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회용컵 무상 제공 금지와 탁상공론

2025.12.18 09:39:58 호수 0호

커피숍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당연하게 제공되던 일회용컵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니게 됐다. 정부가 지난 17일부터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커피숍의 일회용컵 무상 제공을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회용컵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매장에 100~200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플라스틱 일회용컵 가격을 얼마나 받을지 가가게 자율적으로 정하되, 100~200원 정도는 되도록 생산원가 등을 반영한 ‘최저선’은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일회용(플라스틱컵) 시장 가격은 50~100원, 식음료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공급하는 가격은 100~200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일부 매장에서는 컵을 유상으로 판매하거나 텀블러 사용을 사실상 강제해야 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 취지는 이해하나 일회용컵 무상 제공 금지 정책이 과연 환경을 위한 합리적 대안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행정 편의적 규제이자 소비자 부담 전가에 불과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정책은 ‘환경 문제의 책임을 지나치게 개인 소비자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일회용컵 사용이 늘어난 원인은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중심의 테이크아웃 문화와 회전율 중심의 영업구조에 기인한다. 기업은 빠른 판매와 비용 절감을 위해 일회용컵 사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고, 소비자는 그 시스템 안에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정책의 칼날은 기업이 아닌 소비자에게 먼저 향했다.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만드는 방식은 환경 정책이라기보다 생활 규제에 가깝다.

또 정책의 실효성 역시 의문이다. 텀블러 사용이 늘어나면 환경에 긍정적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텀블러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세척에 필요한 물과 세제, 개인 위생 문제까지 고려하면 무조건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사 마시지 않는 일반 소비자에게 텀블러는 ‘환경 보호 수단’이라기보다 ‘불편한 짐’이 되기 쉽다.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텀블러를 몇 번 쓰다 방치하고, 결국 또 다른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적지 않다.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다회용컵 회수 시스템이나 보증금 제도를 도입할 여력이 있지만, 동네 카페나 소규모 매장은 얘기가 달라진다. 컵을 유상으로 제공할 경우 소비자 불만을 감수해야 하고, 무상 제공을 하면 과태료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결국 가장 약한 고리인 소상공인이 정책의 비용과 갈등을 떠안는 구조에 직면하게 된다. 환경을 위한 정책이 또 다른 양극화를 낳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책이 상징적 규제에 머물 가능성이다. 일회용컵 하나를 유료화한다고 해서 환경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배달 음식 용기, 과대 포장된 제품,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량 폐기물에 비하면 커피숍 일회용컵이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관리가 쉬운 영역, 즉 시민의 일상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부터 택했다. 이는 ‘보여주기식 환경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환경 보호는 강요가 아니라 신뢰와 유인의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다회용컵을 선택하도록 하려면 불이익을 주기보다 혜택을 늘리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실제로 일부 카페에서 시행 중인 할인 제도나 포인트 적립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반면 무상제공 금지는 반감과 피로감을 키우고, 결국 환경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강화가 아니라 정책의 정교화다. 기업의 책임을 확대하고, 친환경 포장재 개발을 지원하며, 회수·재활용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우선이다. 소비자에게는 선택권을 보장하되, 친환경 선택이 더 합리적이 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컵 하나의 가격을 문제 삼기 전에,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일회용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커피숍 일회용컵 무상제공 금지는 환경을 생각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편의적 규제와 책임 회피가 숨어 있다. 환경 보호는 시민의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이 진정 지속 가능하려면, 불편을 강요하는 대신 공정한 책임 분담과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환경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또 하나의 ‘피로한 규제’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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