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오세훈·박형준, 출우에서 출마로 바꿔라

2026.01.04 09:22:25 호수 0호

2021년은 소의 해, 2026년은 말의 해

정치는 개인의 능력이나 정당의 간판으로 설명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대의 성격’이 정치의 방향을 결정한다. 선거가 치러지는 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사회는 어떤 속도를 요구하는가, 그리고 유권자의 기대는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가 정치의 성패를 가른다.



필자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5년 사이 바로 이 ‘시대의 성격’이 바뀌는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본다.

이 둘의 정치적 궤적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결정적으로 시작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각각 성폭력·성추행 사건으로 임기 중 자리를 비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수도와 제2의 도시에서 동시에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의 ‘도덕적 파탄’이 도시 행정의 정당성 자체를 흔들었고, 유권자의 분노와 피로가 누적된 자리에서 국민의힘 후보였던 오세훈과 박형준이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 둘의 승리는 개인의 정치적 역량 이전에 ‘시대의 요청’이었다. 유권자는 혁신이나 속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먼저 요구된 것은 도덕과 함께 안정이었다. 무너진 신뢰를 복구하고, 흔들린 행정을 다시 세우는 일, 과열된 정치를 식히는 일이었다.

2021년은 말의 해가 아니라 소의 해였다. 빠른 질주보다 묵묵한 복구가 필요했고, 구호보다 관리가 요구되던 시기였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고, 흔들린 행정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해의 정치는 앞서 달리는 경쟁이 아니라, 뒤엉킨 현실을 하나씩 정리하는 일에 가까웠다.


실제로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다. 서울과 부산 모두 큰 이변 없이 연임에 성공했고, 그 결과 오세훈과 박형준은 2021년부터 2026년까지 사실상 5년 동안 각각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맡게 됐다.

필자는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과 박형준의 도전은 ‘출마(出馬)’가 아니라 ‘출우(出牛)’였다고 생각한다. 싸움을 위해 말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소를 외양간에서 끌어낸 도전이었다. 그 선택은 승부를 가르는 결단이기보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라는 유권자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

소는 느리나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다. 또 화려하지 않지만, 밭을 갈고 땅을 일군다. 2021년과 2022년의 정치 환경에서 유권자가 원했던 지도자의 모습은 바로 이 소의 이미지였다. 속도보다 신뢰를, 성과보다 안전을 먼저 확인하려는 시대의 감각이 그 안에 담겨있었다.

AI도, 로봇도, 초고속 혁신도 잠시 미뤄두고, 경제와 민생, 행정의 기본 체력을 회복시키는 일. 오세훈과 박형준은 그 요구에 비교적 적합한 후보였다. 적어도 ‘무너뜨리지 않는 정치’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있었다. 그 시기의 유권자는 잘하는 지도자보다, 망치지 않는 지도자를 더 절실히 원했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2026년은 말의 해다. 그리고 이 말은 더 이상 과거의 전쟁마가 아니다. 오늘의 말은 속도의 상징이다. AI, 로봇, 자동화, 데이터, 플랫폼, 도시의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속도의 은유다. 5년 전에는 ‘버티는 정치’가 미덕이었지만, 이제는 ‘늦지 않는 정치’가 요구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2026년 6·3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는 오세훈과 박형준이 더 이상 ‘출우 프레임’만으로는 유권자의 마음을 붙잡기 어렵다. 경제를 챙기겠다는 이야기, 행정을 안정시키겠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유권자는 안정 위에 속도를 요구한다. 멈추지 않는 도시, 뒤처지지 않는 도시를 보고 싶어 한다.

서울과 부산은 이미 관리의 도시가 아닌 경쟁의 도시다. 글로벌 경쟁, 기술 경쟁, 인재 경쟁에서 뒤처지면 회복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특히 AI와 로봇, 자동화 기술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도입 시점이 곧 격차가 되는 영역이다. 5년 전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말이 책임감으로 들렸지만, 2026년에는 “왜 아직도 망설이느냐”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오세훈과 박형준에게 필요한 것은 출우의 미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출마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출마는 싸움의 상징이 아니라, 말을 끌어내 속도를 내고 도시를 새로운 단계로 이동시키며 AI와 로봇, 첨단 산업을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정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결단이다.

물론 쉽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이미 안정의 이미지가 강하다. 급격한 전환은 위험으로 보일 수 있고, 과속은 또 다른 반발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정체다. 지금의 성과에 머무르는 순간, 유권자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정치에서 가장 큰 패배는 실패가 아니라 뒤처지는 것이다.

2021년의 출우는 옳았다. 그 시기에는 소가 필요했다. 그러나 2026년에도 계속 소만 끌고 나오면, 그 선택은 시대를 읽지 못하는 정치가 된다. 말의 해에 필요한 것은 속도다. 단순한 질주가 아니라, 어디로 얼마나 달릴 것인지에 대한 방향의 설계다.


방향 없는 말은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다. 이 지점에서 안정적 이미지를 가진 오세훈과 박형준은 분명히 유리하다. 타 후보가 속도를 낼수록, 유권자의 눈에는 그 말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 아직 길이 정해지지 않은 불안한 말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오세훈과 박형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위기 이후의 복구를 맡아 안정의 시간을 통과해 왔다. 이제 그 안정 위에 무엇을 얹을 것인가를 고민하면 된다. 올해 6·3 지방선거는 이 둘에게 또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소의 정치에서 말의 정치로, 관리에서 속도로 이동하라는 전혀 다른 시험지를 내밀고 있다.

출우에서 출마로. 그 전환에 성공한다면, 오세훈과 박형준은 단순한 연임 시장이 아니라 시대 전환기의 도시 설계자로 기억될 것이다. 실패한다면, 가장 성실했던 관리자의 한계로 남을 것이다. 말의 해는 잔인할 수 있다. 속도를 요구하고, 결단을 묻고, 주저하는 자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결국 오세훈과 박형준에게 올해 6·3 지방선거는 개인의 정치적 생존을 묻는 선거가 아니다. 그것은 안정의 시대를 통과한 지도자가 속도의 시대에 어떤 설계를 내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다. 소처럼 성실했던 과거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유권자는 더 이상 ‘잘 관리한 시장’을 찾지 않는다. 시대의 속도를 읽고, 도시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설계자를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