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정년 연장 논의 급물살⋯노·사·정 셈법 동상이몽

2025.11.07 15:53:50 호수 0호

민주노총 “연내 입법 추진” 촉구
민주당 “기업·청년 등 감안할 것”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정년 65세 상향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조기 도입을 요구하는 노동계와 신중론을 펴는 재계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찾아 입법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정책 간담회에 참석해 “노동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민주노총의 목표인 동시에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의 목표”라며 “협력할 것은 확실히 협력하면서, 지속적으로 지혜를 모아 목표 도달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법정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일은 이미 이재명정부의 국정 과제에도 반영돼있는 만큼, 오늘 귀한 말씀주시면 경청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늘 당장 출생률이 반등하더라도 향후 20년간은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정년 연장으로 노후 빈곤을 해소하고 청년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서 희망을 주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날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비공개 간담회 직후 취재진에게 “당과 민주노총이 신뢰를 쌓아가자는 의미에서 자주 만나 소통하자고 얘기했다”며 “정년 연장 등 현안은 국회와 상임위원회별로 소통하고 있으며, (오늘)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내에 정년 연장 입법을 추진하느냐’는 질문엔 “연말까지 입법에 속도를 내 통과되도록 해달라는 노조 측의 요청이 있었지만, 단정적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한쪽 주장만으로 법안을 만들 수 없기에, 기업과 청년 고용 등도 감안해서 최적의 안을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입장은 노동계의 입법 압박에 호응하되, 속도는 조절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날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정년 연장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양대 노총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현행 60세 정년이 유지되면, 노후 빈곤과 소비 위축의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며 “정년 65세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며,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자 측이 주장하는 ‘선별을 통한 퇴직 후 재고용’은 사업주 재량 하에 뽑고 싶은 사람만 계약직으로 뽑아 불합리한 방식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고용 방식”이라며 “또 단기 반복 계약을 통해 임금과 노동 조건을 하향화시켜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구조로, 노동계로서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지난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와 국회 정년연장특별위원회의 논의까지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숙성됐다”며 “노사 입장이 더 이상 접점을 이루기 힘든 상황에서 마냥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이제는 약속을 행동으로 옮길 때”라고 강조했다.

정가에선 노동계가 연내 처리를 촉구하는 이유와 관련, 정년 연장 카드로 붙은 탄력을 이어가려는 판단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앞서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는 지난해 6월부터 정년 연장을 논의했지만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공익위원이 계속 고용 의무화를 제안했으나, 법적 강제력이 없어 주도권이 사용자 측에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반면 법정 정년 연장이 도입되면 기업이 만 65세 미만의 정년 해고가 금지되는 만큼 실질적인 고용 안정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정가의 대체적 해석이다.

또 정년 연장은 초고령사회 대응이라는 명분이 있어 노동계가 굳이 물러설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평가도 나온다. 현재 은퇴 시점과 국민연금 수급 사이의 간극을 보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정치적 이견도 비교적 적다.

여론 역시 우호적이다. SBS 의뢰로 입소스(Ipsos)가 지난달 1~2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연장하는 데 대해 81%가 찬성했으며 반대는 18%에 그쳤다. 전 연령대에서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2%로 집계됐다.

이 때문에 별다른 변수만 없다면 정년 연장 법안이 통과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등 야당 역시 우려 목소리를 내면서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기대수명 연장 등 시대 상황의 변화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데 대해 국민의힘도 적극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정책위의장은 “AI 시대 도래, 국내 기업의 엑소더스(대탈출) 현상 등으로 국내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정년을 늘리면 사회에 진출하는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에 타격이 불 보듯 뻔해 보인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년 연장을 하더라도 사회보장제도, 청년 일자리 보장 등 여러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세밀하게 따져 설계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이 보장되는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노동정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부작용을 막을 안전장치가 없다면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등으로 경영 부담이 이미 커진 만큼, 속도 조절과 보완책 병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는 전날 ‘2025 하반기 국회에 바라는 경영계 건의 과제’를 내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다.

경총은 “정년 연장은 그 혜택이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에 집중되고, 기업의 청년 고용 여력을 떨어뜨려 청년 취업난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또 60~64세 정규직 근로자 59만명가량을 고용하는 비용이 연간 약 30조원으로 추산돼, 인사 적체가 심화되고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 확산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앞서 정년 60세 의무화 시행 이후 축적된 통계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난다.


한국은행에서 지난 4월 발간한 조사연구집 ‘BOK 이슈노트’에 따르면, 집필진인 오삼일 한국은행 고용연구팀장 외 4인은 지난 2016년 정년 60세 연장 이후 고령 고용 증가 효과가 노조 비중이 높은 대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났고, 그 과정에서 청년 고용 위축, 조기 퇴직 증가 등의 부작용이 초래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존 정년이 낮았던 사업장일수록 23~27세 청년 고용은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고령 근로자 1명 증가 시 청년 근로자 0.4~1.5명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감소세는 임시·일용 근로자에게서 더 뚜렷했다.

이에 대해 집필진은 “기업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고용 형태가 유연한 일자리를 청년 고용 조정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정년 연장은 평균수명 연장과 고령화 심화에 맞춰 추진해야 할 과제라는 데에는 각계가 공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속연수에 비례해 커지는 임금 부담을 낮추고, 사회적 비용을 분산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무급’이 언급된다.

직무급은 근속연수가 아니라 담당 직무의 난이도, 책임 등을 평가해 기본급을 정하는 임금체계다.

국회 산하 정책연구기관인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달 발표한 ‘정년 연장 시대, 직무급과 사회적 합의’에서 “단순 정년 연장만으로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과 세대 간 갈등으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구조적 불균형을 완화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직무급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2023년 기준 한국의 근속 30년 이상 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1년 미만자의 2.95배로, 일본(2.27배)과 독일(1.8배)을 웃돈다”며 “또 300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은 대기업의 약 65% 수준이다. 현 구조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대기업은 고연차 인건비 부담이 늘고, 기업 간 격차는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정혜윤 부연구위원은 “과거 좌초됐던 성과관리형 직무급과는 명확히 구분된다”며 “직무급을 비용 절감 장치가 아닌, 임금체계의 수평적 재편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년 연장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중고령자 고용과 노동시장 전반의 형평성을 함께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j457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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