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2014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이번엔 코오롱의 '스웨덴 마님'이다.
코오롱 일가의 '배다른 자녀' 소동은 동구(미국명 피터 로치)씨가 처음이 아니다. <944호 참조> 고(故) 이원만 창업주와 내연녀 사이에서 태어난 동구씨가 2004년 친자확인 및 상속권을 주장, 배다른 형제들을 상대로 500만 달러(당시 약 50억원)의 상속재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데 이어 2008년엔 이 창업주의 '혼외 딸'이라고 주장한 여성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이정현씨. 모친 지모씨와 함께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코오롱 일가와 얽힌 사연과 이를 증명하는 사진 등을 공개했다. 자신이 이 창업주의 숨겨진 자식이라고 폭로했다.
끝까지 인정 안해
모녀의 주장에 따르면 뛰어난 미모를 자랑했던 지씨는 1969년 친구와 함께 놀러간 한 별장에서 이 창업주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 창업주는 64세, 지씨는 21세였다. 이후 두 사람은 위험한 사랑에 빠졌다. 이 창업주는 지씨에게 보문동에 집을 사줬고,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이듬해 둘 사이에서 정현씨가 태어났다. '부녀'가 꼭 빼닮아 이 창업주를 보필했던 비서진이 깜짝 놀랐다는 게 지씨의 전언. '붕어빵'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창업주는 정현씨에게 푹 빠져 살았다. 매일 같이 들여다본 것은 물론 해외출장을 갔다 오면 옷이나 장난감 등 정현씨의 선물을 빼놓지 않았다. 이 창업주와 지씨 관계도 더욱 돈독해졌다. 매달 넉넉한 생활비와 양육비는 기본. 둘은 정현씨 출산 직후 3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행복했던 시절도 잠시. 불륜은 6년 만인 1974년 끝났다. 지씨는 이 창업주와 헤어진 이유에 대해 "이 창업주 측이 정현씨의 존재를 알고 강제로 데려가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창업주가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77년 이 창업주는 서울의 한 요정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이모씨를 만나 이듬해 동구씨를 낳았다.
1981년 화가와 결혼한 지씨는 스웨덴으로 이민을 떠났다. 정현씨도 지씨 모친이 키우다 스웨덴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 당연히 이 창업주의 지원은 끊겼고, 이들 가족은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 정도로 어렵게 생활했다.
그러던 중 지씨 모녀는 1994년 이 창업주의 별세 소식을 접했고, 코오롱 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상의할 내용이 있으니 한국으로 들어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한국에 들어온 정현씨는 코오롱 관계자를 따라 한 사무실로 향했고, 그곳에서 한 장의 서류를 받아들었다.
창업주 서자 이어 '배다른' 혼외 딸 등장
강제로 재산포기 각서…다른 가족사도 폭로
서류는 다름 아닌 '재산포기각서'. 당시 18세였던 정현씨는 무슨 내용인지 모른 채 코오롱 관계자의 말만 듣고 이 각서에 무심코 도장을 찍었다. 상속을 포기하는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 이후 코오롱 측은 등을 돌렸다. 지씨 모녀는 수십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모녀가 블로그까지 만들어 코오롱 일가와 얽힌 과거사를 공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미성년자를 데려다 강제적으로 도장을 찍은 상속포기각서를 인정할 수 없다"며 "이후에도 코오롱 측은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지씨는 블로그를 통해 "외롭게 자란 딸에게 혈육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딸도 형제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며 "하지만 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코오롱 측에 분노를 느껴 모두 털어놓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현씨는 '코오롱 가족 형제들에게'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린 공개편지에서 "이 창업주의 숨겨진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가 세워놓으신 기업의 명예를 상하게 하는 일을 해야만 하게 만든 형제들이 너무 원망스럽다"며 "매달 갚아야 하는 빚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코오롱 딸이 왜 그렇게 고생하고 사느냐라는 소리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오롱의 코자만 봐도 울분이 솟구친다. 남북이산가족 및 그리운 가족찾기운동을 지원한 코오롱이 정작 자기 가족, 피를 나눈 혈육은 돌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씨는 믿기 힘든 코오롱 일가의 또 다른 가족사도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다른 자녀들의 출생 비밀까지 밝힌 것. 이는 지금까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창업주는 슬하에 2남4녀(동찬-동보-봉필-애란-미자-미향)를 뒀다. 이중 일부만 본처 고 이위문씨와 사이에 낳은 자녀, 나머지는 내연녀가 낳은 배다른 자녀란 게 지씨의 주장이었다. 이들 외에도 자신의 딸 정현씨와 미국에 있는 동구씨, 그리고 일본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들도 있다고 했다.
"일부만 친자" 주장
지씨는 "코오롱 일가는 공식적으로(?) 2남4녀만 가족으로 인정하고, 다른 혼외자들에 대해선 혈육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회사 측은 지씨 주장에 대해 "업무와 무관한 오너 개인일로 확인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둘러댔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바 없다. 지씨 모녀는 한때 언론들과 접촉하다 소식이 끊어진 상태. 블로그도 사라졌다.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코오롱 측의 무관심 속에 지쳐 나가떨어졌다는 설과 적당한 선에서 합의했다는 설이 교차한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