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세 번의 생중계, 대통령의 시간은 어디서 흔들렸나

2026.01.24 08:47:27 호수 0호

국무회의·기자회견·타운홀 미팅이 드러낸 권력의 시간과 통치 리듬

우리나라 정치는 지금 새로운 장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무회의, 기자회견, 타운홀 미팅이 연달아 생중계되며, 권력은 더 이상 편집된 이미지가 아니라 작동하는 과정으로 국민 앞에 놓였다. 대통령의 말과 침묵, 질문과 판단, 망설임과 결정까지가 그대로 기록되는 시대다. 이는 단순한 공개가 아니라 통치 방식 자체의 변화다.



그러나 공개가 곧 성숙은 아니다. 보여주는 정치가 설계되지 않으면, 국정은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떤 구조로 보여주느냐다. 대통령의 시간은 국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생중계의 실험은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세 번의 생중계, 하나의 대통령

지난 20일 국무회의, 21일 신년 기자회견, 23일 울산 타운홀미팅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모두 대통령이 직접 주관했고, 장시간 편집 없이 공개됐다. 국민은 국가 권력이 작동하는 시간을 연속으로 목격했다. 이는 이벤트가 아니라 통치의 리듬이었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묻는 사람이었고, 기자회견에서는 답하는 사람이었으며, 타운홀 미팅에서는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형식은 달랐지만 세 장면은 하나의 통치 곡선을 그렸다. 질문과 응답, 결정과 공감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이어졌다.

과거의 대통령들은 대개 결과만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과정을 선택했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수정하는 시간이 국민 앞에 놓였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검증받는 구조가 처음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무회의·기자회견·타운홀 미팅의 다른 얼굴

국무회의는 헌법이 규정한 국가 최고 정책 심의기구다. 보고와 토론, 판단과 결정이 가장 압축된 시간이다. 이 공간에서 대통령의 질문은 곧 국가의 방향을 의미한다. 장관들의 말보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정책의 궤도를 바꾸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친절보다 정확함이, 감정보다 구조가 우선하는 시간이다.

기자회견은 검증의 무대다. 질문은 권력을 시험하고, 답변은 책임을 요구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여기서 국가의 공식 언어가 된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외교와 시장, 여론에 즉시 반영된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즉흥보다 정제가, 솔직함보다 책임이 더 중요하다.

타운홀 미팅은 시민과 만나는 시간이다. 정책보다 체감이 먼저 나오고, 구조보다 감정이 앞선다. 이 형식은 거리와 벽을 허무는 데 목적이 있다. 대통령과 시민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드문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국정의 무게가 흐려질 위험도 함께 존재한다.

이 세 형식은 목적과 리듬이 서로 다르다.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수 없다. 국무회의의 밀도와 타운홀 미팅의 자유는 같은 화면 안에 있어도 같은 규칙을 따를 수 없다. 이 구분을 무시하는 순간, 공개는 소통이 아니라 혼선이 된다. 권력의 투명성이 곧 권력의 분산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자 시사펀치가 본 ‘질문하고 답하는 대통령’

22일자 칼럼(일요시사 김삼기의 시사펀치)에서 필자는 이 대통령의 공개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무회의와 신년 기자회견은 ‘질문하고 답하는 통치’라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질문을 공개하는 권력은 닫히지 않는다. 권력이 스스로를 검증대에 올려놓는 순간, 민주주의는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당시 대통령은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을 물었고, 형식적 답변보다 실제 작동 여부를 따졌다. 기자회견에서도 완벽한 답보다 조건과 한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연출된 자신감이 아니라, 작동하는 행정의 자신감이었다. 국정이 어디까지 왔고 어디서 막히는지를 숨기지 않는 태도였다.

그 생중계는 길었지만 무겁고 밀도가 있었다. 질문과 답이 국정의 큰 방향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이 국가 운영의 맥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 공개는 피로가 아니라 신뢰를 만들었다. 국민은 설명받는 객체가 아니라 함께 판단하는 주체로 초대됐다.

그 시점까지 생중계는 투명성을 넘어 책임의 공개였다. 대통령은 보이는 권력이 아니라 설명하는 권력으로 자신을 위치시켰다. 이는 한국 정치에서 드문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 실험은 의미가 있었다. 권력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대신 검증에 맡긴 드문 장면이었다.


그러나 타운홀 미팅서 흐트러진 시간

울산 타운홀 미팅은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현장은 생생했고 시민의 언어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시간이 지나치게 분산되었다. 중앙정부가 다룰 사안과 현장 민원이 한 테이블에 섞였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화면 속에서 평면화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시민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질문이 대통령에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 없는 직접성은 국정의 책임선을 흐린다.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접수창구가 되는 순간, 행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국가의 의사결정 체계가 개인의 즉각성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해결사가 아니라 설계자다. 문제를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타운홀 미팅에서 이 구분이 흐려질수록 국정의 중심도 함께 흔들린다. 권력이 구조를 떠나 감정에 머물 때 정책은 방향을 잃는다.

자칫 타운홀 미팅 생중계가 공감의 장이 아니라 즉흥의 장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친근함이 권위와 구조를 대체할 수는 없다. 국가 운영의 밀도는 감정이 아니라 설계에서 나온다. 민주주의는 공감이 아니라 제도로 유지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시간은 국가의 시간

2026년 대한민국 예산은 약 728조원이다. 하루로 나누면 약 2조원, 시간으로 나누면 약 55억원대 움직인다. 대통령의 한 시간은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국가의 자원이다. 그 시간이 어디에 쓰이느냐가 곧 국정의 방향이다. 대통령의 일정표는 국가의 재정 운용만큼이나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대통령의 일정은 철저히 구조화돼야 한다. 어떤 질문을 직접 받고, 어떤 사안을 위임할지가 미리 정리되지 않으면 국정은 즉흥으로 흘러간다. 즉흥은 소통에서는 미덕일 수 있어도, 통치에서는 위험이다. 국정은 반응이 아니라 설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의 질문과 기자회견의 답변은 국가의 큰 축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운홀 미팅에서는 그 축이 흐트러졌다. 국가 운영의 시간과 시민 소통의 시간이 섞여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국정의 초점이 전략에서 현장 감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간 관리가 곧 권력 관리다. 대통령의 일정표는 국정의 설계도다. 그것이 흐트러질 때, 국정도 함께 흐트러진다. 어떤 사안이 대통령의 시간을 차지하느냐는 곧 국가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느냐를 보여준다. 그래서 일정의 배치는 정책보다 더 직접적으로 권력의 방향을 드러낸다.

생중계 정치가 넘어야 할 선

생중계는 민주주의를 투명하게 만든다. 그러나 투명함이 곧 효율은 아니다. 보여주는 정치가 설계되지 않으면 국정은 이미지 정치에 갇힌다. 공개가 오히려 국정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권력이 화면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책은 깊이를 잃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도어스태핑을 중단한 것도 이 위험과 맞닿아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외교와 안보, 시장을 흔드는 자리기 때문이다. 즉흥적 공개는 때로 국가 비용이 된다. 대통령의 언어는 개인의 발언이 아니라 국가의 신호다.

이 대통령은 공개를 택했다. 그러나 공개는 더 높은 정제를 요구한다. 준비되지 않은 말은 솔직함이 아니라 위험이다. 질문이 자유로울수록 답변은 더 정확해야 한다. 개방된 권력일수록 언어는 더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생중계 정치는 훈련된 권력만이 감당할 수 있다. 구조 없는 개방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혼란이 된다. 이 균형이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공개와 통제, 소통과 설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 국정은 방향을 잃는다. 지금 이 실험은 투명성의 성패가 아니라 통치 능력의 성숙도를 가르는 순간이다.

대통령은 연출자가 아니라 지휘자

국무회의는 국가의 오케스트라다. 기자회견은 그 음악을 국민에게 해설하는 시간이고, 타운홀 미팅은 청중과 연주자가 만나는 무대다. 이 세 무대는 모두 필요하지만, 같은 리듬으로 연주될 수는 없다. 각 무대가 제 역할을 할 때 국가의 소리는 비로소 조화를 이룬다.

대통령은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체의 흐름을 조율하는 지휘자다. 언제 누구에게 연주하게 할지를 정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 판단이 곧 국정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지휘자의 침묵과 개입 모두가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타운홀 미팅에서 대통령이 모든 질문을 직접 떠안는 순간, 지휘자는 연주자가 되어 버린다. 국정의 리듬은 그때부터 흐트러진다. 조율자가 사라진 오케스트라는 소음이 된다. 많은 소리가 동시에 나와도 음악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의 품격은 친근함이 아니라 역할의 정확성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국정도 제자리를 지킨다. 자리의 무게를 지키는 것이 곧 권력의 품위다. 권한을 넘지 않고 책임을 놓치지 않는 태도에서 통치의 격이 만들어진다.

공개는 유지하되, 구조는 세워야

이 대통령의 공개 통치는 옳은 방향이다. 질문을 숨기지 않고, 답을 회피하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든다. 이는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미덕이기도 하다. 밀실이 아니라 화면 위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만든다.

그러나 공개는 구조 위에 놓여야 한다. 국무회의는 전략의 시간, 기자회견은 설명의 시간, 타운홀 미팅은 공감의 시간으로 분리돼야 한다. 이 구분이 있을 때 공개는 힘을 갖는다. 구조 없는 공개는 투명함이 아니라 과잉 노출이 된다. 국정의 중심이 화면의 소음에 묻히지 않기 위해서다.

대통령의 품격은 말투가 아니라 시간 관리에서 드러난다. 어디에 얼마의 시간을 쓰느냐가 곧 국가의 방향이다. 무엇을 대통령이 직접 다루고, 무엇을 위임하느냐가 통치의 수준을 보여준다. 권력은 결국 시간의 배분으로 측정된다.

생중계는 계속돼야 한다. 다만 그것은 국정의 품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보여주는 정치가 아니라 설계된 공개가 돼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의 시간은 흩어지지 않고, 국민의 신뢰로 축적된다. 그것이 이 공개 통치가 추구해야 할 다음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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