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이나 이보다는 조금은 진부하지만, 팩스를 통해서도 ‘어디에 폭탄을 설치했다’거나 ‘언제 어디서 칼부림을 벌일 것’이라거나, 나아가서는 ‘언제 어디서 몇 명을 살해하겠다’고 예고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져 시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
이를 반영해 지난 3월부터 새롭게 ‘공중협박죄’가 신설돼 처벌의 근거를 확실하게 하고, 처벌의 수준도 더욱 높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법안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데도 불구하고 공중 협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라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실제로 시민들의 공포는 더욱 심각해지고, 경찰을 비롯한 국가 기관의 공권력과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기업의 영업손실도 적지 않으며, 시민의 불편함과 그로 인한 삶의 질 저하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경찰도 총력 대응을 하고 있고, 강력한 처벌도 가능한 새로운 법도 마련됐음에도 현실은 오히려 기대와는 정반대로 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중 협박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나 오해 때문이다. 먼저, 공중 협박은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을 향한 협박이라는 점이다.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하는 범죄는 그 피해자 또한 불특정 다수인 만큼 피해자도 다중 살상 등 다수일 수밖에 없다.
즉, 피해가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책임, 즉 처벌은 죄에 상응해야 한다. 바로 비례의 원칙이다. 이는 범죄자도 사고 능력이 있는 존재고, 범죄행위도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므로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자들은 범죄로 인한 이익과 비용을 따져서 이익이 비용을 능가할 때 범행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중 협박의 범죄를 잠재적 범죄자들이 감히 선택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공중 협박으로 얻을 수 있는, 또는 적어도 기대할 수 있는 이익보다는 공중 협박의 비용을 더 크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용이란 바로 처벌이다.
처벌의 효과는 죄를 지으면 누구나 반드시 처벌된다는 처벌의 확실성, 그것도 신속하게 처벌된다는 신속성, 그리고 그 처벌은 엄해야 한다는 엄중성에 달렸다고 한다. 새로운 법제의 도입에도 억제되지 않는 것은 바로 공중 협박에 대한 처벌 비용이 이익보다 충분하게 더 클 정도로 신속하고, 확실하고, 엄중하지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비용의 개념은 처벌이라면, 법률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죄란 다름이 아니라 범죄가 끼친 사회적, 개인적 손상과 해악이라는 범죄 피해의 개념이다. 범죄 피해는 인명의 살상이나 재물의 손실 등 유형(Tangible)의 피해도 있지만, 사실 더 심각한 피해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Invisible), 무형(Intangible)의 피해라고 한다.
테러로 인한 국민적 공포심의 조장이나 범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 불신이나 안전 불감증의 초래, 정부에 대한 불신의 야기 등이 대표적인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형체는 없지만, 훨씬 더 심각하다.
잔인무도한 테러범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에는 유형의 피해도 있다. 오히려 국민적, 사회적 불신과 공포의 조장이라면 공중 협박도 테러며, 억제를 위해선 테러에 준하는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현실은 아직도 공중 협박의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신속하고 확실하고 엄중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형사사법 기관의 인식이나 법의 해석이 어쩌면 지나치게 기계적, 기술적이지 않나 하는 우려도 나온다.
협박만 했을 뿐 실행하지 않았다거나,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도 않았고, 재산상의 손실 등 그 어떤 유형의 피해도 초래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아직도 사법 기관과 사람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찰이 공중 협박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노라고 약간의 인식의 전환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과 법원 단계로 갈수록 그런 인식의 전환은 아직도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범죄 발생 시간과 장소로부터 멀어질수록 범죄 현장감이 떨어지고 그만큼 둔감해지기 때문일까? 공중 협박은 단순한 협박에 그치지 않고 테러로 인한 사회적 해악과 손실을 초래한다는 엄중한 현실 인식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