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국회에서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된 가운데, 발행사들이 헌법소원 등의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천재교과서, 동아출판사, 비상교육 등 AIDT 발행사와 한국교과서협회 등은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법 개정은 공교육의 역할을 간과하고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외면한 결정”이라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헌법소원 등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박정과 천재교과서 대표는 “1차 년도 개발본(초등 3·4학년, 중학교 1학년)은 이미 교육자료로 지정돼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달 중 1차 변론이 예정돼있다”며 “2차 년도에 개발된 초등 5·6학년, 중학교 2학년 교과서는 심사 중 법안이 바뀌어 심사가 종료됐다. 이는 소급 입법 적용에 대한 위헌 소지 가능성이 있어 이달 말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등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정부를 믿고 8000억원에 가까운 민간 투자가 이뤄졌지만, 정책 변경으로 인해 회수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며 “이는 단순한 재정 손실을 넘어 정부에 대한 신뢰 붕괴와 민관 협력 기반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AIDT는 당초 정규 교과서로 의무 도입을 전제로 개발이 추진됐지만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AIDT를 포함한 ‘지능정보 기술 활용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돼 학교 재량에 따라 활용하는 교육자료로 범위가 제한됐다.
이로 인해 개발에 참여한 발행사들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교육부가 교사 연수와 인프라 확충 등으로 지난해까지 투입한 약 1조2797억원의 예산도 매몰 비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욱상 동아출판사 대표는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AIDT는 이제 막 학교 현장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공교육 혁신의 플랫폼”이라며 “정치적 논의만으로 법적 지위를 격하한 이번 결정은 교육 현장의 현실과 국가 정책의 연속성 모두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같은 배를 타고 온 상황에서 풍랑이 몰아치자 교육부가 먼저 배에서 내린 셈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발행사와 협의를 해야 했지만 한마디도 없었다”며 “교육자료가 되더라도 교육부는 책임지고 국회를 설득해 예산을 확보하고, 학교들이 적극적으로 (AIDT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AIDT를 더 사용해 본 후 논의하자는 대안도 나왔다.
현준우 아이스크림미디어 대표는 “국가 정책은 변경 시 신중을 기해야 하며 국민 피해에 대한 책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검증 없는 법 개정은 교육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IDT 도입으로) 교육 격차가 심화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수준별 맞춤 학습을 제공해 기존 교육 방식보다 격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면서 “학습 현장에서 AIDT를 사용한 교사들의 긍정 평가가 70%를 넘는 등 교육 효과도 증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교과서협회와 AIDT 발행사들이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29일 실시한 ‘AIDT 효용성 인식조사’에 따르면, 주 3~4회 이상 AIDT를 활용하는 적극적 사용자의 76%가 학습 효과성을 증진한다고 답했다. 다만 소극적 사용자와 미사용자의 경우는 각각 48%, 38%에 그쳤다.
현 대표는 “(사용 경험에 따라 AIDT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큰 것을 감안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폐기하거나 최소 1년간의 검증 과정을 거친 후 재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선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정책에 따른 피해는 결국 발행사와 학교, 학생 등 교육계 모두가 떠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사전에 정규 교과서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으로 사교육 시장 확대, 교사 연수 부족 등이 제기되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제 운영을 통해 검증해야 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업계의 대규모 투자가 의미 없이 종결되지 않도록 발행사들이 제시한 일정 기간의 시범 운영과 효과 검증을 거쳐 조정하는 방안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현장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AIDT는 올해 일부 학년과 과목에 시범 운영되고 있었고, 각급 학교는 내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준비돼왔으나, 법 개정으로 운영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또 교육자료로 분류될 경우 초·중등교육법상 무상·의무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정부의 예산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 예산 및 인프라 여건을 갖춘 일부 학교에서만 AIDT를 활용하게 돼 교육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날 발행사들은 “(AIDT가) 교과서일 땐 정부에서 구독료를 50%가량 지원했지만, 교육자료로 바뀌어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학교가 부담해야 할) 구독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다면 현재 30% 수준인 사용률은 3%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 4일 국회에서 “(AIDT의 교과서 지위 상실은) 저소득층이나 산간벽지 학생, 장애 학생에게 주어진 교육 기회를 빼앗아 교육 격차를 지속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반면 개정안 통과에 대해 찬성하는 성명도 발표됐다.
AI디지털교과서중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AIDT 강행으로 인한 학교 현장의 혼란 해소에 기여하고, 향후 교육 현장에서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학생의 다채로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 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며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환영했다.
공대위는 “새로운 교육 정책 추진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 최초’가 아닌 정책 타당성 검토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숙의 과정”이라며 “모든 논의 과정이 생략된 그간의 AIDT 정책은 학교 현장의 혼란만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 “학교 현장에선 AIDT 취소 절차에 대한 안내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혼선을 겪고 있다”며 “교육부는 2학기 신청을 즉각 중단하고, 모든 학교에 취소 절차를 명확히 공문으로 안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23년, 윤석열정부는 오는 2026년까지 AIDT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도입 일정으로 인해 현장에선 교사 연수 부족, 디지털 인프라 미비, 시스템 사용 장애 등 문제점이 잇따라 제기된 바 있다.
<kj4579@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