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10일,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과거 유해도서로 분류돼 폐기 권고를 당했던 것으로 드러나 입길에 올랐다.
자신을 한강 작가의 팬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이튿날인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경기도교육청에 <채식주의자>와 관련해 민원 제기를 했다”고 밝혔다.
민원 제기자 A씨는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포함해 2528권을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라며 폐기했던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기도교육청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극찬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조속히 초중고 도서관에 다시 배치하고,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민원 신청이 완료됐다는 경기도교육청의 처리 확인 화면도 캡처해 첨부했다.
앞서 지난해 5월, 강민정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경기도 학교 도서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에 따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상문학상 수상작 <구의 증명>(최진영), 노벨문학상 수상작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등이 포함됐다.
경기도교육청은 유해성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9월 보수 학부모 단체가 “학교 도서관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를 폐기하라”는 기자회견을 참고하라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의 폐기 권고에 따라 일선 학교 현장에선 ‘청소년 유해도서’ 목록 외에도 성과 인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도서들을 폐기 처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일부 단체가 학교에 무분별하게 공문을 보내 성교육 도서 폐기를 요구한 상황이었다”며 “교육청은 학교 현장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단순히 현황을 조사한 것이지, 폐기하라는 지시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학교 도서관에 있는 도서의 유해성 여부와 조치 사항은 각 학교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날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SLR클럽’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쾌거와 함께 국내 문학계의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는 글도 주목받고 있다.
과거 국문과 학부, 대학원을 졸업하는 등 국문학 전공자였다고 밝힌 누리꾼 B씨는 “지난밤 한강의 노벨문학상 뉴스를 보며 소리 질렀는데 가슴이 두근거려 잠도 제대로 못잤다”며 “마치 내일인 것처럼 들뜬 기분이 들다가도 얼마 전 만났던 지도교수님 이야기가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아쉬워했다.
B씨에 따르면, 근래 들어 국문학과에 입학하는 학생이 없어 학과 사무실도 없어지고 중국인 학생을 많이 받다 보니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학생들보다 외국 학생들이 많으니 더 이상 교수도 새로 뽑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이젠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상실감마저 들었다”고 허탈해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 사이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중심에 있는 분들의 나이가 박찬욱 63년생, 봉준호 69년생, 한강 70년생”이라며 “어쩌면 화려한 마지막 불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기쁘면서도 씁쓸했다”고 마무리했다.
1970년 11월, 광주 출생의 한강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서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2005년 중편작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지난 2007년 작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 국제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한강의 부친은 한승원 작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친오빠 한동림도 소설가로 등단했다.
<haewoo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