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 국민의힘, 제1야당 자격 있나?

2025.11.04 14:58:15 호수 0호

4일, ‘국정 대토론의 장’이 돼야 할 국회 시정연설 자리가 거대한 공백으로 점철됐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도 새해예산안과 민생·미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찾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원 불참했다. 국회 제1야당인 이들은 ‘야당 탄압’이라는 명분 아래, 보이콧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이 과연 국민을 위한 야당의 책임 있는 모습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국민의힘이 전날 의원총회를 통해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데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은 마스크와 손팻말을 들고 ‘야당 탄압’ ‘불법 특검’ 등 구호를 외쳤다. 물론 그런 식의 행동이 그들 나름대로의 저항 방식일 수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시정연설이라는 국가 의사소통 채널을 스스로 거부한 선택은 여러 면에서 정치적 자해이자 직무유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정부예산안 시정연설은 정부가 앞으로 1년간의 국정 방향을 국민과 국회에 설명하고, 입법 및 예산 논의를 촉발하는 중요한 제도적 절차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불참함으로써 그 절차적 의미가 반쪽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실제 연설장 뒷자리가 텅 비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야당이 정당한 이유를 갖고 반대하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 듣고 논점 제기하기’가 민주주의의 기본인데, 보이콧은 아예 논쟁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정당이 국민 앞에서 입장을 밝히는 최소한의 플랫폼을 포기한 것은 책임정치의 퇴행이다.

어이없게도 국민의힘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이유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야당 탄압이자 정치적 보복”이라고도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일,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은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해 ‘국회 본회의 표결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이날 추 전 원내대표가 12·3 계엄 당일,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에서 국민의힘 중앙당사로 변경해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방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당이라면 야당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으나 국민에게 어떤 선택지를 보여주는가를 정도는 고려해야 한다. 물론 국회 의석을 비우고 피켓을 드는 것도 일종의 저항 방식이지만, 정작 연설을 듣고 반론을 제기하거나 토론하지 않는 것은 대안 제시가 아니라 방임에 가깝다.

게다가 이번 시정연설 보이콧은 정치적 흥밋거리로 소비될 위험성도 크다. 현장에서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꺼져라” “범죄자” 등의 고성을 내며 응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야당이 정치 무대 위에서 소극적 저항을 넘어 감정적 대립으로 정부를 파트너가 아닌 정쟁 상대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동반하게 된다.

국민은 더 이상 ‘누가 더 크게 항의했는가’ ‘왜 보이콧해야만 했는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놓고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를 보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이번 선택을 숙고된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당 지도부는 이번 보이콧을 통해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존재감은 비움으로써 드러난 것이 아니라, 참여함으로써 보여질 때 강해진다. 국정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고립시킨 정당은 결국 목소리를 잃고 만다.

예산안과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감시하는 것은 야당의 본질이요,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시와 대안 제시는 ‘그 자리에 머물러 듣고 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연설장의 의석이 비워졌을 때 국민은 “이들이 정말 준비된 대안 정당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더욱이 국민의 삶을 위한 재정·정책 논의가 펼쳐지는 국회에서 야당이 자리를 비우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신호등이 꺼진 듯한 인상마저 준다.


결국 이번 보이콧은 야당 스스로의 자산을 갉아먹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 여당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국민과의 소통을 포기하면 정치는 자기 증명력을 잃는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자리로 돌아와 연설을 듣고 질문하고, 때로는 협력하되 필요할 때는 단호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보이콧이 아닌 ‘책임 있는 반대’가 된다.

정치권에선 늘 ‘끝까지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사람들이 기억된다. 그들은 반대할 때도, 비판할 때도,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냈다. 반면 미리 자리를 비우는 것은 항의처럼 보이지만, 그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은 논쟁이 아닌 책임이다. 이번 사태에서 국민의힘이 택한 것은 논쟁이 아니라 철수였다.

국민은 “다음에는 왜 앉아있다가 떠나느냐?”고 묻는다.

국회가 다시 숙의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야당이든 여당이든 모든 의원이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논쟁만이 국민을 향한 약속이고 책임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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