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호주 16세 미만 SNS 금지, 한국의 선택은?

2025.12.11 08:40:23 호수 0호

호주가 지난 10일부터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 학계가 동시에 격렬한 논쟁 속으로 들어섰다. 메타는 이미 13~15세 계정 차단 작업에 돌입했고, 유튜브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이라며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호주의 이번 사용 금지 결정은 ‘세계 최초’라는 이유만으로도 충격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법 뒤에 숨은 시대적 질문이다. ‘디지털 세대의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기업의 자유·아동의 자유·부모의 권리는 어떻게 조화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 실험은 단순히 호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이제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선택의 문제다.

호주 정부가 이 법안을 밀어붙인 배경에는 청소년 자살 증가, 알고리즘 중독 문제, 자존감 하락과 불안·우울의 폭발적 증가라는 현실이 자리한다. 애니카 웰스 통신 장관은 “알고리즘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고까지 말하며 강력한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타나 유튜브가 제시하는 논리는 다르다. 이들은 플랫폼 내에서 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사전 차단이 아니라,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유튜브는 “로그인을 막으면 아이들은 계정 없이 더 위험한 방식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콘텍스트 없이 노출되는 영상, 콘텐츠 추천 필터 부재, 시청 기록이 남지 않아 부모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플랫폼을 몰아내는 방식의 규제가 오히려 음지화·비가시화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기업의 반발에는 또 다른 숨은 층위가 있다. 아동·청소년은 모든 플랫폼의 미래 사용자이며, 해당 집단 이탈은 장기적으론 시장의 축소를 의미한다. ‘청소년 보호’를 내세운 기업의 우려 속에는 사실상 ‘미래 매출 기반 유지’라는 이해관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이해관계가 법제도의 판단을 흐려서는 안 된다. 국가의 규제는 기업의 수익보다 시민 보호에 우선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고 호주의 방식이 완전한 정답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법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지나치게 직접적이다. 규제를 사실상 ‘연령 차단’에만 맡긴 구조는 청소년들의 우회 사용을 막기 어렵고, 부모의 관리 권한을 오히려 축소시키며, 플랫폼 간 정책 불균형을 초래한다.

로블록스·왓츠앱·핀터레스트가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논리적이지 않다. 알고리즘 중독을 문제 삼았지만, 게임·메신저 기반 플랫폼의 알고리즘 역시 SNS 못지않게 강력하다. 또 AI를 통한 나이 조작·가짜 신분증 업로드 확산이 이미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술적 우회는 시간 문제다.

정부가 플랫폼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도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메타가 지적했듯이, 앱스토어·통신사·정부 시스템 전반이 연령 관리 체계를 통합 구축하지 않는 한 연령 검증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호주 법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알고리즘의 무책임함을 방치할 수 없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호주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먼저 금지라는 강수로 방향을 연 국가고, 그 실험은 전 세계가 참고하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덴마크·프랑스·스페인 등 여러 나라가 이미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 보호는 이제 기술 논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이동했고, 정부는 더 이상 ‘방관적 자유주의’에 머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국은 호주의 법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 한국의 청소년은 전 세계에서 SNS 사용률이 가장 높은 세대고, 학교·또래 문화·정보 접근이 이미 SNS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다. 무조건적 차단은 청소년을 오히려 사회적 단절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취약한 현실에서 차단만 강화하면 아이들은 음지 플랫폼·비공식 커뮤니티로 이동할 뿐이며, 이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키운다.

또 부모의 관리 권한이 약화되면, ‘가정 기반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장치가 무너진다. 무엇보다 한국은 SNS가 학교폭력·비방·성 착취 등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있기에, 차단보다는 ‘책임 구조의 재설계’가 훨씬 더 시급하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은 호주식 총량 규제가 아니다. 한국은 연령 차단보다는 연령 검증 고도화, 부모 관리권 강화, 플랫폼 책임 강화, 알고리즘 투명성 의무화, 청소년 보호 모드의 법적 표준화, 학교·가정·플랫폼의 3자 공동 관리 모델 구축이라는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알고리즘 투명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떤 영상이 왜 추천되는지, 어떤 경로로 민감 콘텐츠가 노출되는지, 어떤 위험이 감지됐는지에 대한 설명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한 청소년 보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디지털 중독을 개인 책임으로 떠넘기는 시대는 끝났다. 플랫폼 구조가 문제를 만들었으면,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해법이 돼야 한다. 플랫폼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청소년의 일상과 정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디지털 아동권리법(가칭)’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연령별로 다른 권리를 부여하고, 디지털 환경에서의 안전·접근·자기결정권을 분리해 명확히 규정하며, 플랫폼·정부·학교·가정에 각각의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개인과 가정에만 책임을 떠넘기거나 기업의 자율 규제에 의존하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 94%, SNS 사용률 OECD 최고 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오히려 가장 먼저 정교한 법적 기준을 만들어야 할 나라다.

호주의 강수는 위험하지만 의미가 크다. 청소년을 시장 논리의 보호막 없이 던져놓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며, 알고리즘의 무제한 확장을 첫 번째로 제동 건 사례다. 한국도 이 신호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만 한국은 호주보다 더 복잡한 환경, 더 높은 SNS 의존도, 더 다양한 위험 구조를 갖고 있기에 금지라는 외과적 처방보다 정교한 재설계라는 내과적 처방이 필요하다.

필자는 한국이 ‘청소년 보호 대책을 위해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보다 ‘청소년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안전은 차단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며, 호주의 선택은 그 설계의 첫 신호탄일 뿐이다. 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금지냐 허용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청소년의 일상을 보호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디지털 사회 계약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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