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패럴림픽 2관왕 명사수 박진호

2024.09.09 15:11:09 호수 1496호

고난 딛고 금빛 총성 울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박진호가 2024 파리패럴림픽서 두 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2관왕에 올랐다. 도쿄패럴림픽 당시 복사에서 단 0.1점 차이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으나 이번에 그 아쉬움을 아주 말끔히 씻어냈다. 박진호는 체대생 시절 당한 불의의 사고에도 좌절하지 않고 체육인의 꿈을 이뤄내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 장애인 사격 대표팀 박진호 선수가 2024 파리패럴림픽서 두 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선수단의 대회 첫 2관왕 주인공이 됐다. 이번 대회서 다관왕은 박진호가 처음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선수로 거듭났다. 패럴림픽 개막에 앞서 박진호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며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굳은 다짐
맺은 결실

박진호는 지난 3일,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서 열린 2024 파리패럴림픽 사격 R7 남자 50m 소총 3자세(스포츠등급 SH1) 결선서 454.6점(슬사 150.0점, 복사 154.4점, 입사 150.2점)을 쏴 중국의 둥차오(451.8점)를 제치고 또 한번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번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박진호는 “내 이름이 호명되는 걸 듣고 나니까 ‘정말 2관왕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첫 금메달이 나왔을 때 리셋하려고 노력했다” “들떠 있었다면 오늘 이런 결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럴림픽 신기록도 하루에 2개나 작성하며 새 역사를 썼다. 박진호는 결선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패럴림픽서 세르비아 라슬로 슈란지가 세웠던 기존 패럴림픽 결선 기록(453.7점)을 갈아치웠고, 본선에선 1200점 만점에 1179점(슬사 392점, 복사 394점, 입사 393점)을 쏴 도쿄 대회서 주성철이 세운 패럴림픽 본선 기록(1173점)을 깼다. 


박진호는 “첫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정신이 없다”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고, 제가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 날씨가 시원해 편안하게 쏴서 패럴림픽 신기록까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패럴림픽에 한이 많이 남아 있었다”며 “다시 다음 경기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메달을 향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50m 소총 3자세는 무릎쏴(슬사), 엎드려쏴(복사), 서서쏴(입사) 순으로 사격해 우승자를 가린다. 첫 종목으로 8명이 오른 결선 슬사에서 박진호는 150점을 기록하며 6위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이어진 복사 종목에서는 154.4점을 쏴 3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입사 종목서 박진호는 복사까지 1위를 달린 마렉 도브라우스키(폴란드)를 제치고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10발째까지 100.2점을 추가해 1위를 유지했고 최종 5발에서는 둥차오의 추격을 뿌리치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결선 경기는 각 15발씩 총 45발을 쏴 승부를 가린다. 

40발 이후 7, 8위가 탈락하고 이후 한 발을 쏠 때마다 한 명씩 떨어진다. 마지막 45발째에선 1위를 다투는 두 선수만 사대에 남기 때문에 박진호와 둥차오가 끝까지 승부를 겨뤘다. 초반에는 너무 힘을 빼지 않고 차분하게 순위를 유지하다가 가장 자신 있는 입사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 

앞서 박진호는 지난달 31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서 열린 사격 R1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결선서도 249.4점을 쏴 예르킨 가바소프(카자흐스탄·247.7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날 한국 선수단 두 번째 금메달을 따내며, 박진호는 3년 전 도쿄패럴림픽서 0.1점 차로 금메달을 놓친 한을 풀었다. 

하루 만에 신기록 2개 작성
도쿄서 놓친 금메달 한 풀어

메달을 확보한 박진호는 21번째 발에서 10.6점을 쏴 마침내 선두로 올라섰다. 22번째 발도 10.5점에 적중하면서 선두를 지켰다. 2위 가바소프와는 0.7점 차. 박진호는 23번째 발에서 10.8점을 쏴 1.1점 차로 달아난 후 마지막 발을 10.6점에 적중시켜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이날 선수 소개서 장내 아나운서는 그를 ‘월드 챔피언’이라고 소개했는데, 마침내 사격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셈이다. 


경기 후 박진호는 금메달을 들어보이며 “무겁다”고 웃은 후 “초반에 긴장을 많이 했다” “사격이 첫날부터 (결과가)잘 풀려서 더 마음 편하게 쏠 수 있었고,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항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며 “2014년부터 이 종목 세계신기록(본선)을 나 혼자 바꿔와서 제 기록이 깨진 적이 없는데 패럴림픽서 금메달이 없었다” “약간 비어 있던 게 꽉 찬 느낌이고 희열이 느껴졌다” “‘아, 내가 패럴림픽서 애국가를 울리는구나’란 생각에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도 떠올렸다. “부모님을 연초 명절에 뵙고 아직 못뵀다”며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울고 있을 텐데, (양)연주야, 오빠 금메달 따서 간다, 사랑해”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속팀 강릉시청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자신을 물심양면 도운 강주영 강릉시청 감독에게는 “제일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강 감독님”이라며 “강릉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마시는)물을 가리는 것을 아셔서 이곳에 생수까지 공수해 주셨다”고 인사했다. 

이어 “시장님께선 중증장애인 선수들의 장시간 비행 피로를 덜기 위해 비즈니스석에 탈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셨다”고 감사해했다.

박진호는 지난 2014년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대회서 4관왕에 오르는 등 ‘장애인 사격의 진종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지난 4월 창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5관왕에 오르며 패럴림픽을 앞두고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아시아 패러게임에서는 통산 금메달 5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 등 총 10개의 메달을 획득했지만, 패럴림픽 금메달과는 유독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연이은 우승
금메달 쾌거

첫 패럴림픽 무대였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빈손으로 돌아왔고 지난 2021년 도쿄 대회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각각 1개씩 획득했던 박진호는 이번 파리 대회서 금메달 2개를 따내면서 그동안의 한을 풀었다.


박진호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즐겼다. 운동신경이 좋아 각종 운동을 섭렵했다. 취미로 하던 운동이 어느새 특기로 발전되면서 그는 수원대학교 체육학과를 진학해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박진호는 낙상 사고로 안타깝게 휠체어에 앉게 됐다. 척수 손상으로 하지가 마비됐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다. 체대에 진학해 운동선수의 길을 걷던 그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건강한 몸을 잃은 박진호는 이 일로 ‘체육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까도 생각했지만, 고심 끝에 다시 운동선수의 길을 택했다. 무기력했던 박진호를 깨운 것은 큰누나 박영미씨였다.

그는 “장애인도 운동할 수 있다”며 “선수가 돼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동생을 설득했다. 휠체어를 탄 채로 할 수 있는 종목들을 알아봤고 그중엔 사격이 있었다.

박진호는 “남자다운 운동을 하고 싶다”면서 사격을 선택했다. 큰누나의 지극정성 도움을 받아 마침내 총을 들게 된 것이다.

박진호는 서울 정립회관서 차근히 사격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장애인 사격선수가 됐지만, 빠르게 입지를 굳혀 나갔다.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좋은 덕분에 성장이 가팔랐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대회를 휩쓸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다 지난 2006년 청주시청 장애인 사격부에 입단했다.

순탄한 길만 걸을 것 같았던 박진호는 시합 도중 입은 부상으로 수술대를 올라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 욕창이 생겨 제대로 3년간 훈련조차 할 수 없어 성적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진호는 그렇게 심리적 압박이 커져만 갔다.

이후 병세가 호전되자 그는 ‘처음 사격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총 드는 방법 등 기본기부터 다식 익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만큼 기술적으로도, 정신력도 한층 더 단단해졌다. 박진호가 흘린 땀은 배신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다.

박진호의 아내인 양연주도 장애인 사격선수다. 두 사람은 같은 병원서 함께 재활하다가 사랑을 키워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남편 권유로 아내도 총을 들면서 사격선수 부부가 됐다.

이번 대회에는 함께 출전하지 못했지만 지난 2022년 창원 세계장애인선수권 때는 부부가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2일 폐막한 2024 파리올림픽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사격의 메달 기세는 2024 파리패럴림픽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패럴림픽서 사격은 개막 이틀 째인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서 금·은·동을 쏟아내며 화제가 됐다. 

사격 침체기
황금기 시작 

먼저 R2 여자 10m 공기소총 입사(스포츠등급 SH1) 결선서 이윤리가 은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선수단 첫 메달 소식을 알렸다. 이어 조정두는 P1 남자 10m 공기권총(SH1)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사격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서훈태가 R4 혼성 10m 입사(SH2)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 사격선수단의 메달 사냥은 계속 이어졌다. P3 혼성 25m 권총(SH1)의 김정남이 지난 2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사격은 꽤 오랜 시간 패럴림픽 무대 중심에 서지 못했다. 지난 2012년 런던패럴림픽 때 강주영이 R4 혼성 10m 공기소총(SH2)서 총 3개의 금메달을 따냈지만, 이후 2016년 리우올림픽, 2021년 도쿄 대회서 2연속 노골드에 그쳤다. 

그러나 한국 장애인사격이 침체기를 깨고 패럴림픽서 다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와 대한장애인사격연맹, 그리고 배동현 BDH재단 이사장의 지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00년 시드니패럴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정진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2021년 취임 후 장애인체육계 다방면에 걸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파리 현지서 만난 정 회장은 “탁구와 보치아, 사격, 배드민턴, 태권도 등 패럴림픽 전략 종목을 선정해 스포츠의과학 및 전력 분석 등을 지원한 결실이 나오고 있다”며 “사격서 더 많은 메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사격연맹도 지난 2022년 세계장애인사격연맹(WSPS)와 협의를 통해 4년간 사격월드컵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부터 3년째 열린 ‘창원장애인사격월드컵’은 자연스럽게 한국 장애인사격의 국제적인 위상과 경쟁력을 키우는 산실이 됐다. 

파리패럴림픽 선수단장인 배동현 이사장 역시 지난해 4월 세종시 연고로 한 BDH파라스 실업팀 창단과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소속 선수들의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워내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지난해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장애인 사격의 진종오로 불려

이 같은 지원에 DBH파라스 소속 조정두가 지난달 30일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을 명중하며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배 이사장은 “조정두의 금메달 획득에 정말 감격했다”면서 “사격 덕분에 다른 종목 선수들의 사기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격을 필두로 여러 종목서 더 많은 메달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과 효과적인 정책 덕분에 지난 12년간 침체기였던 패럴림픽 사격은 다시금 효자종목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지난 5일 기준으로 금메달 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순위 17위에 올랐다. 3개의 금메달은 사격서 나왔고, 나머지 1개의 금메달은 보치아서 나왔다.

한국 보치아는 패럴림픽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세계랭킹 1위 정호원은 지난 2일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서 열린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등급 BC3) 결승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4엔드 합산 점수 5-2(3-0, 1-0, 0-2, 1-0)로 꺾고 우승했다. 

한국은 1988 서울대회 때부터 이번 대회까지 보치아서 10회 연속 금자탑을 쌓는 데 성공했다. 이번 대회 정호원의 금메달을 포함해 4개의 메달을 수확하며 패럴림픽 효자 종목으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까지 한국 보치아가 패럴림픽서 획득한 금메달은 총 11개로, 은메달 8개, 동메달 8개까지 더해 전 세계서 가장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낙상 사고로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된 정호원은 지난 1998년 보치아를 시작해 2008년 베이징, 2016 리우데자네이루, 2020 도쿄에 이어 네 번째 패럴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파리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은 17개 종목 177명(선수 83명, 임원 94명)이 파견됐으며, 선수단은 1988 서울대회부터 2008 베이징대회까지 6회 연속 패럴림픽서 두 자릿수 금메달을 획득했다. 

승전보 소식
목표치 이상

하지만 2012 런던대회 9개, 2016 리우데자네이루대회서 7개의 금메달을 딴 뒤 직전 대회인 2020 도쿄대회에선 금메달 2개에 그쳤다. 도쿄대회 이후 유망주 발굴에 전념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번 대회서 금메달 5개 이상을 획득해 종합 순위 20위권 진입을 목표로 잡았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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