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이미 정치의 의제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지로 올라왔다. 유권자 10명 중 6명이 6·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데 찬성했다. <세계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전국 9개 권역, 72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찬성은 62%, 반대는 28%였다.
진보·중도층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보수층 일부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6당 187명이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다. 본회의 통과까지는 197표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의 이탈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다음 달 1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이 가결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어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재외국민투표 준비에 착수했다.
개헌 국민투표가 6·3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든 아니든, 선거가 끝나는 순간 정치권은 곧바로 ‘개헌의 시간’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이후 39년간 멈춰 있던 개헌 논의는 이미 방향이 잡힌 상태다. 권력구조와 선거제를 둘러싼 시나리오는 오래전부터 물밑에서 준비돼왔다.
그러나 개헌의 역사는 언제나 같았다. 논의는 국민적 공감대로 시작됐지만, 완성은 권력의 필요에 의해 결정됐다.
대한민국 헌정사는 이 과정을 반복해 왔다. 특정 정치세력이 국회 재적 3분의 2에 근접하거나 이를 확보하는 순간, 개헌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1954년 자유당은 전체 203석 가운데 135석을 확보한 상태에서 단 1석이 부족했지만, ‘203의 3분의 2는 135.33이므로 135로 본다’는 사사오입 논리를 동원해 정족수를 맞췄다.
숫자가 부족하자 계산 방식을 바꿔버린 것이다.
반면 1969년 공화당은 총 175석 중 약 140석을 확보하며 개헌선(117석)을 넘어섰고, 국회 내부에서 3선 개헌을 밀어붙였다. 하나는 숫자를 해석해 권력을 유지한 개헌이었고, 다른 하나는 숫자를 완성해 권력을 확장한 개헌이었다. 숫자가 만들어지는 순간 헌법은 중립적 규범이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전환됐다. 이것은 예외가 아니라 구조였다.
더 중요한 사실은 개헌은 반드시 3분의 2라는 형식을 지켜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숫자가 막히면 절차가 우회되거나 구조 자체가 재편됐다. 1962년 개헌은 국회가 해산된 상태에서 군사정부가 만든 헌법안을 국민투표로 직접 통과시키며 국회를 건너뛰었고, 1972년 유신헌법은 국회를 해산·정지시킨 뒤 비상권력 구조로 헌법을 확정하며 사실상 무력화했다.
사사오입 개헌이 숫자를 바꾼 사건이었다면, 이 두 차례 개헌은 절차와 구조를 바꾼 사건이었다. 이 흐름이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다. 개헌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다루는 권력의 의지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순간 입법은 합의의 과정이 아니라 속도의 경쟁으로 바뀐다.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통과의 기계로 기능한다. 이때부터 권력의 기울기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3분의 2는 그 완성 단계일 뿐이다.
현재 정치 상황 역시 이 구조 위에 놓여 있다. 과반이 만들어지는 순간 입법은 숙의가 아니라 속도로 작동하고, 국회는 토론이 아니라 통과의 장치로 변한다. 절차의 균형이 무너질수록 견제는 사라지고, 견제가 사라질수록 권력은 집중된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지금의 속도는 분명한 경고다.
이 상태에서 만약 특정 정당이 2028년 총선에서 3분의 2 의석까지 확보한다면,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진다. 그 순간 헌법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변수로 바뀐다. 개헌은 논쟁이 아니라 실행의 문제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방향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것처럼 권력 집중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개헌 논의는 언제나 숫자와 함께 읽어야 한다. 숫자는 단순한 의석이 아니라 권력의 형태를 결정하는 장치다. 3분의 2는 개헌선이면서 동시에 견제의 붕괴선이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정치의 성격은 균형에서 집중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유권자는 권력의 쏠림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번은 몰아주고, 다음에는 견제한다. 과반이 만들어지면 속도가 문제로 드러나고, 3분의 2가 만들어지면 구조 자체가 문제로 드러난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유권자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균형으로 이동해왔다.
따라서 2028년 총선은 단순한 정권 재편이 아니라 권력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정 정당이 3분의 2를 확보하는 시나리오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흐름을 차단하려는 선택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결국 숫자를 만드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국민의힘이 이 흐름을 읽지 못하고 스스로 균형의 축으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 권력의 쏠림은 다시 가속될 수 있다. 정치의 공백은 항상 다른 권력이 채운다. 균형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준비된 쪽이 그것을 차지한다.
여기서 개헌 논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설계하는 개헌은 결국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는 역사적으로 한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공식이다.
그래서 개헌의 출발점은 달라져야 한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먼저 그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최근 이상수 헌법개정추진연대 대표(전 노동부 장관)가 지적했듯, 대통령 한 명을 바꾸는 것으로는 제도의 폐해를 해결할 수 없다. 개헌의 주체가 정치권에 머무르는 한, 결과는 결국 권력 중심으로 귀결된다.
해법은 분명하다. 국민이 개헌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헌절차법을 통해 국민 발의와 공론화 과정을 제도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축적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헌이 정치의 계산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재설계로 기능할 수 있다.
개헌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참여의 문제다. 숫자가 아니라 과정이 기준이 돼야 한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헌은 또 다른 권력 집중을 낳지만, 국민의 합의로 만들어진 개헌만이 그 반복을 끊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정사가 반복해 온 공식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다. 개헌은 권력이 아니라 국민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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