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AI 시대, 이제 태양 위에 시간 올려놓을 때

2026.01.25 09:00:00 호수 0호

세계 단일 시간, 선택 아닌 행성 문명의 조건

우리는 시간을 너무 오래 태양에 맡겨뒀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아침이고, 머리 위에 오르면 낮이며, 서쪽으로 기울면 저녁이 되고, 사라지면 밤이라는 질서는 인류 수천년 동안 거의 의심받지 않았다. 인간은 그 그림자 속에서 하루를 나눴고, 각 나라의 시간대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국경은 곧 시간의 경계였다.



그러나 지금, 이 질서가 여전히 유효한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AI로 묶인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는 태양보다 빠르고, 거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으며, 전쟁과 재난, 금융과 여론은 실시간으로 지구를 관통한다. 뉴욕의 새벽 결정이 서울의 점심을 흔들고, 런던의 오후 뉴스가 시드니의 밤을 깨운다.

이미 우리는 같은 사건을 같은 순간에 겪고 있다. 그런데도 시간만은 여전히 각자의 태양 아래 흩어져 있다.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가 그리니치를 세계 시간의 기준으로 채택한 이후, 인류는 140년 동안 하나의 자오선(경도선)을 중심으로 시간을 맞춰 살아왔다. 그러나 AI와 초연결의 문명으로 들어선 지금, 그 기준은 더 이상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의 태양이 만든 시계 위에서 21세기의 디지털 문명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이 표준을 존중하되 역사 속에 놓아두고, 새로운 시간 통합 체계로 넘어가야 할 때다.


지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데, 시간만은 고대의 자연 질서에 묶여 있는 셈이다. 발상을 뒤집어 보자. 지금까지는 태양이 낮과 밤을 만들고, 그 위에 시간이 얹혀 있었다. 이제는 시간을 낮과 밤 위에 놓을 수는 없을까. 전 지구가 하나의 표준 시간표 속에서 살고, 각 지역은 그 시간표에 맞춰 생활의 낮과 밤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계를 쓰면 어떤 나라에서는 오전 7시가 저녁이 되고, 오후 7시가 아침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기이해 보이지만, 이는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낯섦’의 문제다. 시간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배신이 아니라 문명의 선택이다.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시간 감각을 바꿔왔다. 농경 사회의 해 뜰 때 일하고 해 질 때 쉬던 질서는 산업화와 함께 무너졌고, 교대 근무와 야간 노동, 24시간 도시는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글로벌 금융은 개인의 생체 리듬을 지역 태양과 분리해 놨다. 시간의 기준은 이미 태양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 변화를 ‘편의’가 아니라 ‘필연’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AI는 단순히 인간을 대신해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AI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초의 행위자다. 서버는 밤이 없고, 알고리즘은 피로가 없으며, 데이터는 휴일을 모른다. AI가 작동하는 세계에는 원래부터 ‘근무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제도는 인간의 생체 리듬 위에 세워졌다. 국가도, 금융도, 군대도, 법원도 결국은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AI가 의사결정과 감시, 거래와 방어의 주체로 들어오면서 이 구조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계의 중요한 판단이 더 이상 인간의 주간과 야간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지배하는 문명에서 시간대는 기술적 의미를 잃는다. 뉴욕의 새벽이든 서울의 밤이든, AI는 동일한 속도로 감지하고 계산하고 반응한다. 그때도 인간만 “아직 출근 전이라” “지금은 야간이라”는 이유로 결정을 미룬다면, 그것은 기술과 제도의 시간 불일치, 곧 문명적 병목이 된다. 세계 단일 시간은 이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명 장치다.

세계 단일 시간은 이 흐름의 극단이자 완성형에 가깝다. 첫째 이유는 AI 시대의 의사결정 구조다. AI는 쉬지 않는다. 글로벌 AI 시스템이 국가별 시간대에 따라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비효율의 집합이다. 하나의 표준 시간 아래서 데이터 수집과 판단, 대응이 이뤄질 때 인류는 비로소 ‘동시에 사고하는 문명’에 가까워진다.

재난 대응, 전염병 관리, 금융 시스템 안정, 군사 경보 체계 역시 시간의 통일이 곧 대응 속도의 통일로 이어진다. 반도체 공급망과 금융 시장, 안보 판단이 초 단위로 연결된 한국 같은 국가일수록 시간 분절의 비용은 더 크다. 시간은 이미 경쟁력의 일부다.

둘째 이유는 지구촌이 하나의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국제 회의와 글로벌 협업은 매번 “당신 시간으로 몇 시냐”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시간의 분열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용이다. 세계 공용 언어가 영어라면, 세계 공용 시간은 아직 없다.

그리고 셋째, 가장 급진적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외계 문명과의 조우 가능성이다. 이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상상이 아니라, 문명 시스템을 시험하는 사유 실험이다. 기술 문명 간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그 순간의 핵심은 병력이나 무기가 아니라 탐지·판단·대응의 속도일 가능성이 높다.


외계 문명과의 충돌에는 전선도, 국경도, 낮과 밤도 없다. 모든 판단은 밀리초 단위로 이뤄진다. 그때 지구가 여전히 “유럽은 밤이다” “아시아는 근무 시간이 아니다”라는 시간 논리에 묶여 있다면, 그것은 전쟁 이전에 이미 패배한 상태다. 하나의 행성이 외부 문명과 맞서면서 내부의 시간조차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명이 아니라 지역 연합에 불과하다.

“우리 쪽은 지금 새벽이라 결정권자가 자고 있다”는 말은 문명 수준의 농담이 된다. 이 비유가 과장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시간 통합을 문명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행성 문명의 최소 단위다.

세계 표준화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사업은 사실 시간의 표준화였다. 초와 분, 시를 정하고 원자시계로 정확도를 맞추는 과정은 인류 과학의 정점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시간의 정확성’에서 ‘시간의 통일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반론은 정당하다. 시간은 문화고, 생활 리듬이며, 자연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우리는 이미 자연 시간에서 벗어났다. 교대 근무와 24시간 배송, 글로벌 금융은 태양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지금의 시간대는 자연 보호 장치라기보다 과거에 대한 관성에 가깝다.

해결 방식도 있다. 강제 전환이 아니라 병행이다. 문화와 종교의 시간은 존중하되, AI·안보·금융·재난 대응 같은 공적 시스템 영역부터 단일 시간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의례의 시간과 운영의 시간을 분리하는 이중 구조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 논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우리는 자연이 만든 질서에 문명을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이해한 위에 문명의 질서를 재설계할 것인가. 태양은 계속 뜨고 지겠지만, 그 위에 얹힌 시간만큼은 이제 인류가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이 낮과 밤 위에 놓이는 순간, 인류는 처음으로 행성 단위의 문명이 될 것이다. 그때 오전 7시가 저녁이든, 오후 7시가 아침이든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같은 속도로 판단하며, 같은 시간 위에서 책임을 나누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낮과 밤으로는 세계가 하나 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으로는 하나 될 수 있다. 세계가 하나라면 시간이 하나여야 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태양의 그림자 속에서만 21세기 문명을 흉내 내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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