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법률시장의 판도를 바꾼 방식이 있다. 바로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이다. 2~3년 전에 나타난 네트워크 법무법인 중 일부는 10대 로펌의 매출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변호사 단체에서는 네트워크 법무법인이 법률시장을 오히려 어지럽힌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가장 큰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이들을 제재할 제도 개선을 법무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변호사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이다. 해당 법무법인들은 전국적으로 분사무소를 두면서 고객들이 쉽게 법무법인에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취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이런 전략이 법률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턱 낮춰
최근 변호사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이다.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은 하나의 법무법인이 전국 각지에 분사무소를 두고 영업하는 법무법인을 말한다. 법무법인 YK와 대륜, 로엘 등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무법인들은 적극적인 광고 마케팅을 펼쳐 사건을 대량으로 수임하면서 최근 2~3년 사이 빠른 속도로 매출을 늘렸다.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은 소비자들의 접근이 불투명한 법률시장에서 접근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일부 변호사 단체에서 보는 이들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다. 과한 광고와 더불어 지역 변호사들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소비자 구제 진정 민원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8월 변협은 전국에 수십개 분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네트워크 법무법인에 운영 규정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내렸다.
변협 징계위원회는 지난 2023년 10월 A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3명에 대해 과태료 300만원과 정직 3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법인에 대해선 지난해 6월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들은 네트워크 로펌의 ‘분사무소 요건’을 지키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변협 조사 명단에 올랐다. 변호사법상 로펌이 분사무소를 운영할 경우, 구성원 한 명 이상이 주재해야 하는데, A 법무법인의 한 지역 분사무소에 상주 변호사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 법무법인은 “분사무소마다 상담 변호사를 배치해두고 있어 구성원이 늘 주재하고 있다”고 반박해 아직 징계가 확정되진 않았다.
최근 2~3년 사이 빠른 속도 성장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대량 수임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을 내세워 ‘반드시 이긴다’라는 표현이 포함된 광고를 한 것도 문제가 됐다. 변협은 ‘재판·수사에 연관된 공무원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거나 고객에게 부당한 기대감을 갖게 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어긴 과장 광고라고 판단했다.
당시 변협은 A 법무법인 외에도 네트워크 로펌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해 징계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지난해 말 진행된 변협 회장 선거에서도 모든 후보자들이 네트워크 법무법인에 대한 규제를 공약으로 들고 왔다.
올해 들어 네트워크 법무법인과 전면전에 나선 것은 변협 산하 최대 규모의 지방 변호사회인 서울지방변호사회(이하 서울변회)다. 지난 1월 서울변회 회장으로 선출된 조순열 변호사가 최우선 공약으로 ‘네트워크 로펌 규제’를 내세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식에서 “네트워크 로펌으로 인해 변호사들의 광고비 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날 수 있다”며 “운영자들과 함께 규제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변회는 지난 7월24일 ‘법무법인 업무 정지’ 및 ‘사건 의뢰 시 주의해야 할 법무법인 지정’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회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서울변회는 “‘사건 의뢰 시 주의해야 할 법무법인 지정’ 제도는 잠재적 의뢰인에게 사건 수임 과정에서 주의가 필요한 법무법인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이는 변호사법 제76조 제1항에 근거한다”고 밝혔다.
변호사법 제76조 제1항은 ‘지방변호사회는 의뢰인의 변호사 선임의 편의를 도모하고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 수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의 학력, 경력, 주요 취급 업무, 업무 실적 등 사건 수임을 위한 정보를 의뢰인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정한다.
서울변회는 “전국적으로 분사무소를 설치하고 대량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이른바 ‘네트워크·광고 주도형 로펌’의 부적절한 사무처리로 인한 변호사 직역 전체의 신뢰 훼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는 배경을 설명했다.
“법률시장 어지럽히고 있어”
변협, 지난해부터 계속 징계
이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법률서비스 피해 구제 신청 건 역시 최근 4년 2개월간 289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며 “이 중 네트워크·광고 주도형 로펌으로 알려진 법무법인 단 3곳에 대한 신청 건이 100건에 달하는 등 특정 네트워크·광고 주도형 로펌에 대한 피해 민원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부연했다.
주요 네트워크 로펌들은 “전체 수임하는 사건 수 대비 불만·피해 구제 신청 건수가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서울변회가 추진하는 ‘주의 로펌 지정’ 제도는 특정 로펌을 선임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사실상의 공공 블랙리스트 제도로, 소속 변호사는 사회적 불신과 직업적 배제를 떠안게 되고 의뢰인은 재판 과정에서 부당한 편견에 노출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시정조치 요청서를 법무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정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설문조사 진행 후 약 한 달이 지나 서울변회는 제도 개선 방안 세 가지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개인 구성원에 대한 업무정지만으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법무법인 전체의 사건 수임을 제지할 수 없다며 일본 변호사법 사례에 따른 법무법인 업무정지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변호사법 제76조에 근거한 ‘사건 의뢰 시 주의해야 할 법무법인 지정제’ 시행에 대한 협조도 요청했다. 이는 문제가 있는 법무법인 정보를 잠재적 의뢰인에게 미리 알려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다.
과태료 상한 대폭 상향도 핵심 개선 방안이다. 현행 3000만원 이하 과태료는 네트워크형 법무법인의 매출액을 고려하면 제재 효과가 없다며 10억원 이하 또는 연간 매출액의 10% 이하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 네트워크 법무법인 관계자는 “저희 법무법인에서 맡고 있는 사건 수가 대략 4만건 정도 된다”며 “저희 법무법인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서울변회의 제도 개선 방안대로 법무법인 영업정지가 가능하게 된다면 해당 사건 수임을 받긴 분들은 다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재판은 계속 미뤄진다”며 “법조계에 혼란을 네트워크 법무법인이 야기하는 것인지, 급격하게 성장한 네트워크 법무법인을 견제하는 변호사 단체가 야기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변협에서도 ‘나의 변호사’ 서비스를 통해 법률시장의 개방에 이바지한 것과 같이 네트워크 법무법인은 소비자들이 더 쉽게 변호사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략을 내세운 것일 뿐”이라며 “자유경제 시장에서 급격한 성장을 보였다는 이유로 제재하려는 모습이 의아할 뿐”이라고 항변했다.
반대 이유?
법조계 일각에서도 변협이 새로운 법률시장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변협이 진정 공익을 위한다면 법률시장 변화에 따라 공정한 경쟁의 판을 짜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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