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10년 만의 국내전’ 존 배

2024.09.12 00:00:00 호수 1496호

‘운명의 조우’ 공간 속 드로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준비했다. 2013년 갤러리현대서 열린 ‘In Memory’s Liar’ 전시 이후 10여년 만에 국내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서 관람객은 70년에 이르는 존 배의 예술적 여정을 집약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존 배는 “나의 작품은 하나의 음표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많은 작품이 말 그대로 하나의 점이나 선에서 시작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라고 썼듯이 내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에 올 음은 무엇일까? 마치 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를 이어 나가면서 각각의 점과 선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초기작부터

국내서 10년 만에 열리는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는 그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1960년대 초반 구축주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초기 강철 조각을 비롯해 연대기별로 주요 철사 조각, 드로잉과 회화까지 작품세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 40여점을 선별했다. 

존 배의 조각은 미국 미니멀리스트 조각가의 용접 조각과 조형, 미형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면서도 서구 예술운동의 흐름과 연결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가늘고 짧은 철사를 용접해 사용하는 존 배의 조각에는 1950~1960년대 미국 뉴욕서 전후 추상과 미국식 바우하우스, 네오 아방가르드의 이름으로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했던 러시아의 구축주의 정신, 전후 미국의 환원주의적 추상 조각 등의 흐름이 엿보인다. 

존 배는 당시 미국의 예술적 토양을 넘어 음악과 미술, 수학과 과학 등 다학제적인 관심사를 발전시켰다. 하나의 철심을 하나의 음처럼 사용해 전체와 부분이 상호 연결성을 갖는 조화와 내외부의 경계를 무화하는 동양철학의 세계까지 포괄해 독창적인 예술관을 형성했다. 


존 배의 예술 언어는 단단한 철을 녹여가는 과정으로서의 개념성을 동반하며 동서양의 범주를 넘어선다. 고체서 액체라는 연금술적인 액체성과 불을 통해 하나의 매체서 다른 매체로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전이성이 동반된다. 

미술사학자 정연심은 존 배의 철 조각에 든 노동의 시간성 자체보다 긴 노동을 통해 그가 구현한 탄력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모호한 공간성과 운동성에 주목했다. 

70년 작품세계를 한눈에
음악 같은 작품의 생명력

또 좌우대칭과 같이 모더니즘적인 완결된 형태서 벗어난 존 배의 그리드 조각이 주변의 상황과 교감하는 역할, 조각의 정밀함이 계획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소를 통해 형성된 점 등을 강조했다. 

존 배는 자신의 작품을 ‘공간 속 드로잉’이라고 표현한다. 자연에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작업은 거미줄이나 산호가 얽혀 있는 듯한 형상과 원형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비정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물방울같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성을 가진다. 

코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형태는 하나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식물을 보는 듯하고 나무의 곡선, 유영하는 생명체나 유기체로 보이기도 한다. 얽힌 선의 집합체가 갖는 곡면은 보는 이에게 철제 재료를 날렵하고 가볍게 느껴지도록 하면서 비상하는 듯한 운동성으로 다가온다.

불과 손을 사용해 제작된 철이 무거운 속성으로부터 벗어나 공간에 놓이며 보는 시점과 시각에 따라 다른 운동성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드로잉으로 다가온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존 배의 예술적 여정은 놀라운 진화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기억과 잠재의식, 미술뿐 아니라 음악, 과학, 동양철학 및 문학을 횡단하는 학제 간의 탐구를 지속해서 수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최근작까지

이어 “특히 음악과 다양한 스포츠, 발레, 현대 무용 등에 관한 관심은 존 배에게 공간 움직임에 대한 직관과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으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서 마치 연주되고 있는 음악같은 작품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듯한 작품의 생명력을 경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존 배는?]

1937년 서울서 태어나 12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 있는 오글베이 연구소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대학원 과정으로 조각을 수학했다. 

존 배는 28세에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로 임명됐고 이후 약 40년 동안 교직과 행정 역할을 맡으며 학교의 미술과 조각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올해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박사를 수여받았다. 

갤러리현대,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 플라토(구 로댕갤러리), 시그마 갤러리, 뉴욕 환기재단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컬럼비아 대학교 왈라흐 갤러리. LA 카운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갤러리, 스미소니언 미술관, 환기미술관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현재 미국 코네티컷 페어필드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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