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자율주행 말하는 국토부, 정산 준비하고 있나

2026.02.16 10:00:24 호수 0호

AI는 기록 시작했는데 요금 체계는 과거에 묶여 있어

최근 20년 동안 개별용달을 해온 한 기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도로나 다리가 새로 개통되면 이익을 보는 날도 있었지만, 도로에 공사가 있거나 날씨가 나쁘면 손해가 많다고 했다. 운송료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실제 들어가는 비용은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운행 상황은 매일 변하는데 정산은 멈춰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지금의 운임 체계는 계약 순간 멈춘다. 화주와 운송사는 거리, 통행료, 유류비, 소요 시간 등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고 계약을 한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변수는 운송사의 책임이 된다. 교통체증이 생겨도, 우회로를 돌아가도, 기름값이 조금 오르내려도 계약 금액은 그대로다.

반대로 도로 사정이 좋아져 시간이 단축되거나 비용이 줄어들면 그 이익이 오래 유지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다음 재계약에서 화주는 개선된 조건을 곧바로 운임 인하의 근거로 삼는다. 좋아진 환경은 공유되고 나빠진 환경의 부담은 한쪽에 남는다. 위험의 방향이 언제나 일정하게 고정된다.

그래서 수도권이나 대도시 운송은 실력보다 운이 작용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사고 한 번, 폭설 한 번이면 하루 수익 구조가 무너진다. AI와 데이터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정산 방식만큼은 과거에 묶여 있다. 산업은 미래로 가는데 계산은 뒤를 본다. 이렇게 되면 효율이 아니라 우연이 생존을 결정하는 왜곡된 구조가 굳어진다.

운송사가 계약서를 잘못 쓰거나 예상이 어긋나면 손해는 더 누적된다. 현금 흐름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신용이 무너지고 결국 시장에서 퇴출된다. 물론 가끔은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이익은 다음 해 계약에서 대부분 사라진다. 위험은 운송사에게 남고 개선의 성과는 구조적으로 환수된다.

이 문제는 운송사의 손익을 넘어선다. 물류망 전체의 비용 구조가 왜곡되면 가격 경쟁력과 산업 안정성까지 함께 흔들린다. 비효율은 운송 현장에서 시작해 소비자 가격으로 이동한다. 결국 사회가 함께 부담하게 된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변하는 현실을 고정된 숫자로 거래하는가. 왜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조정하지 않는가. 기술이 있는데 쓰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낭비다. 시스템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방치가 계속되면 부담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로 떨어진다.

곧 자율주행 운송 시대가 열린다. 운전의 주체가 사람에서 AI로 넘어가면 차량은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기록하게 된다. 어디서 막혔는지, 얼마나 돌아갔는지, 왜 시간이 늘었는지가 자동으로 남는다. 도로 위에서 벌어진 모든 선택의 과정이 데이터로 축적된다. 추정이 아니라 증명이고 기억이 아니라 로그가 기준이 된다.

AI가 운전하는 데 사람이 운전하는 방식으로 정산하는 시대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기록이 존재하는 순간 가격은 다시 계산될 수밖에 없다. 기술의 진보는 결국 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외면한다고 멈추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으면 변화의 비용은 결국 시장과 정부 모두에게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운임 정산도 달라져야 한다. 연간 계약에서는 기준 단가와 가이드라인만 정해두고 실제 지급 금액은 운행 데이터에 따라 건별로 계산하면 된다.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면 이유가 따라붙고 줄어들었다면 그 또한 확인된다. 누가 손해를 봤는지 감정적으로 다툴 필요가 없다. 시스템이 말해준다.

이 방식은 운송사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니다. 화주 역시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불필요한 의심과 협상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설명 요구와 증빙 싸움이 사라진다. 분쟁 비용이 내려가면 산업 전체의 효율이 올라간다. 신뢰는 데이터 위에서 만들어진다.

편도 계약 구조도 바뀔 수 있다. 지금은 복귀 화물이 있을지 몰라서 운송사는 위험 비용을 미리 얹는다. 정보의 공백이 가격을 밀어 올린다. 그 부담은 결국 화주에게 돌아간다. 시장 전체가 불필요하게 비싸진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자율주행 네트워크에서는 그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차량과 플랫폼이 수요를 연결하면 복귀 화물의 존재 여부가 즉시 확인된다. 있으면 내려가고 없으면 그 사유가 투명해진다. 책임의 위치가 분명해진다. 계산이 감정을 밀어내면서 협상의 기준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내려가는 운임을 50만원으로 잡되 돌아오는 화물이 있으면 40만원으로 조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복귀 수익이 확보된 만큼 위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다. 사람이 하면 논쟁이 되지만 AI에게는 연산일 뿐이다. 데이터는 이미 쌓이고 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활용하지 않는 쪽이 경쟁력을 잃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정부가 표준을 준비해야 한다. 데이터 형식과 검증 체계, 공유 범위를 미리 설계하지 않으면 시장은 제각각 움직인다. 그 혼란의 비용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 플랫폼은 도로처럼 오래 남는다. 먼저 만든 규칙이 질서가 된다. 늦게 참여한 쪽은 선택권을 잃는다.

여기서 시간이 중요하다. 자율주행 상용화 이후에 제도를 만들겠다는 말은 이미 형성된 시장을 뒤쫓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한번 굳어진 계산 방식은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이 마지막 준비 단계일지 모른다. 타이밍을 놓치면 정책은 사후 추인이 된다.


정산 표준을 먼저 만드는 쪽이 산업의 주도권을 갖는다. 그것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전략의 문제다. 글로벌 물류 알고리즘의 기준을 누가 잡느냐의 싸움이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결정적이며, 표준은 곧 영향력이다.

그래서 국토부의 침묵이 더 크게 들린다. 자율주행 로드맵과 실증 계획은 발표되지만 운임과 정산 체계에 대한 밑그림은 뚜렷하지 않다. 산업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 남아 있다. 그래서 국토부가 답해야 할 시간이 왔다. 더 늦어질수록 정책 공백의 책임은 무거워진다.

대형 운송사들도 기회를 봐야 한다.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쪽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현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먼저 제안하는 쪽이 기준을 만든다. 기다리는 쪽은 따르게 된다. 주저하는 순간 영향력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운송료 정산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결코 숫자 문제가 아니다. 위험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파산을 줄이고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문제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일이다. 금융과 고용 안정에도 영향을 준다. 결국 국가 경쟁력의 토대와 연결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술은 속도를 높이고 기업은 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면 충돌이 생긴다. 그 비용은 결국 시장이 떠안는다. 늦을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준비하지 않은 대가는 더 크게 돌아온다.

이제는 고정된 규정이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데이터로 정산해야 한다. 추정이 아니라 사실이 가격을 정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함이 줄고 협력이 만들어진다. 자율주행은 운전을 바꾸지만 정산은 산업을 바꾼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