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왜 한국은 수입을 전략으로 보지 않나

2026.01.29 08:58:40 호수 0호

세계는 이미 ‘공급망 전쟁’ 참전

한국은 오랫동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였다. 무역 흑자가 국가 성적표였고, 해외로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정부와 기업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각종 수출 진흥 기관이 한국 경제의 심장처럼 작동해 왔다. 수출이 곧 국력이었고, 수출 증가는 곧 성공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공식은 무너졌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식량, 의약품, 희토류까지 한국 경제의 핵심은 이제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다. 필요한 것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오느냐가 성장과 안보를 동시에 결정한다. 지금 세계는 수출의 시대가 아니라 공급망의 시대다.

그런데 한국의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수출을 장려하는 조직은 강력하지만 수입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은 주변부에 놓여 있다. 무역협회와 코트라에 비해 한국수입협회(KOIMA)의 존재감은 턱없이 작다.

산업과 안보가 결합된 이 시대에 수입은 곧 국가의 생존선인데 우리나라가 수입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출의 나라, 그러나 이젠 공급망의 나라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다. 무역협회와 코트라는 지난 60년 동안 수출 전선의 사령부 역할을 해왔다. 수출 실적은 곧 국력으로 인식됐고, 무역 흑자는 정부의 성과표였다.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역국가로 성장했다. 이 구조는 한국의 산업화와 중산층 형성을 동시에 떠받쳤다.


그러나 이제 구조가 바뀌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에너지와 식량, 의약품과 희토류는 모두 해외에서 원료와 부품이 들어와야만 산업이 돌아간다. 수출은 돈을 벌지만, 수입은 공장을 살린다. 공급망이 무너지면 아무리 수출 능력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최근의 경제 위기는 모두 공급망에서 시작됐다.

이제 한국은 ‘수출의 나라’에서 ‘공급망의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오느냐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 이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국가 번영은 취약해진다. 경제 성과와 국가 생존이 더 이상 같은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수입 전쟁’에 들어서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전쟁의 본질은 수출이 아니라 수입 통제다. 반도체 장비, 배터리 원료, 희토류, 의약품 같은 전략 물자는 이제 군사적 자산처럼 관리된다. 누가 누구에게서 들여오느냐가 외교의 핵심이 됐다. 공급망은 이제 외교 협상 테이블의 가장 앞줄에 놓여 있다.

유럽과 일본은 이미 수입을 국가안보 문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정 국가 의존도를 제한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며, 위기 시 비축 물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에너지와 원자재, 핵심 부품까지 조달 체계를 국가 전략으로 다루고 있다. 수입은 더 이상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조달 전략이 곧 안보 전략이 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만 여전히 수출 지표에 매달리고 있다. 공장이 멈추는 이유는 주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품과 원료가 끊겼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자동차 모두 공급망 앞에서 동시에 취약해진다. 공급망이 곧 경제의 생명줄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성장도 안보도 함께 흔들린다.

수입협회, 가장 조용한 전략 기관

수입협회는 화려하지 않다. 대기업 광고도 없고, 언론의 주목도 적다. 그러나 이 조직은 한국 산업의 혈관을 관리하는 곳이다. 에너지, 원자재, 부품, 식량, 소재가 이 협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온다. 보이지 않지만 이 흐름이 멈추면 산업은 즉시 마비된다. 바로 이 점이 수입협회의 존재 이유다.

수입협회는 단순한 중개 조직이 아니다. 해외 공급자 발굴, 국가별 리스크 분석, 조달선 다변화, 긴급 수입 체계 구축까지 모두 담당한다. 이는 무역이 아니라 경제 안보의 영역이다. 민간 조직이지만 사실상 국가 공급망의 한 축이다. 산업부와 외교부의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연결하는 역할도 맡는다.

한국이 경제위기를 맞을수록 이 조직의 중요성은 커진다. 수입이 끊기는 순간 산업은 멈추고, 산업이 멈추면 국가는 흔들린다. 수입협회는 평소 보이지 않지만, 위기 때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이들이 조용히 버텨주기에 경제는 연속성을 유지한다. 공급망의 마지막 안전망이 바로 이곳이다.


수입협회 부회장이 던진 경고

필자는 최근 수입협회 이의시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지금 세계는 물건을 파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경쟁”이라고 말했다. 특히 원자재와 핵심 부품은 이미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국가 간 관계가 곧 조달 능력을 결정하는 시대라는 의미였다.

그는 또 “수입선 하나가 끊기면 공장 하나가 아니라 산업 하나가 멈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반도체를 수출하지만, 그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와 장비는 외국에서 들어온다. 이 체인이 끊기면 수출은 무의미해진다. 공급망이 끊긴 수출은 숫자만 남을 뿐이다.

이 부회장의 말은 업계의 하소연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경고였다. 수입을 관리하지 않는 나라는 산업 주권을 가질 수 없다. 이 시대의 경쟁력은 확보 능력이다. 누가 더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경쟁으로 세계는 이미 바뀌었다.

수출 강국, 그러나 수입 전략은 비어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출 지원 체계를 갖고 있다. 무역협회와 코트라는 해외시장 개척과 기업 지원에서 막강한 역할을 해왔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것이 한국 성공의 핵심이었다. 수출 드라이브는 한국을 가난에서 산업국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지금 제조업의 병목은 판매가 아니라 조달이다. 공장을 더 지을 수 있어도, 원료와 부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정책과 예산은 여전히 수출 쪽에 집중돼있다. 이 구조는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수입협회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국가 전략의 중심에는 서 있지 못했다. 현장에서 조달 리스크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조직이 제도권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이 불균형이 바로 한국 경제의 가장 위험한 구조적 취약점이다. 수출과 수입의 위상이 뒤바뀐 시대에 제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공급망은 경제가 아닌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과 에너지의 흐름을 무너뜨렸으며, 중동의 불안은 한국 산업의 연료비를 흔들었고, 대만 해협의 긴장은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했다. 이 세 지역의 불안은 서로 다른 전쟁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국의 조달선에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 세계의 균열이 곧바로 한국 경제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공급망은 금융이나 무역을 넘어 군사와 외교의 영역이 됐다. 누가 누구에게서 들여오는지는 그 나라의 전략을 말해준다. 수입 루트는 곧 외교 지도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는 정치적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수입 구조는 이제 국가 전략 문서에 올라가야 할 사안이 됐다.

한국이 수출 중심 사고에 머물면, 우리는 언제든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수입을 전략화할 때 비로소 국가는 안정된다. 조달 능력이 흔들리지 않을 때 산업도 외교도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공급망을 통제하는 나라만이 위기 속에서도 자율성을 지킬 수 있다.

수입협회는 보이지 않는 국경수비대

군대가 영토를 지킨다면, 수입협회는 산업의 국경을 지킨다. 철강, 배터리, 반도체, 식품, 의약품 산업이 끊기지 않도록 해외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수입협회는 총알과 미사일이 아니라 계약서와 선적 스케줄로 국가의 생존선을 지킨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경제 봉쇄는 언제든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협회는 전쟁과 제재가 시작되기 전 대체 루트를 만들 수 있다. 가격이 폭등하기 전에 조달선을 바꿀 수 있다. 이는 시장 기능이 아니라 국가 기능이어야 한다.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외교 리스크를 미리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공급망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입협회는 이미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가 이를 공식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안보·외교·산업 정책의 한 축으로 제도화하지 않는 한 수입협회의 역량은 개별 기업의 대응 수준에 머문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인프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수출 정책이 아닌 ‘수입 통제’

도널드 트럼프가 벌였던 관세 전쟁은 흔히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해석되지만, 본질은 수입 통제였다. 그는 미국에 들어오는 철강, 알루미늄,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부품의 흐름을 정치적으로 재설계했다.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도 미국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미국의 조달선을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트럼프가 문제 삼은 것은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서 사느냐’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관세, 수입 규제, 원산지 규칙을 동원해 미국 기업들의 구매 루트를 바꾸려 했다. 이는 무역 정책이 아니라 공급망 통제 정책이었다.

앞으로도 미국은 이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에 대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국가 전략으로 유지하고 있다. 관세는 수입 가격을 조정하는 도구일 뿐, 그 목적은 조달 질서를 바꾸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가 이미 ‘수입 전쟁’에 들어섰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미국과 일본은 ‘수입 조직’이 국가 권력

미국에는 눈에 띄는 ‘수입협회’라는 간판은 없지만, 실제로는 훨씬 강력한 국가 조달 체계를 갖고 있다. 미 상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그리고 전략물자 조달을 담당하는 DLA(Defense Logistics Agency)는 전 세계 공급망을 군사 작전처럼 관리한다.

미국이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의약품을 어디서 들여올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다.

일본은 더 노골적이다. 일본의 JOGMEC(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 무역보험기구(NEXI), 종합상사 네트워크는 사실상 국가 수입 사령부다. 일본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 둔 조달망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일본은 자원이 없는 나라임에도 공급망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이 두 나라는 수입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다. 조달선, 비축량, 대체 루트는 국가 전략 문서에 들어간다. 한국처럼 수입을 민간의 거래 문제로 방치하지 않는다. 수입 조직이 곧 국가 권력인 나라와 수입을 여전히 ‘상거래’로 보는 나라 사이의 격차가 바로 오늘의 글로벌 경쟁력 차이다.

한국 경제의 다음 전략축은 수입

AI 시대와 기후 위기 시대에 한국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 전기차, 반도체 공장은 모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원자재를 소비한다. 수입 없는 첨단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기술 강국일수록 해외 자원과 부품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진다.

이제 한국 경제의 다음 전략축은 수출에서 수입으로 이동해야 한다.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국가의 질문이 돼야 한다. 공급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는 성장의 속도도, 위기의 깊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수입협회는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조직이다. 이 조직을 중심부로 올려놓는 순간, 한국은 비로소 공급망 국가가 된다. 수출로 컸다면, 이제 수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자원을 지배하는 국가는 시장을 지배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국가는 결국 세계의 흐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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