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어수선했던 정국도 4월이 되면 순식간에 선거 국면으로 재편된다. 6·3 지방선거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될 것이다. 외교·안보 이슈가 아무리 커도 국내 정치의 시간은 결국 선거로 수렴한다. 4월은 각 정당의 경선이 정국의 중심에 서고, 5월이면 본격적인 본선 경쟁이 시작되면서 모든 정치적 에너지가 선거로 집중된다.
각 정당은 이미 6개월 전부터 6·3 지방선거를 대비해 기획단을 꾸리고 공천제도, 선거 전략, 정책 기획을 준비해 왔다. 겉으로 보면 준비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필자가 최근 만난 한 정당의 선거기획단 간부와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은 ‘핵심 변수’에 대한 인식의 공백이었다.
바로 ‘유권자와의 거리’라는 결정적 요소에 대한 전략 부재다.
유권자는 정책보다 먼저 ‘후보자와 자신과의 거리’를 본다. 누가 더 좋은 공약을 내느냐보다 누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혹은 같은 사람인지를 먼저 판단한다. 이 단순한 기준이 결국 투표까지 좌우한다. 정치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선거는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거리 조절의 기술’이다. 유권자는 자신과 맞는 거리에 있는 후보를 선택한다.
최근 필자는 한 자동차 전시장과 동네 중고차 매장, 그리고 지방의 트럭 매매단지를 비교해 본 적이 있다. 같은 ‘차를 파는 공간’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강남의 수입차 전시장에서는 딜러가 고객보다 더 세련되고 더 전문적으로 보이려 노력했다.
반면 중고차 매장에서는 딜러가 오히려 고객보다 낮은 자세로 접근했다. 지방의 트럭 매매단지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친구처럼 어울렸다.
이 차이는 단순한 서비스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자기 위치 확인 방식’의 차이다. 강남의 고객은 자신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만족감을 느낀다. 중산층 고객은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 자신을 대우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서민층 고객은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과 거래할 때 신뢰를 느낀다.
결국 시장은 상품이 아니라 ‘관계의 높낮이’로 작동한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사회적 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교의 방향이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상향 비교’,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하향 비교’,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비교하는 ‘수평 비교’다.
이 세 가지 비교 방식이 바로 인간 행동의 기본 구조다.
정치는 이 구조를 가장 정교하게 활용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인은 하나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누구는 끝까지 겸손만 강조하고, 누구는 끝까지 강한 리더십만 강조한다. 문제는 유권자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는 전략은 절반의 유권자를 스스로 버리는 선택과 다르지 않다.
선거는 메시지의 일관성이 아니라 ‘대상의 분화’에서 승부가 난다. 메시지가 아니라 위치이기 때문이다.
상류층 유권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후보가 유권자보다 더 뛰어나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똑똑하고, 성공했고, 더 높은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줘야 한다. 이들에게 정치인은 ‘존경할 대상’이어야 한다. 반대로 중산층 유권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후보가 유권자보다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겸손하고 부족해 보이며,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느껴질 때 호감이 생긴다.
서민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높음도 낮음도 아니다. ‘같음’이다. 친구처럼 느껴지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괜히 똑똑한 척하거나, 지나치게 겸손한 척하면 오히려 거리감만 커진다. 이들에게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 편’이어야 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선거 전략은 반드시 어긋난다. 강남에서 “제가 부족합니다”만 반복하는 후보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방에서 “제가 더 잘 압니다”를 강조하는 후보 역시 거리감을 만든다. 유권자는 메시지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위치 관계’를 느낀다. 정치인은 말이 아니라 위치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중도층’을 중산층과 혼동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조건 겸손 전략을 반복한다. 그러나 중도층은 경제적 계층이 아니라 정치적 태도다. 중도층 안에도 상향 비교를 원하는 사람과 하향 비교를 원하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 이들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는 순간, 선거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정당 역시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 전국을 하나의 메시지로 묶으려 한다. 그러나 선거는 전국이 아니라 지역에서 치러진다. 강남과 지방, 신도시와 농촌은 완전히 다른 심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밀어붙이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편의다.
선거는 효율이 아니라 정밀함의 싸움이다. 결국 세밀하게 나누지 못한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완전히 먹히지 않는다.
6·3 지방선거는 이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지방선거는 중앙정치보다 더 생활에 가까운 선거다. 그래서 유권자는 정책보다 ‘나와 맞는 사람인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이 작은 차이가 쌓이면 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린다.
결국 승부는 ‘누가 더 잘 말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한 위치에 있었는가’에서 갈리게 돼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정치인은 하나의 모습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권자에 맞게 자신의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때로는 위에 있어야 하고, 때로는 아래에 있어야 하며, 때로는 옆에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
유연성 없는 일관성은 전략이 아니라 한계일 뿐이다.
유권자는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하는 것은 정치다. 사회적 비교이론은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답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후보는 공약을 잘 만든 사람이 아니라, 유권자와의 ‘거리’를 정확히 읽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필자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초구에서 서울시의원에 도전하는 선배에게는 “유권자보다 더 똑똑해 보이라”고 말할 것이고, 성동구에서 구의원에 출마하는 선배에게는 “자신을 낮춰 보이라”고 조언할 것이다. 그리고 연천군에서 경기도의원에 도전하는 후배에게는 “유권자와 친구가 되라”고 말할 생각이다.
같은 정치, 같은 선거지만 전략은 하나일 수 없다. 지역이 다르면 유권자의 거리 감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는 메시지가 아니라 위치의 싸움이고,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상황마다 다르게 존재한다. 그래서 정치인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유권자에 맞게 거리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유권자와의 거리를 읽지 못한 후보는 떨어지고, 정확히 맞춘 후보는 이긴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증명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유권자는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과의 거리를 판단할 뿐이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