만 조성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가입자 증가율 둔화와 기금 적자 탓에 체신부는 결국 노후 생활의 집 건립사업을 보류했다. 그러나 우본은 만기일까지 사업이 무산됐다는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연금보험 가입자들의 입주 요구가 있었지만 우본은 '약관에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해왔다.

 

"연금 들면 입주" 28년 전 약속
대대적 광고했지만 끝내 모르쇠
단 한 곳도 건립하지 못해 무산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가입한 후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가입자들은 2011년 5월 기준 약 3300명으로 추산된다.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대한 전화민원이 지속적으로 쏟아지다가 본격적 소송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한 노후보장 연금보험 가입자가 합의배상요구 1인 시위를 하면서부터다.


이후 일부 노후보장 연금보험 가입자들은 지난 2011년 우본을 상대로 계약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2년 피해자들의 소송은 기각됐다.

연금보험 약관과 계약 청약서에는 노후 생활의 집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체신부의 안내문과 광고, 신문 보도 등은 청약 유인에 불과할 뿐 보험 계약 내용은 아니었다며 재판부는 원고의 패소로판결 처리했다.


이를 빌미로 우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실버타운은 부가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부연이다.

지난해 2심 원고에서는 주장이 일부 수용돼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다. 재판부는 "국가 보험상품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는 민영 보험사와 같을 수 없다"며 "안내문과 언론 보도를 본 민씨 등은 노후 생활을 보낼 집의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고 그 신뢰가 연금보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가입자들의 구체적인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배상액을 월 단위로 산정하지 않고 1인당 300만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가입자들은 보상금액이 터무니 없이 적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집단소송 확산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보험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공기관에서 사전에 충분한 준비 없이 보험을 판매하면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라며 "일반 금융사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불완전판매와 책임회피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빠르면 2월 중에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정사업본부 등 관련부처가 가입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 공동소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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