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갤러리마리에서 이이수의 개인전 ‘다정한 침묵’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분주한 일상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며 말 없는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전한다는 의도로 기획됐다.

늦여름의 빛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계절이 왔다.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말 없이도 깊이 이어지는 일상의 순간이 있다.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있는 조용한 시간, 가만히 건네는 시선,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는 손끝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 같은.
기억
많은 사람이 이런 장면을 지나쳐 버린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는 깊이 머무르는 장면들이다. 이이수의 그림은 바로 그 미세한 틈을 붙잡아낸다. 화려하거나 극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에 숨은 온기와 관계의 숨결을 색과 형태로 풀어냈다.
이이수는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일상적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믿는다”며 “화려하거나 극적인 사건보다는 조용하고 느린 감정, 그 사이의 틈, 눈치채기 어려운 온기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이수의 작품에는 단순함과 비움 그리고 자연스러운 어설픔이 배어 있다. 비우고 덜어내며 남은 색과 형태가 스스로 울림을 가질 때까지 공들인다. 한번 칠한 듯 보이는 색도 여러 겹의 붓질을 거쳐 깊이 있는 레이어로 만들어낸다. 그 안에는 감정의 결과 빛깔이 농축돼있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색채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마음의 질감을 불러낸다.
이이수는 “강렬한 색의 병치와 단순화된 형태를 통해 감정의 무게와 따뜻함을 표현했다. 색은 감정의 언어다. 색채로 말을 거는 순간 형상은 다정한 침묵이 된다. 밝은 원색과 대비되는 색은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감정의 무게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일상의 순간 속 감정
색과 형태로 푼 관계
이어 “파란 인물과 붉은 배경이 마주할 때 그 사이는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정서의 공간이 된다. 형식적으로는 단순한 구성과 투박한 붓질을 일부러 유지하곤 하는데, 이는 어린 시절 느꼈던 감각, 즉 해석 이전의 감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부연했다.
작품 속 인물의 뒷모습은 우리가 스스로 볼 수 없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드러나는 본질적인 순간이다. 그 솔직함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이 생겨나고 관람객은 작품과 마주하며 기억 속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함께였던 시간을 떠올리며 누군가와 함께였다는 감각을 되새기는 것이다.

이이수는 “작품 속 인물은 얼굴이 없다. 하지만 그 익명성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감정을 투사할 수 있다. 표정을 비워둠으로써 관람객이 스스로 기억과 경험을 그 안에 채워넣기를 원한다. 이들은 누구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으며 또는 나와 관계했던 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갤러리마리 관계자는 “이이수의 그림은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화면 위에서 관람객의 기억과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순간이 우리의 경험과 포개질 때 작품은 숨을 쉬고 살아난다”며 “그렇게 완성된 장면은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다정한 침묵’으로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더 깊이 전해지는 감정을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정
이 관계자는 “전시장을 찾아 이이수의 다정한 순간을 마주해보길 바란다”며 “화면에 담긴 고요한 울림 속에서 마음의 기억과 감정을 살짝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관람객을 초대했다.
정마리 갤러리마리 대표의 기획으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다정한 순간을 다시금 불러낸다. 관람객에게는 고요하지만 깊은 사유의 장을 선사할 예정이다. 전시는 10월3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이이수는?]
▲로마 국립미술원 졸업
▲전시
젊은 여성 예술가 전시(2016)
이탈리아 한국 예술가 협회전(2017)
이탈리아 회화, 조각가 전시(2018)
유나이티드 갤러리 공간지원전(2020)
오엔갤러리 선정작가 개인전(2021)
마리갤러리 초대 개인전(2022)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