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황찬현 신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강행처리 됐다. 야권의 반발속에 날치기 의사진행이 이루어져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야당은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반면 여당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감사원장 자리에 앉게 된 황찬현. 그는 감사원의 공백을 메꿀 수 있을까.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일부 사제들의 정치발언 파문 등을 둘러싸고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여당이 감사원장 인준안을 단독처리하면서 정국이 더욱 어두워질 전망이다. 장기화한 여야 대치 구도가 자칫 극한 대결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회가 다시 공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물론 주요 법안 처리에도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야당 반발 속
날치기 가결
지난달 28일 새누리당이 야권의 반발 속에 황찬현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강행처리했다. 야당은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황 원장 인사청문특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개최했다. 민주당 측이 ‘여야 간사 협의’를 주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 특위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단 10분 만에 처리됐다. 이어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황 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새누리당의 의지만 구현된 표결이었다. 몸싸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과정을 살펴보자면 사실상 날치기나 다름 없었다. 앞서 “여야 논의된 합의점은 존중·수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발언은 무색해졌다.
여야의 시선은 공을 넘겨 받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향했다. 새누리당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기간 내에 인사청문특위가 인사청문 내지 심사를 마치지 못한 때 국회의장이 이(임명동의안)를 바로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 ‘직권상정’”이라며 임명동의안 상정을 거듭 요구했다. 또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면 의사일정을 작성하는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여야 합의에 의해 의사일정을 정하는 것은 관행이다”며 규정에 맞춰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주장은 ‘(본회의) 부의’로 이는 안건 심의를 위한 준비행위일 뿐”이라며 “국회 개원 이래 130여 건의 임명동의안 중 단 한 건도 직권상정이 된 사례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통합진보당도 이번 강행처리에 대해 “더 이상 귀찮게 야당의 눈치 볼 것 없이 155석이라는 의석을 앞세워 독재정권의 첨병이 되겠다는 신호”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강 의장은 ‘친정’ 새누리당의 손을 들었다. 본회의 처리예상안건 중 마지막 순서에 있던 임명동의안을 본회의 첫 머리로 올려 상정했다. 의원총회를 하던 민주당은 강 의장의 ‘기습상정’에 뒷통수를 맞고 급히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 의장은 “인사 관련 안건에 대해서는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요구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법보다 관례가 우선이냐”는 볼멘 소리도 터져나왔다.
강 의장은 “감사원장의 공백이 94일째 지속되고 있어 국정에 많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처리를 더 이상 미루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임명동의안을 상정한 것. 투·개표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박범계, 김광진, 서영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명패와 투표용지를 배부 받았다.
투표권 행사를 늦춰서라도 임명동의안 표결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강 의장이 “투표 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다 안 했다. 투표 안 했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빨리 투표하시라”고 한 강 의장은 세 번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투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 다 하셨냐”고 물은 뒤 곧장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명패와 투표 가부를 확인하는 감표위원들조차 모두 새누리당 의원으로 선정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와 관련, “달리 얘기하면, 실시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는 중차대한 선거에 있어 한쪽 정당의 참관인과 한쪽 정당의 투·개표인만 배석한 채 투표가 실시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명안 강행 처리 ‘꽁꽁’얼어붙은 여의도
‘속수무책’후폭풍 정치권 강타…국회 올스톱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이 아닌 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의사진행이었다며 야권의 공세를 저지했다. 반면 민주당은 임명동의안 표결에 반발해 투표에 불참하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특히 강 의장이 필리버스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황 내정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실시한 데 대해 국회법 위반으로 ‘표결무효’라며 고강도 대응에 나서며 맞불을 놨다.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국회 본회의에서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직후 브리핑을 통해 “감사원 수장의 공백이 3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변인은 다만 직권상정 의혹에 대해선 “인사청문특위에서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표결절차가 끝난 안건이기 때문에 직권상정이 아니다”며 “정상적인 표결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 보이콧
정국 ‘급랭’
민주당은 황 원장의 임명동의안 본회의 통과 직후 긴급 의원총회 등을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에 돌입키로 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불을 붙였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황 내정자를 감사원장으로 임명하면 직무효력정지 가처분을 강구하고 강 의장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김한길 대표는 “오만과 독선, 불통에 빠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국회의장의 행태를 127명 국회의원 모두의 이름으로 강력히 규탄한다”며 “민주당은 야당과 민의를 깡그리 무시하는 안하무인식 의회 폭거를 대하면서 의회 일정에 임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따라 내일부터 의사일정을 중단키로 한다”고 밝혔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필리버스터 거부에 대해 “있지도 않은 관행을 내세워 관행으로 국회를 무력화시키려는 행위”라며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후에도 “야비하고 비신사적이고 유신회귀형 국회”라고 비판했다. 박수현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회의장과 새누리당이 저지른 만행은 국회 치욕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황 원장 임명동의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당내에서) 강창희 국회의장에 대해 사퇴 권고를 결의하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도부 책임론까지 거론된 상황이다.
29일 청와대는 민주당의 의사일정 보이콧 선언과 관련해 “차질없이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도와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이정현 청와대 총보수석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안팎의 여러 분야에서 지금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법리논쟁 시끌…
감사원장 앞날은?
문제는 강 의장이 민주당이 요구한 필리버스터를 막은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논란이다. 자칫 헌정사상 최초로 임명동의안이 무효화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인사청문회법은 특별법으로 국회법에 우선하는데 무제한토론을 허용하는 근거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또 비록 새누리당 단독이지만 인사청문특위에서 심사경과보고서를 채택한 만큼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올린 것이 직권상정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일단 동의안이 본회의에 올라온 이상 인사청문회법이 아닌 국회법을 따라야 한다고 반박한다. 인사청문회법에는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다. 또 이 법 제19조 준용규정을 보면, ‘위원회의 구성·운영과 인사청문회의 절차·운영 등에 관하여는 이 법에서 규정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국회법,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돼 있다. 즉 이 법에 무제한토론 규정이 없다면 국회법의 무제한토론 규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야]‘필리버스터’만 믿다가…정국경색 최고조
[여]직권상정 아닌 정상적 절차 의한 의사진행
여기까지 보면 필리버스터를 허용했어야 한다는 민주당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황 후보자 임명동의안 자체를 뒤짚어질 것이라 단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협회 한 관계자는 “전문용어로 책문권 포기 상실이라고 하는데, 규정 해석이 잘못됐다면 바로 지적했었어야지 ‘그런가 보다’고 해놓고 지나서 따져봐야 소용이 없다”며 “결과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결과를 뒤짚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 출신인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항의했지만 (의장이) 이미 방망이 세 번 땅땅땅 내려찍는데 당시 우리가 취할 방법이 있었겠느냐”면서 책문권 포기 상실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형사재판 정통
IT분야 해박
황 원장은 경남 마산 출신으로 마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하고 연수원 12기를 수료한 뒤 인천지법·서울민사지법 판사,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장, 대전가정법원장 등을 거쳤다.
황 원장은 30여년 법관 생활 중 절반 가까이 형사재판을 맡았다. 그래서 형사재판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또 평소 기록을 꼼꼼하게 파악·분석한 후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면서도 구체적 사안에 가장 적합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003∼200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형사 재판부 재판장으로서 대선자금 불법 모금, 유영철 연쇄살인, 굿모닝시티 비리, 대우그룹 부실 회계감사 등 대형 사건을 맡아 엄정한 판단력을 보였다.
특히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 법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등기전산화 작업을 주관, 최단기간에 최소비용으로 등기전산화 시스템을 완성·정착하는 데 이바지한 공로로 2008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00여명이 뽑은 대법관 후보 6명 안에 속한 바 있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장 시절 소년보호시설 문화축제를 열고 청소년 참여 모의법정을 지원했다. 올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서 형사판결 간이화를 추진하고 국민과 소통을 위한 각종 행사를 열었다.
황 원장은 또 사법부 안에서 정보기술(IT) 분야 전문가로 유명하다. 취미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일 만큼 IT 분야에 해박하다. 지난 1996년 출범을 주도한 정보법학회는 법관, 경제학자, IT 전문가 등 300명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사법정보화 커뮤니티 회장도 맡았다.
법관으로서는 드물게 전기, 전자 및 정보통신 등에 해박한 지식과 전문가 이상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무 밖에서는 소탈하고 스스럼없는 성품이어서 선후배 법관 및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은 임미자씨와 슬하에 1남2녀.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황찬현 원장은?]
▲경남 마산 출생
▲마산고 졸업
▲서울대 법학과 학사, 석사 수료
▲제22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12기
▲수원지방법원 인천지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제49대 대전지방법원 법원장
▲대전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