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 이혼 뒤집힌 판결 막전막후

2025.10.23 11:15:27 호수 1554호

대법에 딱 걸린 ‘노태우 비자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이 1조3800억원 규모 재산분할을 결정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2심 판결을 다시 심리하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면서다. 대법원 판단에 따라 결론을 도출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단의 쟁점은 최 회장의 SK 보유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할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유입됐는지 등 여부였다. 논란이 됐던 2심 주식가액 계산이 오류라는 판단을 대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받은 돈?
줬던 돈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대법원은 “재산분할 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에 환송한다”며 “나머지 상고는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다시 2심 재판을 받게 됐다.

이번 판결은 국내 이혼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왔다. 2심에서는 재산의 범위와 기여도 등을 다시 판단하게 된다. 2017년 7월 본격적인 법적 절차가 시작된 지 8년3개월 만이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선고 이후로는 약 1년5개월 만이다.


이번 판결로 1조3808억원으로 확정됐던 재산분할액이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항소심이 대한텔레콤 주식 기초가를 100원에서 1000원으로 뒤늦게 수정한 점이 ‘단순 오기 정정’인지 ‘핵심 평가 오류’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됐다.

‘세기의 이혼소송’으로 불릴 만큼 여론의 관심이 높아 대법관 전원이 판단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 보고 사건’으로 지정해 대법관 전원이 주요 쟁점을 함께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마지막까지 주요 쟁점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며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이어왔다. 법조계에선 하급심과 달리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고 법리적 쟁점에 관해 판단하는 법률심인 상고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1조3800억원 판결’ 2심 계산 오류 판단
“재산분할 기여로 볼 수 없어” 파기 환송

재판에서 거론된 특유재산·6공 특혜·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등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남아 있어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예측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이후 최 회장이 2015년 12월 언론에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이혼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하면서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조정이 결렬되면서 이듬해 2월 정식 소송에 돌입했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도 2019년 12월 입장을 바꿔 반소(맞소송)를 제기하며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 1297만5472주의 절반 수준인 648만7736주의 분할을 청구했다.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665억원과 함께 위자료 명목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사실상 최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2심은 지난해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위자료 명목으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두 사람의 순 자산 합계를 약 4조원으로 산정하고 재산분할 규모를 최 회장 65%·노 관장 35%로 정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이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정하면서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노 관장 측은 상고하지 않았다.

이혼소송의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특유재산은 부부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가리킨다. 민법에선 특유재산은 이혼해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정한다.


1심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지분이 최종현 SK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고 판단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부부 공동재산이라고 판단해 1심 대비 20배 많은 재산분할 판단을 내렸다.

6공 검은돈
“환수해야”

2심 판단에 근거가 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도 쟁점이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20년 전 남긴 ‘선경 300억’이 적힌 메모와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약속어음(50억원짜리 6장)을 증거로 인정하고 SK가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을 받아 성장했다고 판단했다.

또 최 선대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를 ‘보호막’으로 인식하며 경영활동을 했다고 봤다.

SK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성장했고,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에 노 관장의 가사 노동이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했다. 최 회장 측은 SK 주식이 1994년 부친에게서 증여받은 2억8000만원으로 취득한 특유재산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실체가 없으며, 6공 특혜 논란에 대해 오히려 ‘사돈 기업’으로 분류돼 불이익을 봤다고 주장했다.

다만, 2심 재판부의 ‘계산 실수’가 파기환송의 이유다. 2심 재판부는 당초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대한텔레콤(SK의 모태) 주식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산정했다가 1000원으로 판결문을 바로 잡는 경정(更正) 결정을 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에게 각각 65 대 35로 산정했던 재산분할 비율은 고치지 않았는데, 최 회장 측은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대법원에 제기한 바 있다.

최 회장 측은 판결문 경정 자체가 단순한 오기나 계산 착오 정정이 아닌 판결의 실질적인 내용을 바꿀 수도 있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2심 판결을 확정하면 최 회장은 SK 주식을 노 관장과 나눠야 한다. 재계에선 자칫 SK그룹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되면 이를 노 관장이 사실상 상속받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편법 상속·증여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 비자금이 수사·환수 대상이라는 고발장도 수사기관에 접수됐다.

다들
아니라는데···

이번 이혼소송의 핵심 쟁점인 ‘노태우 비자금’ 문제도 파기환송심에 다시 소환될 전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맞는지, 그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전혀 파악되지 않은 점과 비자금이 실재한다면, 범죄 수익을 몰수하지 않고 가족에게 귀속시켜 이혼 재산분할금에 포함시킨 판단이 과연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SK그룹의 6공 특혜 부분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SK그룹은 1992년 8월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 경쟁에서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정치권에서 특혜 논란이 제기되자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특혜는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있었다”는 게 SK그룹 측 주장이다.

또 노 전 대통령 시절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SK(당시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통치 자금을 줬다’는 취지의 전언이 나오면서 SK 측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 밖에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손길승 SK 명예회장의 증언 등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정부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수석,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고, 현재도 재단법인 ‘보통사람의시대 노태우센터’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정혁진 변호사는 지난해 8월 방송된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방송에 따르면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 자금 이야기를 해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꾸준히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씨는 5·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모아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원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SK가 받았다고? 뜯긴 돈”
“300억은 불법 자금” 결정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선경건설의 약속어음은 태평양증권 인수와는 무관하고, ‘받았다’는 의미인 차용증은 ‘주겠다’는 의미의 약속어음이라며 노 관장 측 주장에 반박했다. 이는 김 전 위원장의 전언과도 일치된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어음 발행일은 지난 199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이다. 노 관장 측의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등으로 쓰여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전면 반박한 것이다.

SK 측은 재판 과정에서 300억원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퇴임 후 그에 상당하는 돈을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SK가 국내 최초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모호해졌다.

앞서 노 관장 측은 SK가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을 이용해 경쟁력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최태원 회장의 무선통신 청와대 시연으로 이동통신사업 논의가 촉발됐고, 이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4대 그룹의 통신사업 수허가권을 제한한 결과 SK그룹이 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나와 선경(SK)의 관계 때문에 정치 문제로 비화해 결국 선경이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에 가서 결국 선경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옥중에서 육필로 작성했던 대학 노트 30여권의 메모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 1112쪽에 이르는 회고록을 출간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뿐만 아니라, 노 관장의 남동생 노재헌 변호사 등 가족들도 출간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 쓰다
발목 잡혔다

최 회장도 대법원 상고 이유로 “‘6공의 후광’ 등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SK 명예가 실추됐다”며 “대법원에서 바로잡아줬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비자금 부분도 결국 이번 파기환송으로 재차 고등법원에서 논의되고 판결 내용이 뒤바뀔 전망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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