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이재명정부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던 민생회복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때아닌 ‘색깔 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금액마다 다른 색상의 카드로 제작돼 불필요하게 사용자의 경제 상황이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즉각 수습에 나섰지만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선 “잘못은 시장이 하고 설거지는 공무원이 한다”는 등 불만이 터져나왔다.
24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지역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부터 약 400명의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날 시청과 각 구청은 인력을 각 동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 수습을 위해 투입된 공무원들 사이에선 강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광주시 행정전산망 ‘새올’에는 “스티커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폭염·폭우로 재난 대응까지 하는 상황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업무까지 부여됐다. 시간외근무가 너무 많다”는 등 불만이 잇따랐다.
내부 반발이 거세지자 주재희 광주시 경제창업국장은 이날 시 내부 행정 업무망에 “업무로 바쁜 시와 자치구 공직자분들께도 부담을 가중하게 해 깊은 사과의 말을 드린다”며 직접 사과문을 올렸다.
이날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지역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민생회복 지원금이 순식간에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카스트’가 됐다”며 “강 시장은 공식 사과 후 스티커를 부착해 카드 색상을 통일시키기로 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광주시는) 당일 오후 5시께 각 구청에 ‘스티커 부착을 오늘까지 마무리하라’고 통보했다”며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오후 9시까지 기다렸다가 스티커 부착을 마친 뒤 자정 가까운 시간에 퇴근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해 복구로 업무가 폭증한 상황에 공무원들을 혹사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노조는 묵과할 수 없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공직자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해나가자고 호소하는 것이 먼저다. (강 시장은) 제 식구도 못 챙기면서 어떻게 140만 시민을 품겠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번 문제는 강 시장의 독선적인 행정과 폐쇄적인 관료 문화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은 임기 동안 깊은 성찰을 통해 인권 도시 광주에 걸맞은 행정을 펼치는 시장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광주시는 소득 수준에 따라 선불카드의 색을 구분해 일반 시민에겐 분홍색, 차상위계층과 한부모가정은 초록색, 기초생활수급자는 남색으로 지급했다. 이는 결국 시민들의 경제적 상황을 노출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색깔 차별’ 논란으로 이어졌다.
지난 23일, 논란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며 “즉각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강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게 돼 죄송하다. 해서는 안 될 행정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신속한 지급을 위해 (색깔 구별 방식으로)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시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됐다”며 “즉각 소득 수준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카드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 시장은 이날 시 간부회의에서도 “행정이라는 것은 기안을 멋지게 하고 사업을 잘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의 문제고, 또 민주·인권·평화의 도시 광주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방안을 정책에서 찾는 문제”라며 “우리는 그것을 이번에 놓쳤던 것 같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스티커 작업에 더불어 광주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디자인과 색상이 동일한 신규 카드를 제작해 지급할 계획이며, 이미 지급된 카드도 사용 전인 경우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대처 방식 역시 행정 편의주의에 기반한 ‘땜질 행정’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차상위계층·한부모가정,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카드에 일반 시민과 같은 ‘분홍색’ 스티커를 부착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작업량이 적어지기 때문 아니냐는 의미다.
이번 논란에 대해 정가에선 현재 강 시장을 둘러싼 ‘무능’ 꼬리표가 더 공고해진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그의 행정 역량에 대한 비판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강 시장은 지난 17일, 폭우 피해 현장 점검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누리꾼들과의 댓글 설전을 벌여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당시 광주시는 도로·건물 침수, 배수 불량 등 약 1300건에 달하는 피해 신고가 접수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다. 한 누리꾼은 “지금 SNS 할 시간이냐”며 이를 지적했고, 강 시장이 “밥도 못 먹고 일하고 있는데 뭔 소리냐”고 감정 섞인 반응을 보여 논란이 확산됐다.
지난 3월에 열린 광주 타운홀 미팅 자리에서도 군 공항 이전 태스크포스(TF)의 준비 부족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말해 달라”는 이 대통령의 물음에 강 시장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이에 대통령이 “이런 식이면 공론화는 불가능하다”며 공개적으로 질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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