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서용선

2013.07.01 11:35:15 호수 0호

"6·25의 맨살 화폭에 고스란히"

[일요시사=사회팀] 서용선 작가의 그림에는 지식인의 고뇌가 담겨있다. 분단의 이념을 넘고자 하는 그의 그림에는 전쟁 직후의 자욱한 먼지와 화약 내음이 가득하다. 인천상륙작전부터 거창민간인학살까지 당시를 살았던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전시장을 휘감고 있었다. 서 작가 인터뷰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대 정영목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소리꾼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고려대박물관에 울려 퍼졌다. 해방 전후 우리 민족에 '봄날'은 있었을까.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6·25 또는 한국전쟁이 떠오른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은 끊임없는 자기검열에 시달렸다.

'봄날'은 있었나

우리가 겪은 역사지만 늘 이념갈등에 휘말려 우리 스스로 들여다보기를 포기했던 현대사의 비극. 서용선 작가는 지난 6월25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특별전-기억·재현: 서용선과 6.25>를 통해 우리 민족이 겪은 전쟁의 맨살을 드러냈다.

앞서 서 작가는 1980년대 말부터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손을 거친 전쟁의 조각은 하나하나 그의 작업실을 채웠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서 작가는 정영목 서울대 교수와 머리를 맞댔다. 그 결과 서 작가의 강렬한 이미지들은 정 교수의 탁월한 기획과 맞물려 단일의 거대한 서사로 탄생했다.


정 교수는 "서 작가만큼 한국전쟁을 비중 있게 다뤄 온 작가는 없다"면서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독자들이) 전쟁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기획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직접적 사실과 주관적 표현 사이의 고민이 많았다"며 "이전의 그림들이 주관(표현)에 무게를 뒀다면, 최근의 그림들은 사실(재현)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한국전쟁이란 소재가 논쟁적인 만큼 서 작가는 역사의 고증에도 큰 힘을 기울였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영화포스터는 물론이고, 피카소의 유화 <한국에서의 학살>을 다룬 문건 등을 미국에서 직접 가져왔다. 우리가 모르는 한국전쟁의 다각적 이미지를 전시관에 있는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목적이다.

화가 개인이 한국전쟁을 소재로 대규모 전시를 여는 건 우리 미술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 교수는 "그간 6·25 전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며 서 작가의 작업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또 정 교수는 "오히려 미국에서는 최근 전쟁과 관련한 개인의 기억을 들춰내는 작업이 활발한데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그런 면에서 서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전쟁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국내 최초 한국전쟁 소재로 대규모 전시회
과감한 색상·강렬한 필선 '표현주의 거장'

서 작가는 "적과 아군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면 편을 가르고 대화를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처럼 어느 편에도 속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고 견해를 드러냈다. 그가 그림으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상징이 어떤 '정치적 주장'과는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서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 그때부터 서 작가는 매년 6·25 전쟁과 관련한 뉴스나 소식이 나올 때면 스스로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인훈의 소설 전집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탐독한 서 작가는 "미술계에도 이런 작품들이 당연히 있을 법한데 왜 없을까라는 고민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서 작가가 작업한 작품은 최인훈의 소설 전집 표지에 실렸다.

서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전쟁 전후의 기억을 되살렸다.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을 겪은 세대인 서 작가는 자신이 그린 '피난'(2013)이란 그림을 예로 들었다. 서 작가를 낳기 위해 한강의 쪽배를 타고 서울로 올라 간 어머니의 사연. 서 작가의 어머니가 서 작가에게 직접 들려준 이 얘기는 하나의 작품이 됐다.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구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텍스트다.

정 교수는 "저는 1953년생인데 그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전쟁시절에 낳았다는 얘기"라며 "이런 개개인의 소소한 사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회자됐고, 결국은 전쟁 피해자들의 상처도 그림에서 보듯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 작가의 작품은 구술을 함축한 상징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과감한 색상과 강렬한 필선으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달리 보면 사실을 왜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서 작가 특유의 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 서 작가는 "당신은 왜 '왼손'만 보느냐”는 섬뜩한 메일을 받기도 했다. 한 독자가 서 작가의 표현주의 기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서 생긴 촌극이었다. 이처럼 그동안 한국전쟁은 늘 '반공'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해석됐다.

민족의 아픔 담아

그러나 한국전쟁을 둘러싼 여러 역사적 기록들이 국제 사회에 등장하면서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서 작가는 "더 이상 역사는 숨길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전쟁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작가의 집요한 연구물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대박물관에는 가로세로 5m에 이르는 대작을 비롯해 회화 45점과 드로잉 30여 점, 비디오 아트 등 전쟁의 기억을 담은 작품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서 작가의 작품에서 전후를 살아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읽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서용선 작가는?]

▲1951년 서울 출생
▲1979년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82년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신세계미술관(91년) 갤러리고도(06년) 외 개인전 다수
▲국립현대미술관(95년∼) 서울시립미술관(99년∼) 외 기획전 다수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1986∼2008년)
▲함부르크 국제미술아카데미 초대교수(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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