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시즌2 시나리오

2025.11.10 09:45:54 호수 1557호

불씨 잡다 큰불 놓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전환이 없으면 한국 의료는 붕괴한다.”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 제동을 걸고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계 내부에서 수십년 전부터 나왔던 말이다. 그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붕괴 시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뿐이다.



윤석열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의료개혁이 현안에서 사라졌다. 계엄 이후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재명정부는 의료개혁과 관련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임기 초반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학교를 떠난 의대생에게 특혜를 준다는 인상을 줘 여론의 역풍을 한차례 맞고 난 이후 손 놓은 듯한 모습이다.

반복되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 정책은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의료 현장을 떠받치고 있던 인력이 사라졌고 미래 인력은 학업을 거부했다. 인력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일어나는 등 현장이 마비됐고 의료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1년여간 상황이 지속되자 의정 갈등의 연쇄 반응이 국민 피해로 이어지는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이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모든 이슈가 계엄이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고 탄핵 정국,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의료개혁은 표류했다. 그러면서도 정권이 바뀌면 의료개혁이 다시 추진되리라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정부는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이 한없이 깊어진 상태에서 현안을 넘겨받았다. 여러 정부에서 진행했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의료계 문제를 이정부에서 봉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비상계엄으로 몰락한 윤정부에서조차 의료개혁은 지지를 받을 정도로 의료계에 대한 국민 여론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하면서 그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정 장관은 문재인정부 시기인 코로나19 당시 ‘방역 수장’으로 국민에게 눈도장을 찍은 상태였다. 배우자의 주식 문제로 청문회 때 홍역을 치르긴 했지만 무난하게 장관이 됐다.

의료계는 정 장관의 지명 때부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의사 출신이라는 점과 코로나19 당시 보여줬던 리더십이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다. 전공의 복귀, 의대생 복학 등 인력 수급부터 필수의료, 수가 등 정책 문제에 이르기까지 의료계에 산적해 있는 현안을 처리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 장관이 취임한 이후에도 의정 갈등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2의 의정 갈등’을 예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재명정부는 임기 초 한 차례 비판받고 난 뒤 의료개혁에 대해 손을 놓아버린 느낌”이라며 “정 장관이 나서서 뭘 할 타입은 아니니 의료개혁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오르는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을 하는지를 잘 살펴야 하는데 현재 의사 단체의 윗선들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하는 듯하다”며 “의협은 의협대로 구심점 역할을 못하는 것 같고 다른 의사 단체도 선봉에서 이끌던 사람이 사라지니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직격 비판했다.

존재감 사라진 복지부 장관
국립대병원 부처 이관 갈등

오는 16일로 예정된 궐기대회에 대해서도 큰 반향은 예상하지 않는 듯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오는 11일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시작으로 대정부 투쟁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날에는 전국의사대표자 궐기대회도 열겠다고 했다.

앞서 의협은 지난달 30일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하고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바 있다.


의협이 문제 삼는 법안과 정책은 약사의 성분명 처방, 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검체 검사 위·수탁 개선 등이다. 의료계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치고 1차 병원이 고사할 수 있는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의협이 이정부 들어 첫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면서 의료개혁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가 복귀하고 의대생이 돌아오면서 표면적으로는 의정 갈등이 봉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정 갈등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거칠게 터져나왔을 뿐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천지개벽 수준의 대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2030년 전후로 재정(건강보험)이 고갈된다. 많은 의료 분야 학자들이 의료 붕괴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 시기다. 의료 붕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망하는 식으로 오지 않는다. 서서히 무너져서 그 상태로 쭉 가는 것이다. 환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시점이 오면 그땐 되돌릴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제2의 의정 갈등 외에도 여기저기서 갈등의 불씨가 자꾸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 한 예로 든 게 국립대병원의 주무 부처 변경 건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교육부가 관리하는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를 이관하려 하고 있다. 지역·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문제는 국립대 교수들의 반대다. 이들은 국립대병원의 소속이 보건복지부로 변경되면 교육·연구 역량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한 국립대 교수는 “보건복지부가 국립대병원을 ‘빅5’ 병원 수준의 지역 거점병원으로 키우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공허한 약속”이라며 “이관 계획은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국민 건강과 지방 의료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국립중앙의료원을 보건복지부 소관으로 둔 결과를 복기해야 한다”며 “(국립중앙의료원은) 1970년대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처참하다. 보건복지부가 효과적으로 관리, 육성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한 부처 관계자는 물론 학계, 의료계 등 다방면에서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쪽 의견만 듣고 정책을 강행하다가는 자칫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힘겨루기

그러면서 “국립대병원 이관 계획은 국민 건강을 위한 진전이 아니라 과거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정책”이라며 “이관을 중단하고 근본적 구조 혁신을 우선 추진하는 게 국민과 지방 의료계를 위한 올바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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