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국회, 관용과 자제의 규범 갖춰야

2024.07.04 14:41:04 호수 0호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국무위원을 가리지 않고 정략적 탄핵안을 남발하고 있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시초를 쌓기 위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번 더 거부권을 행사한 뒤에 벌어질 일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거부권 뒤엔 채 상병 특검법 국회 재의결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는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로 선출될 경우, 이 문제가 윤·한 관계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 편에 서서 특검법 부결로 나선다면, 민주당과 이 전 대표는 적절한 시점을 골라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촛불 시위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까지 거부한 뒤에 시작할 것이다. 지금의 이런 민주당의 정략적 정치 행위가 민주주의의 타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하버드 대학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기존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과 규범이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양보와 타협보다는 서로 적대시하고, 양당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입법·행정·사법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절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기존의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왜곡된 정보는 쉽게 전달, 확산된다.

정보처리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정보의 편중과 확대 재생산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정치 현상에서 지지집단에 대한 확증편향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특성으로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지키고 있던 기존의 가치와 질서는 심각하게 훼손되기 시작했다.


공동체적 가치 훼손 정치공학적 전략만 기승

시장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정치는 상호갈등을 최소화하는 행동 양식을 갖고 있다. 이익 극대화의 결과로 자본가는 탐욕적으로 행동하고 이는 자본주의의 한계로 지적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독과점 규제 등을 통해 탐욕적 자본주의의 권력남용을 견제해 왔다. 최근 기업들은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변화하고 있다. 기업이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즉 환경·사회·거버넌스라고 하는 가치가 이윤추구보다 우선시되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기업이 소비자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투자기관의 투자도 받기 어려워 결국은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작동 원리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진 것이다. 반면, 민주 정치에서 추구되던 공동체적 사회적 가치는 훼손되고 있다. 서로 대립하는 정치집단이 사회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공화주의의 철학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수결의 원칙과 같은 기본 논리만 남고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떤 수단도 불사하는 정치공학적 전략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형식적 민주 절차로 선거에서 승리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정권을 잡으면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복수극을 펼치듯 치열하게 반격한다. 국가의 장기 비전이나 가치는 뒷전이고 선거의 승리에만 집착해 탐욕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현대 정치의 퇴락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붕괴한다고 개탄하고 있다. 두 교수는 최근 저서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합법과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극단적 열성 지지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이들이 형식화된 민주 절차만 거쳐 권력을 독점하고 나면 대중영합주의 정치를 거리낌 없이 행사해 민주주의를 왜곡하기 시작한다. 마치 히틀러가 정당한 민주적 절차로 권력을 잡은 후 포퓰리즘으로 전제정치를 행사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탐욕적 자본주의를 견제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나 독과점법들이 제정돼 사회의 균형을 맞춘 것처럼 이제는 탐욕적 민주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나아가 이를 지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와 어겼을 시 받게 될 불이익 장치까지 마련돼야 한다.


소수정당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총선 때마다 거대 정당들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소수정당의 몫을 독점해 버리는 폐해를 우리는 거듭 경험했기 때문이다.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 실종

민주주의의 보이지 않는 규범을 제대로 지켜야 민주주의 제도가 바로 설 수 있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보이지 않는 규범의 핵심은 상호 관용과 자제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실종된 두 개의 가치가 바로 이것이다.

신이 아닌 이상 누구든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정치는 타협과 양보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미래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쌍두마차여야 한다. 단일대오로 필사적으로 싸움을 하는 것은 집단적 이익의 극대화에 불과하고, 국가 전체의 공동체 이익에 반한다.

작금의 22대 국회는 여소야대의 불균형 구조로 사회의 양극화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실종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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