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는 이미 과열 상태다.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지방의회, 재보궐선거 그리고 개헌 국민투표까지 언급되며 선거판은 거대한 정치 전쟁으로 변했다. 이 속에서 유권자는 많게는 9장의 투표용지를 받게 된다. 문제는 그 중 하나가 사실상 ‘보이지 않는 투표’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바로 교육감 선거다.
다른 선거는 이름이라도 안다. 누가 나왔는지, 어느 당인지, 어떤 공약인지 최소한의 정보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교육감은 다르다. 전국 16곳 시·도(기존 17곳에서 전남·광주 통합)에 총 74명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누가 출마했는지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대부분이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질 틈이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인지 부족’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감 선거는 애초부터 관심을 받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돼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 구조적 한계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 유권자의 선택은 정보가 아니라 분위기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육감 선거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이유는 제도에서 출발한다. 2006년 지방교육자치법 개정 이후 교육감은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가 정착됐다. 비용 절감과 참여 확대라는 명분이었다. 겉으로는 효율과 민주성을 동시에 추구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시간이 지나며 예상치 못한 역설을 낳았다. 참여는 늘지 않았고, 오히려 관심은 분산됐다. 교육감은 단독 선거일 때보다 더 주목받지 못하게 됐다. 지방선거의 ‘부속 투표’가 된 것이다. 선거의 형식은 커졌지만, 교육이라는 본질은 오히려 더 작아졌다. 관심의 총량은 늘었지만, 교육에 배분되는 몫은 줄어들었다.
특히 이번 선거는 그 왜곡이 극대화됐다. 단체장 경선이 과열되고, 재보선까지 겹치고, 개헌 국민투표까지 거론되면서 선거의 중심은 완전히 정치로 이동했다. 교육은 그 중심에서 밀려났다. 유권자의 시선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 이벤트에 붙잡혀 있다. 교육은 주변으로 밀려난 채 이름만 남았다.
이 결과는 명확하다.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들어간다. 그리고 결국 선택은 ‘정보’가 아니라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후보의 정책보다 인지도가 앞서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판단이 아니라 익숙함이 선택을 대신하는 구조다.
그 이미지의 핵심은 색깔이다. 파란색이면 진보, 빨간색이면 보수. 법적으로는 정당 표방이 금지돼있지만, 현실에서는 색깔 마케팅이 공공연히 작동한다. 교육은 정치와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형식만 남았다. 유권자는 교육이 아니라 색을 보고 선택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구조는 위험하다. 교육행정은 정당의 이해와 분리돼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실제 선거에서는 정당과 유사한 구도로 경쟁이 이뤄진다. 결국 교육감은 ‘정치 없는 척하는 정치인’이 된다. 제도는 중립을 요구하지만, 현실은 정치를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는 학생에게 돌아간다. 교육이 정치의 연장선으로 작동하는 순간, 교육은 방향을 잃는다. 정책은 교육 철학이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대상이 된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 가장 쉽게 흔들리는 구조가 된다.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 상황만 봐도 그 문제가 드러난다. 예비후보 11명 중 진보 진영 6명은 단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 중복 신청 의혹이 제기됐다. 그 결과 지난 17~18일 예정됐던 1차 투표 일정이 오는 22~23일로 닷새 연기됐고, 전수조사까지 진행되는 혼란을 겪고 있다.
보수 진영 역시 단일 후보를 추대했지만, 법적 분쟁으로 번지며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됐다.
경기도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진보진영은 단일화 절차를 진행하며 선거인단 투표 55%와 도민 여론조사 45%를 합산해 22일 최종 후보를 결정한다. 그리고 사실상 정치권 인물 중심의 구도가 형성됐다. 보수 진영에서는 전 경기도의원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현직 교육감의 재선 도전 여부가 변수로 남아 있다.
인천 역시 진보 진영이 별도의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다음 달 단일후보 선출을 예고했고, 보수 진영은 후보 단일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은 사실상 보수·진보 1대1 구도가 예상되고, 전남·광주 통합 선거에서는 다수 진보 후보가 난립하고 있다. 경남 또한 현직 공백 속에 7명의 후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하나를 보여준다. 교육감 선거는 더 이상 교육의 선택이 아니라, 전국 단위 ‘정치 구도 축소판’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교육감 선거를 왜 지방선거와 같이 치러야 하는가.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교육을 ‘지방정치의 일부’로 취급하고 있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을 뽑는 선거 속에 교육을 끼워 넣은 구조다. 이 자체가 구조적 오류다. 교육의 독립성이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훼손되고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교육감 선거를 분리해야 한다. 별도의 선거일을 지정해 교육만을 위한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이 정치에 묻히지 않는다. 선거의 중심을 교육으로 되돌리는 최소한의 조치다.
둘째, 선거권 구조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와 교육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제한적 선거권 모델도 검토할 수 있다. 교육의 이해관계자가 직접 선택하는 구조다. 이는 교육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다. 선택의 책임이 곧 교육의 질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임명제 복원도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국회 동의나 공청회, 평가 시스템 등을 결합한 방식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하려는 의지다. 지금처럼 방치된 구조보다 나은 대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의 제도는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직선제는 있지만 관심은 없고, 중립은 있지만 정치가 개입하며, 선택은 있지만 정보가 없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다. 형식은 민주주의를 따르지만, 내용은 공백에 가깝다. 결국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만 더 커지고 있다.
결국 이번 6·3 지방선거는 하나를 보여준다. 교육감 선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선거라는 사실이다. 투표지는 있지만 선택은 없고, 후보는 있지만 정보는 없다. 유권자는 참여하지만 판단할 기준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 선거는 절차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 구조다.
9장의 투표지 속에서 교육은 가장 가벼운 종이가 됐다. 그러나 그 종이 위에 찍힌 한 표는 가장 무거운 결과를 만든다.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오래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지만, 현실은 가장 가볍게 소비된다. 이 간극이 교육을 흔들고 있다.
이 모순을 그대로 두는 한, 교육은 계속 정치에 종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다음 세대가 치르게 된다. 오늘의 무관심이 내일의 격차로 이어진다. 교육의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 사회의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단순한 선거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문제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교육을 정치에서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교육답게 만드는 제도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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