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신종마약 백태

2025.06.02 11:13:16 호수 1534호

먹어도 안 걸리는 환각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검찰과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사범들은 오히려 새로운 마약을 개발해 법망을 피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 중 신종마약의 비율은 지난 2017년 대비 10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신종마약을 마약류로 분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법망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만명을 넘어선 마약사범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먀약 유통도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졌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종마약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서 감정한 압수품 중 35%가 신종이다.

2만명
넘었다

행정안전부 소속인 국과수는 지난 25일 마약류 국내 확산 실태를 분석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발간했다.

국과수는 “세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SNS), 다크웹, 가상화폐, 국제 우편 및 특송 서비스, 도어-투 도어 택배 등으로 마약 유통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마약류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마약류 관련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마 합법화와 합성 대마 등 신종마약류의 유행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마약 오·남용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10대와 20대서의 마약 오남용이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 7년간 국과수 서울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을 중심으로 최근 동향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감정 백서에 따르면 국과수는 지난해 12만703건의 마약류를 감정했다. 이는 지난 2023년 대비 5.2%가 낮아진 수치다. 지난 2018년 4만3808건에서 2019년 6만3865건, 2021년 7만6528건, 2022년 8만9000건으로 매년 증가하다, 지난 2023년 12만7365건으로 역대 최다 감정 건수를 기록했다.

감정 건수가 소폭 줄어든 이유는 소변과 모발 감정 의뢰가 전년보다 각각 17%, 15%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압수품 감정 의뢰는 5만406건으로 지난 2023년 대비 12% 늘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마약류 단속 대상이 마약류 남용자보다 유통책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의뢰된 압수품 중 검출된 마약류(3만669건)의 종류를 살펴보면 여전히 메트암페타민(1만3123건), 대마(2846건), 양귀비(2828건)와 같은 고전적인 마약류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메트암페타민이 전년 대비 10% 넘게 감소한 반면, 합성대마(5650건)와 반합성대마(882건)는 7.3%, 1.9% 증가해 전체적인 마약류 남용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자담배, 알약, 사탕…
새로운 종류 압수 10배↑

이들 마약류를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여전히 분말(8044건) 형태의 유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주사기(5161건), 식물(4594건) 등의 순이었다.

다만 주사기는 예년에 비해 많이 감소한 반면, 전자담배 유통 시 카트리지에 충전할 수 있는 액상(3320건) 형태가 크게 증가했다. 전자담배(2058건) 형태의 마약류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최혜영 국과수 마약과장은 “주로 전자담배 및 액상 형태로 유통되는 합성대마류의 유행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종마약의 경우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압수품서 검출된 신종마약은 34.9%로 역대 최대 비율이었다. 지난 2017년에는 3.4%에 불과했던 신종마약의 비율은 2020년까지 전년 대비 1.5%에서 4.8% 소량 증가하다가 지난 2021년 들어서 14.4% 대폭 증가한 26.2%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는 2021년과 비슷한 비율의 신종마약이 검출됐다.

합성대마류가 15.2%로 가장 많았고, 케타민(10.1%), 엠디엠에이(4.2%), 반합성대마(3.0%), 코카인(1.6%) 등이 뒤를 이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국내서 관리하는 마약은 약 2000종이다. 게다가 매년 50개에서 100개가량이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추가로 발견된 신종마약은 합성 대마를 포함해 100건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역대급 적발
심각한 상황

한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마약 사건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유·무죄를 가릴 중요한 단서”라며 “특히 합성 대마 같은 경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지금도 감정이 가능한 종류가 몇 가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경찰과 검찰서 단순 투약자가 아닌 유통책 검거에 힘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현재 발견되는 신종마약의 종류는 합성 대마 종류”라며 “대마와 다른 화학물을 합성하는 방식이라 대마의 성분 감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에 문제가 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마약”이라며 “이는 국과수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마약 종류가 부족해서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지만 기존 마약을 합성한 경우 감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과수 데이터베이스로 감정할 수 있는 약 2000여가지”라며 “국과수가 감정하지 못한 마약 종류는 5년 동안 40여가지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국과수는 지난 2월 신종마약류 ‘2-플루오로-2-옥소-피시피알(2-fluoro-2-Oxo PCPr)’을 세계 최초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마약은 수사기관의 최초 검사에선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과수 정밀 분석을 통해 마약류로 판정됐다.


피시피알은 일명 ‘천사의 가루’로 불리는 펜사이클리딘 계열 유사체다. 펜사이클리딘은 복용 시 환각, 고열, 탈수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국내서 유행하는 케타민도 펜사이클리딘의 일종이다. 그동안 마약류 데이터베이스(DB)에 아예 등록도 안 돼있었기 때문에 마약사범 사이에선 “해도 걸리지 않는 마약”이라고 홍보됐다.

법망도
피한다

하지만 국과수서 피시피알을 마약류로 판정하면서 이를 유통·구매한 마약사범은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시피알은 2022년 8월 용산서 현직 경찰관이 아파트서 추락사한 ‘집단 마약 모임’ 사건서 검출된 신종마약과 유사한 화학 구조를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추락해 숨진 경찰관의 몸에서는 ‘2-플루오로-2-옥소 피시이(PCE)’가 검출됐다. 이후 피시이는 자살충동 등 부작용이 심한 탓에 국내에선 드물게 적발되고 있다고 한다.

신종마약에 대한 감정이 가능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마약에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를 규정하고 있고, 마약류는 법에 따라서 규제 및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마약류를 오용 또는 남용하면 법에 따라서 처벌받게 된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마약류의 범위에 들어가는 물질의 종류가 일일이 있고, 법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제시돼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LSD, 아편, 대마 등 총 384종의 마약류를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관세청 홈페이지에 게시돼있다.

국과수서 감정이 가능한 마약류가 2000종이 넘는데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은 단 384종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마약류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관리 중이다. 마약류 분류도 마찬가지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가 어떤 물질을 마약류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세포 실험, 조직실험, 동물실험에 의한 의존성, 독성, 작용, 기전 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약류로 분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데 이 과정이 1년여가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 마약류 분류 384종
이외 시중 돌아도 무대책

이어 “신종마약은 계속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 해당 과정을 계속 진행하면 법망을 피한 마약이 계속 유통되고 투약될 가능성이 있어 식약처는 신종마약을 임시 마약류로 분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식약처는 마약류가 아닌 물질·약물·제제·제품 등(물질 등) 중 오용 또는 남용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가 우려되어 긴급히 마약류에 준해 취급·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물질 등을 임시 마약류로 정의하고 있다. 아직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물질 중에서 국내외의 오·남용 사례가 있고, 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3년간 한시적으로 임시 마약류로 분류해 사용을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98종의 물질이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있고, 기존의 임시 마약류 중 62종이 마약류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규제의 속도보다 변종 마약류의 생성이 더 빠른 상황이라 신종마약으로 법망을 피할 길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신종마약의 감정이 어렵지만 법적인 처벌은 받게 된다고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요한다.

한 서울중앙지방검찰 형사부 소속 검사는 “최근 신종마약과 관련된 마약사범들에게도 법적인 처벌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은 마약사범들의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법원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신종마약에 대해 항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우선 처벌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판별 위한
신규 연구

정부는 합성생물학 등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불법 유통이 늘고 있는 신종마약을 빠르게 검출하는 판별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는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연구' 사업 추진을 위해 2025년 상반기에 신규 연구개발 과제 5건을 선정했다.

그중 신종마약과 관련해서는 불법 유통과 오·남용이 증가하고 있는 신종마약(벤조디아제핀 및 펜사이클리딘 계열 등)을 현장서 빠르고 정확하게 검출하기 위한 마약 판별 키트도 개발한다. 합성생물학 기반 간편 검출 시스템을 통해 단속과 수사의 효율을 높이고, 마약의 불법 유통과 오·남용 방지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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