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공수교대? 국힘 보이콧으로 얼룩진 예산안 시정연설

2025.11.04 16:39:47 호수 0호

“야당 탄압 규탄” VS “국정 외면”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4일,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의 202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했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항의 차원이지만, 정쟁으로 국가 예산 논의마저 외면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본회의장 참석 대신 국회 로텐더홀에서 검은 마스크와 넥타이를 착용하고 ‘야당탄압 불법특검’ ‘명비어천가 야당파괴’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드는 것을 택했다.

이 대통령이 시정연설 차 국회 본청에 들어서자 일부 의원들은 “재판 받으세요” “꺼져라” “범죄자” 등을 외치며 규탄 구호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목례 뒤 악수를 청하려 했으나, 돌아오는 건 “악수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라”는 고성이었다.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재명식 정치 탄압 폭주 정권 규탄한다” “민주당식 정치 보복 국민들은 분노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예고된 침묵 시위가 고성 항의로 바뀐 셈이다.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 등과 사전 환담을 가진 뒤 본회의장 안으로 입장했다. 빈 국민의힘 의원석을 바라본 이 대통령은 “좀 허전하네요”라고 운을 떼며 약 22분간의 시정연설을 이어갔다.


이번 시정연설은 약 72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의원들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비록 여야 간 입장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며 여야 협치를 강조했다.

앞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제 전쟁이다. 우리가 나서 이재명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이번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야당을 지워버리고 본인 재판을 중단시키기 위해 사법부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로 나아가겠다는 무도한 이재명정권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동조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이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을 두고 “법치를 부정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한 자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문대림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은 정당한 사법절차를 정치 공세로 왜곡하고 있다”며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물리적으로 방해한 행위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자 내란 가담 혐의”라고 직격했다.

이어 시정연설 보이콧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하며 “작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거부했고, 올해는 국민의힘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이 기막힌 ‘릴레이 보이콧’이야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쇼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며 “명분 없는 불참이고 국민들은 수긍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정책적 비판은 얼마든지 하더라도 치열한 글로벌 생존 경쟁시대에 적어도 국익과 국정의 정상적 운영에 대해서만큼은 협조해야 되지 않겠냐”고 꼬집었다.

여의도 정가에선 3년 전 상황이 뒤바뀐 셈이라는 냉소도 일고 있다. 지난 2022년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을 당사 압수수색에 반발해 전원 보이콧했던 바 있다. 정권이 바뀌자 이번엔 마치 공수 교대한 듯 국민의힘이 같은 장면을 재연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야당이 정부의 예산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공식 자리에서조차 퇴장한 것은 스스로 협상력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쪽은 ‘정치 보복’이라 외치고, 다른 쪽은 ‘정당한 사법절차’를 말한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선 그저 매번 반복되는 ‘보이콧 시즌’을 지켜보는 일이 돼버렸다”며 “정쟁을 넘어 정치의 품격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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