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국내 언론이 보도하는 기사 수는 ‘과잉’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업계 추산으로 하루 평균 3만~4만건의 기사가 인터넷 공간에 쏟아지고, 이 가운데 6000~8000건이 네이버 뉴스에 노출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매일 기사를 훑어보는 뉴스 소비자의 체감은 다르다. 뉴스는 많으나 전반적이지 않고, 다양해 보이나 균형이 부족하다. 속도는 빠르나 맥락이 남지 않는다. 정보는 넘치는데 이해는 축적되지 않는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뉴스를 보는 국민이다.
뉴스 넘치나, 세상은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뉴스는 정치·경제·사회·생활문화·IT과학·세계라는 여섯개의 카테고리로 정리돼있다. 형식만 놓고 보면 세상을 고르게 담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갖춘 듯 보인다. 각 영역을 나눠 배치한 구조는 정보의 균형을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상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순간, 이 질서는 빠르게 흔들린다.
주제는 여러개인 듯 보이지만, 시선은 극도로 제한적이다. 같은 인물, 같은 발언, 같은 갈등이 반복되며 뉴스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한 채 닮아간다. 겉으로는 다양해 보이지만, 실제로 다뤄지는 대상은 몇 개로 고정된다. 카테고리는 존재하지만, 그 안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좁다.
이 현상은 뉴스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뉴스가 동일한 방향으로 쏠린 결과다. 속보와 클릭을 기준으로 선택된 기사들이 비슷한 주제를 증식시킨다. 뉴스 소비자는 선택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이미 정해진 메뉴를 반복 소비하는 구조에 놓인다.
정치 뉴스에서 사라진 국민
특히 정치 카테고리를 보면 뉴스 편식 구조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루 정치 기사 중 60~70%가 대통령과 여당, 제1야당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 안에서도 대통령과 민주당·국민의힘을 둘러싼 보도가 반복되며, 정치 뉴스의 시선은 소수 권력 축에 집중된다.
정치는 본래 국민의 삶을 조직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뉴스 속 정치에는 시민사회와 학계, 소수 정당, 정치 지망생의 목소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해외 정치의 다양한 실험과 사례도 쉽게 배제된다. 정치의 얼굴은 늘 같은 인물과 발언으로 고정된다.
그 결과 정치 뉴스는 이해의 도구라기보다 갈등을 소비하는 콘텐츠로 기능한다. 정책과 구조보다 충돌과 발언이 중심이 된다. 국민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싸움을 지켜보는 관람객으로 밀려난다. 정치에 대한 피로와 냉소는 이 지점에서 축적된다.
경제 뉴스, 대기업 밖은 왜 보이지 않나
경제 뉴스 역시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 경제 기사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과 재벌 총수, 주가 변동, 인수합병 소식에 집중된다. 기업 활동은 숫자와 지분, 발언 위주로 전달된다. 경제의 얼굴은 늘 거대 자본의 움직임으로만 정의된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실체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성장 단계에 있는 수많은 기업으로 구성돼있다. 이들이 겪는 도전과 실패, 기술 축적과 조직의 진화는 뉴스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 모델도 쉽게 사라진다. 경제의 다양성은 기사에서 지워진다.
이 같은 경제 뉴스 환경은 국민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 경제가 참여하고 이해해야 할 영역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현장의 현실과 뉴스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그 결과 경제 뉴스는 이해보다 거리감을 남긴다.
사회면이 사고면이 될 때
사회 뉴스의 상당 부분은 사건과 사고로 채워진다. 범죄와 재난, 갈등이 사회면의 중심을 이룬다. 이는 언론의 중요한 기능이며, 공공의 안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보도가 사회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다른 문제다. 문제는 이 비중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데 있다.
사회 뉴스의 대부분이 사건과 사고 보도로만 구성될 때, 사회는 늘 위험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일상의 변화와 회복, 공동체가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뉴스에서 쉽게 밀려난다.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 불안의 집합처럼 그려진다. 변화의 가능성보다 위기의 이미지가 먼저 각인된다.
이런 보도 환경 속에서 사회에 대한 신뢰는 점점 약화된다. 타인은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고, 공동체는 기대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된다. 사회적 연대보다는 불신이 먼저 작동한다. 이는 사회를 바라보는 집단적 감각을 바꿔놓는다.
생활·문화, K-편중이 만든 빈 공간
생활·문화 뉴스는 겉으로 보면 가장 풍성해 보인다. 다양한 소재와 이미지가 넘치며,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K-팝과 드라마, 흥행 성과 중심으로 과도하게 쏠려 있다. 문화는 점점 성취와 기록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정작 우리의 삶을 바꾸는 문화적 변화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는다. 세대 간 가치 이동과 생활 방식의 전환, 일상의 재구성은 뉴스의 중심에서 밀려난다. 생활문화는 삶을 설명하기보다 결과를 나열하는 영역이 된다. 문화는 점점 생활과 분리된다.
그 결과 문화 뉴스는 위로가 아니라, 피로를 남긴다. 즐기기 위한 문화가 아니라, 따라가야 할 목록만 축적된다. 문화는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경쟁의 연장이 된다. 독자는 문화 소비자이기보다 관람객으로 남는다. 일상의 긴장을 풀기보다 또 다른 비교와 평가에 노출된다.
IT·과학, 기술 넘치지만 방향은 없다
IT·과학 뉴스는 신기술과 신제품을 빠르게 전달한다. 속도와 정보량만 놓고 보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거의 매일같이 기사로 소개된다. 발전의 속도 자체는 충분히 체감된다. 독자는 기술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과학은 맥락 없이 결과만 전달된다. 기술의 의미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같은 보도 방식 속에서 국민은 과학의 주체가 아니라, 관람자가 된다. 기술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이해는 오히려 멀어진다. 과학은 생활과 연결되지 못한 채 분리된 영역으로 남는다. 그 결과 과학기술은 선택과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세계 뉴스, 좁아진 세계관
세계 뉴스의 상당 부분은 미국, 그중에서도 특정 정치 인물에 집중된다. 하루 세계 기사 중 절반 이상이 미국 정치와 외교 이슈로 채워진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 뉴스의 시선은 소수 국가에 반복적으로 고정된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처럼 단순화된다.
반면 한국과 외교·경제적으로 밀접한 다수 국가의 변화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의 정치·사회 변화는 쉽게 밀려난다. 이들 지역의 정책 전환과 사회적 실험은 관심 밖에 놓인다. 세계는 넓지만 뉴스 속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좁다. 다양한 맥락과 배경은 기사에서 사라진다.
이런 구조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단순화한다. 국민은 글로벌 주체자가 아니라, 특정 국가 정치의 실시간 관람객이 된다. 국제 질서는 복합적인데 인식은 단선적으로 굳어진다. 외교와 안보, 경제를 바라보는 시야도 함께 좁아진다. 세계를 읽는 감각은 점점 협소해진다.
하루살이 뉴스 소비자가 된 사회
이런 뉴스 환경 속에서 뉴스 소비자는 단기 기억 중심의 소비자로 변한다. 빠르게 판단하고, 빠르게 분노하지만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의 이슈는 하루 만에 사라지고, 새로운 속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식은 축적되지 못한 채 흘러간다.
그 결과 정치는 싸움으로만 인식되고, 경제는 나와 무관한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회는 늘 위험한 공간으로 각인된다.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착각은 커지지만, 깊이 이해하는 영역은 거의 남지 않는다. 정보는 많아도 통찰은 부족하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카테고리에 치우친 데 있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각 카테고리 안에서조차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구조다. 이 편중된 뉴스 환경이 국민을 생각하는 주체가 아닌 반응하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살이 정보소비자가 된다.
편식서 벗어날 때, 국민은 다시 주체 된다
속보는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뉴스가 속보일 필요는 없다. 하루 중 일부만이라도 맥락과 배경, 비교와 해석에 할애한다면 정보소비의 질은 달라질 수 있다. 뉴스는 빠른 전달을 넘어 이해를 돕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문제를 단순히 기사 수의 많고 적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뉴스가 배열되는 방식과 강조되는 방향에 있다. 카테고리의 편중을 넘어, 각 카테고리 내부에서조차 시선이 한쪽으로 고정되는 순간 정보는 이해가 아니라 반응을 유도하는 자극이 된다.
균형 잡힌 정보 식단은 민주주의의 기초다. 다양한 목소리와 맥락이 공존할 때 국민은 하루살이가 아니라, 기억하고 판단하는 존재가 된다. 편식을 멈출 때, 뉴스 소비자인 국민은 건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