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은 매년 12월 비슷한 장면을 반복한다. 한쪽에서는 새 임명장을 받은 임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받고, 다른 쪽에서는 말없이 서류를 챙기며 퇴임 인사를 준비하는 임원들이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다.
승진의 기쁨과 퇴장의 침묵이 한 공간에서 맞부딪히는 모습이야말로, 한국 기업 인사 정책의 불편한 양면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필자가 지난 2일 만난 한 대기업 A 전무도 ‘뜨는 별’ 중 한 명이었지만, 갑자기 옷을 벗었다. 그는 “회사 분위기를 감안해 사의를 표했다”고 담담히 말했지만, 술잔을 기울이자 “제가 일을 못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할 일도 많은데, 아쉽다”는 속내가 외려 더 깊이 배어 나왔다.
30년 넘게 회사의 성장과 위기를 함께 하며 열정을 쏟았던 임원이 마지막 순간 느끼는 감정이 ‘억울함’과 ‘원망’이라는 사실은 한국 기업의 인사 정책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상징처럼 보여준다.
인사는 곧 메시지다. 기업이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보내는지는 기업의 철학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언어다. 이 메시지는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는 약 7000명의 임원이 있고, 이 가운데 300명가량이 매년 11~12월 사이 회사를 떠난다.
세대교체, 디지털 전환, ESG 강화, 고금리·원자재 비용 증가, 글로벌 경기 둔화, 총수 승계라는 여러 요인이 이 떠남을 구조적으로 만들어낸다.
기업은 젊고 유연한 리더를 필요로 하고, 비용을 줄여야 하며, 경영권 안착을 위해 조직을 새롭게 짜 맞춰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물론 경영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을 내보내는 방식이 여전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기업은 사람을 뽑고, 키우고, 승진시키는 과정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에는 거의 아무런 정서적 장치를 두지 않았다.
그 결과 조직을 20~30년 지탱한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늘 조용했고, 때로는 비참했다. 회사는 떠나는 이들에게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모든 관계를 단숨에 끊어낸다.
떠나는 임원은 단순히 고연봉 간부가 아니라, 조직의 기억과 경험, 관계와 맥락을 몸에 품은 존재다. 위기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였는지, 어떤 오랜 네트워크가 회사를 지탱해 왔는지 등등은 매뉴얼로 기록되지 않는 귀중한 조직의 자산이다.
그런데 기업이 그들을 급히 내보내면 이런 자산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떠나는 사람의 모습은 조직 내부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저분도 저렇게 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은 후배들에게 애사심의 무의미함을 알게 하고, 조직에 대한 신뢰를 약하게 만든다. 직원들은 몰입보다 생존을 우선하게 되고, 조직은 점점 더 파편화된다.
결국 기업은 비용을 절감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조직 문화라는 더 큰 비용을 잃는다.
12월이 되면 한국 사회는 불우이웃돕기와 연말 기부를 시작한다. 물론 중요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가장 외로운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조용히 회사 문을 나서는 임원과 직원들이다.
임원 인사가 끝난 11월의 상처가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 직원 인사가 이어지고, 또 다른 ‘떠남의 행렬’이 만들어진다.
승진에서 반복해 밀린 중년 과장·차장, 실적 부족으로 재배치 통보를 받는 직원, 신기술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 “다음 조직에서 더 노력하라”는 말을 듣는 실무자, 특히 회사의 흥망성쇠를 몸으로 버텨낸 장기근속자들이 이 시기 가장 큰 불안을 느낀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에게 어떤 정서적 보호도 제공하지 않는다.
퇴직금이나 위로금은 경제적 차원에서의 정리일 뿐, 감정적 공백을 채우지는 못한다. 30년 동안 회사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사람이 회사로부터 마지막 한마디의 인정조차 받지 못한 채 돌아서는 순간 그에게 남는 것은 허무와 상실뿐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고생했다”는 말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바로 “당신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는 인정, “당신의 헌신이 회사를 지탱했다”는 감사, “당신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한다”는 존중이다.
기업이 이것들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라도 떠안아야 한다. 퇴직자의 심리적 충격, 재취업의 어려움, 가족의 불안, 사회적 공동체의 부담은 모두 기업이 지나치게 빠르게 사람을 밀어낸 대가로 남는다. 기업은 비용을 아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비용을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떠넘기는 셈이다.
이제 한국 기업은 떠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떠나는 이들을 무표정하게 돌려보내는 문화는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조직의 안정과 사회의 건강성에도 해를 끼친다. 떠나는 임원이든, 떠나는 직원이든, 그들이 마지막으로 회사 문을 나설 때 최소한의 자긍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기업의 품격이며 사회적 책임이다.
12월이 불우이웃돕기의 달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12월에 먼저 위로해야 할 사람은 어쩌면 회사를 떠나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패배자’가 아니라, 한국 기업을 30년 동안 지탱해 온 조용한 주역들이다. 그들에게 “고생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이 있었기에 회사가 버틸 수 있었다”는 진심 어린 인정이 필요하다.
뜨는 별을 축하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는 별의 삶을 품어주는 일은 더 중요하다. 떠나는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는 사회, 떠나는 이들에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부심을 남겨주는 기업, 떠나는 순간에 존엄이 지켜지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한국 기업은 비로소 한 단계 성숙할 것이다.
12월은 한 사회가 얼마나 따뜻한지, 한 기업이 얼마나 품격을 갖췄는지, 그리고 한 공동체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가르는 계절이다. 우리는 떠나는 사람의 뒤를 지켜볼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대한민국의 얼굴이며, 더 단단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지난 2일 A 전무는 필자와 헤어지면서 뜻밖의 고백을 꺼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회사 다닐 때는 파란 약만 먹고 살아서 제도와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 마치 빨간 약을 삼킨 사람처럼 세상이 확 달라져 보이더군요.”
그는 잠시 웃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회사에서는 임원이면 별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별이란 게 사실 반딧불 같은 작은 빛에 불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A 전무는 필자에게 “어제는 고마웠습니다. 많은 힘이 됐습니다“라는 짧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회사와 우리 사회가 하지 못한 위로를 조금이라도 대신 한 것 같아 뿌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