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화재 현장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현관문을 강제 개방한 소방 당국이 주민들의 손해배상 요구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소방 활동과 재산 손실 사이의 딜레마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24일 광주 북부소방서에 따르면, 지난달 11일 오전 2시52분께 광주 북구 신안동 한 빌라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관들은 입주민 5명을 무사히 대피시켰으나,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는 6개 세대에 추가 사상자가 있을 가능성을 우려해 현관문을 강제로 개방했다.
이후 빌라 주민들은 소방 당국에 강제 개방으로 파손된 현관문과 잠금장치를 배상해달라고 요구했다. 배상 비용은 한 가구당 130만원으로 6세대 총 800만원 상당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화재 발생 시 통상적으로 해당 세대주가 화재보험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아야 하지만, 이번 경우 화재 당사자가 사망한 데다 다른 세대주들도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배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에 주민들이 소방 당국에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논란이 확산됐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 활동 중 불가피하게 발생한 재산 손실(강제 처분)에 대해 소방청장 또는 시·도지사는 손실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법적으로 보상이 보장돼있다곤 하지만, 이 같은 보상 요구가 늘어나면서 소방관들의 적극적인 구조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보상 요구 증가가 소방관들의 소극적인 대응을 유발할 경우, 결국 시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손실 보상 지급 건수는 ▲2022년 64건(4313만원) ▲2023년 104건(8648만원) ▲2024년 98건(1억58만원)으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문 개방 과정서 발생하는 출입문이나 도어록 손상에 대한 보상 청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문 하나를 개방하는 데 평균 7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소방본부는 유사 사례에 대비해 1000만원의 예산을 확보했으나, 이번 배상액이 800만원에 달해 예산의 대부분을 소진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이에 광주시는 ‘손실 보상’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소방 당국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광주시는 손실보상 심의위원회를 소집해, 해당 화재로 인한 물적 피해가 정확히 얼마인지 산정하는 등 심사·의결 과정을 거쳐 현관문 파손 세대주에게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보상 의결로, 올 한해 손실 보상액으로 확보한 예산 1000만원이 부족하다면 추가경정예산 심의 등을 통해 재원을 추가 확보할지도 검토 예정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불에 뛰어드는 소방관이 보상 걱정까지 해서는 안 된다”며 “주민의 불가피한 피해도 마찬가지다. 보험제도와 손실 보상 예산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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