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비어있던 내 집에 낯선 가족이 살고 있었다.” 믿고 맡겼던 부동산 중개업자가 집주인 몰래 임대인 행세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중개업자는 “좋은 뜻으로 잠시 머물게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서로간의 오해로까지 번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지난 14일 ‘제 집에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 A씨는 “경기도에 허름한 빌라 한 채를 가지고 있다. 저는 일 때문에 타지에 있어, 전세를 놓은 상태”라며 운을 뗐다.
A씨에 따르면 해당 빌라는 전 임차인이 지난달 퇴거했고, 새 임차인이 다음 달 입주를 앞두고 있어 현재는 빈집이다. 그런데 며칠 전, 전 임차인으로부터 “누군가가 들어와 사는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결과, 비어있어야 할 집에 낯선 사람이 거주 중이었다.
그는 “주거침입이라고 생각해 경찰을 불렀고, 계약을 맡겼던 부동산 중개업자가 허락 없이 단기로 제3자를 살게 한 사실을 알게 됐다”며 “타지에 있어 대신 일처리해주겠다고 해서 맡겼던 건데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출동한 경찰은 큰일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다”면서 “중개업자는 잘못은 인정했지만 사과는 없었고, 신고한 데 대한 보복인지 도배, 잔금 처리 등도 미루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이 이렇게 (제 집을 가지고) 수익을 챙기는 게 일반적인 것이냐”면서 “일단 어제 경찰에 진정서는 제출했다. 어떤 혐의로 처벌이 가능할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되는지 알려달라”며 조언을 구했다.
사연을 접한 보배 회원들은 “집주인 허락 없이 제3자에게 돈을 받고 임대한 건 명백한 불법” “부동산업자의 부수입 방법” “지금 사는 사람은 주거침입 아닌가?” “뉴스에 나와야 할 일이다” “변호사부터 찾아가라” “귀찮고 성가신 일이지만 내 재산이 침해당한 건인데 이 악물고 고소해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한 회원은 “비워둔 나대지를 인근 펜션 주인에게 관리 조건으로 무상 임대해줬는데, 나중에 가보니 누군가가 컨테이너를 들여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치킨집은 펜션 주인에게 월세를 내며 장사하고 있었고, 정작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항의하자 펜션 주인은 되레 ‘어려운 사람 장사하게 해주는 게 뭐가 문제냐’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고 털어놨다.
일부 회원들은 “직무유기 아니냐” “경찰은 왜 그렇게 말했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것 아니면 별일 아닌가 보다” 등 경찰의 대응을 꼬집기도 했다.
반면 한 회원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경찰은 형사사건만 다룬다. 집을 훔친 게 아니라 (상황을 모른 채) 살았을 가능성이 있어 개입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임차인이 월세를 미루거나 보증금이 소진된 경우에도 명도소송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단기 거주자가 집주인 허락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경찰이 현장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도, 형사 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선 중개업자가 집주인의 동의 없이 금전적 이익을 취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민사상 책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법 제750조와 제741조에 따르면, 고의나 과실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배상 의무가 발생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타인의 재산으로 이익을 얻은 경우에도 이를 반환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A씨는 지난 16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단 경찰 수사과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며 “지자체에도 문의했지만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할지 모호하다’는 답변을 받았고, 증거를 모은 후 다시 찾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중개업자가 ‘3일 정도 인테리어 업자가 머물러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었다”면서 “그런데 확인해보니 업자도 아닌 평범한 3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집주인이 모르는 세입자가 들어와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단기 거주자에 대해선 “화가 난 제가 주거침입 신고를 해서 놀랐을 것”이라면서 “경찰을 사이에 두고 대화한 결과, 그들은 집주인 허락이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부동산과 구두로 계약해 한 달 치 월세 50만원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위임과 관련해선 “도배 정도만 맡겼을 뿐 위임장도 작성한 적이 없는데, 중개업자가 임대 권한을 모두 위임받은 것처럼 행동했다”며 “단기 월세를 받으라고 허락한 적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개업자는 저에게 ‘할머니(전 임차인)와 협의했다’는 등 핑계를 댔고, 항의 과정에서 오히려 저를 고소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며 “제 신상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무섭기도 하고, 공인중개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러도 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화가 난다”고 털어놨다.
한편 중개업자인 B씨는 17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절차상 잘못된 점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뒷돈을 챙기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전 임차인 퇴거 후 매물을 살피는 과정에서 안방 화장실 창문이 망가져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A씨의 금전적 부담이 커질까 우려돼, 마침 집 인테리어 중이던 지인을 7일가량 머물게 했다. 지인 측 업자에게 화장실 수리를 함께 부탁하려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인은 갈등이 있었던 그날 즉시 퇴거시켰다. 전날 입주했기 때문에 50만원은 모두 돌려준 상황”이라면서 “사실 전 임차인이 중도 퇴거하면서 중개수수료를 ‘못 주겠다’고 해, 제 몫의 돈을 받지 못할까 불안했던 것도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일을 처리한 부분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엔 “물론이다. 당일에도 했지만, 제가 먼저 잘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재차 사과드릴 생각이 있다”면서 “‘선한 의도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허락받지 않았음에도 독단으로 진행한 점은 제 잘못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번 일은 결국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중개업자의 독단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다면,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도 피해를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분쟁에 휘말려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겪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개업자의 일탈로 양측이 피해를 본 사례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전남 순천시 한 원룸에선 공인중개사가 임대인 몰래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과 월세를 챙긴 사건이 발생했다. 임대인은 공실로 알고 있던 방에 입주자가 있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고, 피해 규모는 약 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같은 해 3월에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중개업자가 보증금 6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세입자가 월세로 전환하려 한다”며 입대인을 속이고, 보증금 차액을 자신의 계좌로 송금받는 방식으로 지난 2018년부터 15차례에 걸쳐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재판부는 “범행 기간이나 수법, 피해의 규모 등에 비춰 죄책이 무겁다”며 “오피스텔 임차인들도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으며, 피해자(임대인)가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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