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짜뉴스 근절법? 위험한 건 ‘권력의 진실 독점’

2025.12.11 14:29:10 호수 0호

가짜뉴스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너무도 분명하다. 허위 정보들이 선거판 전체를 흔들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 또는 특정 단체 등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의혹 제기 형식으로 도배되면서 이들이 받는 고통과 피해는 도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선 ‘가짜뉴스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에 의해 통과됐다.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불법 또는 허위 조작 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법원에서 불법·허위 조작 정보로 판결된 정보를 2회 이상 유통한 경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최대 10억원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짜뉴스 근절이라는 명분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와 언론 자유의 근간을 뒤흔드는 방향으로 설계돼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도 공존한다.

이 법이 향하는 방향은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아닌 ‘권력이 정한 진실’의 세계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 근절법의 문제는 허위 정보의 정의가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점이다. ‘객관적 사실에 반하거나, 오해를 유발하는 정보’라는 식의 규정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자가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다.

예컨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나 실책을 지적하는 분석 기사가 집권 세력에게 불편하다면, 그 기사 역시 얼마든지 ‘오해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문제 삼을 수 있다. 애매모호한 기준은 검열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또 권력기관이 허위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 자체도 위험할 수 있다. 가짜뉴스 판정위원회든, 관할 부처든, 어느 곳이든 결국 정부 조직 혹은 권력과 연결된 기관이 판단의 중심을 맡는다. 이는 실질적으로 ‘권력이 진실의 최종 판단자’가 되는 구조며, 민주사회가 가장 경계해야 할 권력 집중이다.

언론·학계·법원이 공동으로 논쟁하면서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인데 정부가 “이건 가짜, 저건 진짜”라고 도장을 찍는 순간, 비판적 언론의 숨통은 자연스럽게 조여진다.

제재의 수단이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것도 문제다. 가짜뉴스로 판정되는 순간 무거운 과태료, 형사 처벌, 플랫폼 노출 제한 등의 처벌이 이어질 수 있게 설계돼있다.

이처럼 강한 규제는 단순히 악의적 허위 정보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며, 훨씬 넓은 범위에서 언론의 자기검열을 유발하기 쉽다. “혹시라도 정부와 다른 해석을 제시하면 가짜뉴스로 몰려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두려움은 언론을 침묵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는 ‘잘못된 정보가 존재할 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사라질 때’ 더 급격히 붕괴된다.

게다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허위 여부가 달라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특히 복잡한 사회 문제는 객관적 진실이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전망, 정책 효과, 공공 선택의 결과 등은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공식 발표와 다른 분석이나 전망이 ‘허위 정보’가 되는 순간, 사실상 ‘권력의 세계관’이 국민에게 강제되는 셈이다.

실제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유언비어 유포죄’를 통해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필터링하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해당 법안은 정치권력과 언론 사이의 권력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언론사와 기자는 언제든지 ‘허위’ 낙인이 찍힐 가능성에 노출된다. 반면 정부나 정치인은 면책특권·발언권을 이용해 사실상 아무 제약 없이 주장을 펼친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보호받고, 언론의 비판은 규제되는’ 비대칭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는 가짜뉴스 근절이 아니라, 비판 권력의 무력화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짜뉴스 근절법이 정작 가짜뉴스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가짜뉴스의 상당수는 해외 서버에서 만들어지거나, 폐쇄형 SNS·커뮤니티에서 확산된다. 법적 규제를 피해 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존재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토대며, 권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이를 견제하는 유일한 장치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순간, 사회 전체의 감시와 토론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가 자칫 악용될 위험도 있지만, 권력의 검열은 반드시 악용된다는 사실은 세계 역사를 통해 여실히 증명돼왔다.

가짜뉴스가 문제임은 명확하나 이보다 훨씬 위험한 것은 ‘국가가 진실을 정한다’는 세계관이다. 가짜뉴스를 막겠다는 명분 아래, 그 수단이 언론의 자유와 시민의 표현권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좀먹는 다른 형태의 억압에 불과하다.

가짜뉴스를 줄이려면 언론 자율규제 강화를 지원하고,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이며, 투명한 공공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 반면 권력이 직접 나서서 진실을 선별하고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짜뉴스 근절법이 아니라, 가짜뉴스를 빌미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대한 경계심이다. 진실은 권력의 보호 없이도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지만, 자유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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