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숫자는 커지고 사람들의 관심은 동시에 한곳으로 쏠린다. 이 나라는 과연 괜찮은가? 질문은 짧고 단순하며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바로 달러를 사는 것이다.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미국 돈으로 갈아타는 선택은 언제나 합리의 언어로 포장된다.
위험 관리, 자산 방어, 냉정한 판단.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달러 도피는 안전한 판단일까, 아니면 공포가 요구하는 가장 쉬운 복종일까?
환율은 흔히 경제 변수로 설명된다. 하지만 환율이 ‘급히’ 움직이는 국면에서 지표들은 설득력을 잃는다. 급등하는 환율은 경제 성적표라기보다 집단 심리의 결과다. 시장은 타인의 반응에 반응한다. ‘이 나라 자산을 계속 들고 있어도 되나’ 하는 질문에 확신이 사라지는 순간, 환율은 더 이상 교환 비율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율 수치를 잡는 것이 아니라, 공포가 경제 붕괴의 서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뿐이다. 이 지점에서 국가는 늘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국가는 환율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환율을 정치적 언어로 다루거나 정책 방향이 흔들린다는 신호를 주는 순간, 시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절제, 정치적 해석을 차단한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가장 비용이 적은 개입이다. ‘잘못된 개입으로 상황을 더 망치지 않는 국가’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드물며,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그 대가는 늘 혹독하다. 환율은 물론 금리와 주식, 나아가 민생과 직결된 물가조차 인위적인 통제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환율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은 해법이라기보다 임시 브레이크에 가깝다.
정책적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은 금리 인상은 시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울뿐더러 이미 한계에 다다른 국민 경제의 체력으로는 그 금융 부담을 감당해 낼 재간도 없다. 오히려 상황이 통제 불능에 빠졌다는 국가의 뼈아픈 자백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달러의 안정성은 윤리가 아닌 힘에서 나온다. 미국은 세계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자국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는 서슴지 않고 그 질서를 파괴하는 국가다. 달러를 사는 선택은 단순히 리스크를 회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 공동체는 믿기 어렵고, 저 제국의 힘은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의 표현이다. 달러를 쥐는 순간, 우리는 미국의 패권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에 자신의 안전을 위탁한다. 이 선택은 경제적이라기보다 지극히 정치적이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 돈의 가치를 허물면서, 그 결과인 환율 상승을 다시 국가의 책임으로만 돌린다. 이 같은 태도는 자기 강화적인 불신의 순환에 가깝다. 국내 자산의 위험은 투명하게 드러나 있고 정책과 합의를 통해 조정될 여지가 있지만, 달러와 해외 자산의 위험은 완전히 외생적이며 통제 불가능하다.
미국 정치와 지정학적 충돌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진짜 위험은 언제나 통제 불가능한 곳에서 오기 마련이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등장한다.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미국 돈으로 갈아타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일제 침략기에 제국에 부역하는 선택은 비합리적이었을까? 개인의 이익과 생존만을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일제에 협력해 안전을 도모하는 계산이 당대에도 합리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늘의 달러 도피 논리도 이 구조와 다를 바 없다. ‘한국은 불안하고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 ‘강한 힘이 나의 생존 조건을 정의한다’는 전제다.
사실 달러 도피는 여윳돈이 있고 지킬 게 많은 이들의 전유물이다. 일제강점기의 부역 행위 또한 그랬다.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이 제국의 그늘을 더 쉽게 찾았다. 차가운 밥 한 덩이를 목구멍에 겨우 쑤셔 넣고 학교로, 직장으로 달려야 하는 서민은 그때나 지금이나 이 땅의 바닥을 묵묵히 견뎠다.
나라가 망해도, 우리 돈이 사라질 위기가 닥쳐도 금가락지 팔아서 보태고 국채보상운동에 나섰던 사람들. 달러를 살 여유조차 없었던, 그때의 그들이었다. 다시 위기가 온다면 누가 먼저 달러라는 구명보트로 도피할지는 자명하다.
개인 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21세기 대한민국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깊이 고민해 볼 대목이다. 미국이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듯, 한국도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까?
세계는 더 이상 달러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통화이기 이전에 제국의 패권에 의지해 작동하는 정치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안전을 원한다면 특정 국가의 힘에 명운을 기댄 화폐보다,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는 자산인 금이 더 믿음직스럽다.
최근 각국 중앙은행들이 미국이 발행하는 채권 대신 금을 앞다퉈 비축하는 현상도 우연이 아니다. 금을 손에 넣기 위해 다시 달러라는 통로를 거쳐야 하는 딜레마는 피할 수 없으나, 달러는 금으로 향하는 과정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달러는 건너가는 다리고, 금은 머물러야 할 장소다.
역사는 증명해 왔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화폐는 종잇조각이 된다. 달러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군사력으로 화폐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뢰까지 강제할 수는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는 각자가 달러를 움켜쥐라는 뜻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라는 의미다.
달러에 목숨을 거는 것은 사소한 것에 전부를 거는 일이며,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저버리는 일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사소한 이유로 저버릴 수 있다면 그것도 말리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시대에 필요한 것은 빠른 도피가 아니라 현명한 판단 기준이다. 환율이 오를 때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애국심도, 무작정한 국가 비난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질서에 동의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다. 가장 위험한 선택은 국가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믿는 것이다.
공포는 늘 가장 쉬운 길을 제안하고 가장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그것이 내년이든 10년 뒤든, 미국 질서의 시대는 확실히 종말을 향하고 있다. 제국의 패권에 저항하자는 선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돈과 사랑이 삶의 소중한 바탕이듯 재산과 애국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믿고 존중하는 태도가 먼저다. 우리가 우리를 먼저 지켜주는 그런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다. 변화하는 시대의 끝자락, 긴 겨울밤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